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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숨쉬는 공간이며, 일상과 감정, 추억이 쌓이는 무대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 고리다.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도시는 정말 사람을 위해 설계되었는가?
책을 펼치는 순간, 이 책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와 건축,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생생하고 예리할 수 있다니. 첫 장을 읽자마자 이 책은 단순히 읽히는 것을 넘어 내 머릿속에 강렬한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그 질문들은 마치 비옥한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서서히 자라며 내 시야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읽을수록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가지를 뻗어나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전과는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따분함.” 이 단어가 이렇게 깊이 있는 의미를 가질 줄은 몰랐다. 우리는 따분함이 주는 불편함에 익숙해져 그것을 무심히 지나쳐왔다. 하지만 책은 그 따분함이 단순한 정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갈등과 분열, 심지어 전쟁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따분함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었다. 그러나 책은 그 연결고리를 너무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제시하여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중략)
내 주변을 돌아보면, 책에서 말하는 문제는 너무도 현실적이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마치 비 오는 날 잡초가 자라듯, 아파트들은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며 마구잡이로 자란다. 산 위에 우뚝 선 거대한 건물들은 단지 정면의 풍경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마저 잡아먹는다. 한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나의 시선은, 이제 고개를 돌리고 틈새를 찾아야만 겨우 하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시는 이를 허가했다. 법은 가진 자들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인가. 하늘을 보는 단순한 행위마저도 이제는 특권이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하다.
책은 이를 넘어 도시 설계가 어떻게 사람들을 분리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단순히 아름답지 않은 건물들이나 비효율적인 도시 계획의 문제를 넘어, 공간 자체가 인간들을 서로 단절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 속 한 구절에서는 새로 조성된 동네가 사람들을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분리하고, 결국 그 단절이 더 큰 갈등을 초래했다는 예시를 보여준다. 이 단락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리의 도시가 단순히 공간적 불편함을 넘어서, 인간다움과 공동체를 해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은 너무도 씁쓸했다.
(중략)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책 속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도, 읽는 재미는 감출 수 없었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텍스트와 필기체는 마치 전교 1등의 비밀 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을 주었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기쁨과 함께, 이 지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깊이 차올랐다.
흥미롭다는 말로는 이 책을 다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를 주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사고방식과 관점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지루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깨부수고,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도시의 건물, 거리, 그리고 공원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일상, 그리고 인간다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중략)
이 책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하나의 경험에 가깝다. 도시와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매일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 반대로 도시의 삭막함에 실망했던 사람 모두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략)도시 속 따분함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책이 건축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유쾌하게 선사할 것이다. 마치 오래된 도시에 새로운 창문을 달아주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