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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래 간호사가 아닌 마녀였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김서은 옮김 / 라까니언 / 2023년 1월
평점 :
이 책은 단순한 의료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의료와 종교, 지배와 피지배, 학력과 경험이라는 복잡한 권력 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한 저작이다. 바바라 에렌라이히와 디어드리 잉글리시는 의료가 단순히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지배를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1. 마녀사냥과 여성 치료자
중세와 근대 초기에 걸쳐 마녀사냥이 발생하면서 여성 치료자들이 억압받고 처벌받았다. 남성 중심의 의학이 부상하면서 여성 치료자들은 비과학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몰렸다. 이들은 주로 피지배층을 치료했으며, 경험에 의존해 의료 행위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는 곧 종교적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 기독교, 특히 가톨릭은 의료와 여성의 역할을 통제했다.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었고, 이를 경감시키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기도만이 허용된 치료법이었기에, 여성 치료사들의 행위는 이 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2. 산파와 간호사의 역사
중세 후반부터 의료 체계는 점점 남성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초기 여성 치료자들은 공동체 내에서 출산과 치료를 담당했으나, 남성 의사들이 의료 지식을 독점하면서 여성들은 배제되었다. 여성들이 공식적인 의료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었으며, 귀족 남성만이 의료 교육을 받고 학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의료 체계에서 밀려났고, 간호와 보조 역할로 한정되었다.
3. 의료 산업과 젠더 불평등
현대 의료 산업이 발전하면서도 여성들은 주변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여성 치료자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약초와 경험적 치료법은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과학적 의료라는 명목 아래 배제되었다. 남성 중심의 의료 시스템은 여성 건강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고, 의료 지식과 교육에서 여성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종교와 의료는 역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교회는 의료 지식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여성 치료자를 배척했다. 지배 계층(국가, 교회, 남성 의사 등)은 의료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독점하며 여성 치료자의 경험적·전통적 치료 지식을 배척했다. 종교계는 기도만을 허용했지만, 지배층이 병에 걸렸을 때는 실제 치료를 원했다. 그런데 여성 치료사가 치료에 성공하면 그녀는 마녀로 몰렸다. 치료를 하지 않아도 마녀가 되었다. 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 치료자는 지배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식적인 의료 교육이 제도화되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의료 교육 기관이 생겼지만, 지배층이든 피지배층이든 여성은 입학할 수 없었으며, 오직 귀족 남성만이 의료 지식을 습득하고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여성 치료자들은 공식 학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되었고, 의료 체계 내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결국 여성들은 경험적 치료사에서 보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치료사는 종교계의 벽과 지배 계급의 성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철저히 마녀가 되어야 했다. 그들이 마녀가 되어야만 종교계는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배 계급은 의료와 지식의 독점을 통해 계급 질서를 대대손손 유지할 수 있었다. 《Witches, Midwives & Nurses》는 단순한 의료사가 아니라, 권력의 역사이자, 여성의 배제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의료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