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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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 비틀린 일상의 균열 속으로, 뜻밖의 ‘음악’이 스며든다. 그것은 멜로디가 아닌 울림이며,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무언의 질문이다. 과연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고통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책은 거창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과 공백,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죄책감, 분노, 애도의 무게를 그리면서도, 슬픔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그 담담함에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이 오히려 묵직한 울림을 준다.

소리와 침묵, 기억과 망각, 음악과 고요함이 교차하는 장면들 속에서, 독자는 죽음을 견디는 일만큼이나 삶을 계속해 나가는 일이 고귀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이 책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것이 인간을 파괴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조용한 그러나 뿌리 깊은 믿음이 느껴진다.
책을 덮으면 조용한 숙연함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 묻게 된다. 나에게도, 잃어버린 모든 것에도, 아직 멈추지 않은 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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