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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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이 책은 성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재미있다. 음흉하거나 불편한 분위기? 전혀 없다. 오히려 종종 유쾌하고, 때론 알쏭달쏭한 부분에서는 아주 명쾌하다. 그 흔한 낯뜨거움 없이도 성병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이렇게 일상적으로 풀어낸 것이 멋지다.
독자와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 하듯, 편하게 말하지만 내용은 꽤 진지하다. 클라미디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매독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는지, 임질은 어쩌다 항생제와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는지.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최신 의학 정보도 꽤 충실하게 담겼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공포심이나 죄책감에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성병에 걸렸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지극히 일상적이고 실용적으로 말한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듯, 차분하고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간다.

또한 이 책은 질병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 섹슈얼리티와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성병 그 안에 작동하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를 짚어낸다. 예컨대 ‘왜 어떤 성병은 수치심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가?’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성병을 둘러싼 낙인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작업이 돋보인다.

딱딱하거나 지루할까 걱정할 필요 없다.
챕터마다 핵심이 분명하고, 중간중간 삽입된 일화나 사례 덕분에 몰입도도 좋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읽을 이유가 분명하다. 성교육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성병’이라는 주제를 낯설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풀어낸 보기 드문 책이다. 혼자 읽어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읽어도 좋다. 불편함을 이기는 정보, 그리고 건강을 지키는 감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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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과학이다 - 달리기를 위한 영양, 주법, 트레이닝, 부상, 보강 운동, 마라톤에 대한 모든 것
채찍단 지음 / 북스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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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달리기를 위한 팁’은 이 책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달리기 끝나고 맥주 한 잔, 괜찮을까?”라는 질문부터, “밥 먹고 바로 달리면 왜 배가 아픈지”, “실내 러닝과 야외 러닝의 차이”까지, 달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위트 있게 풀어낸다. 중간중간 나오는 미니 상식들도 톡톡 튀고 재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무겁지 않게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전문 용어가 나와도 겁먹을 필요 없다. 저자는 마치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러닝 메이트처럼, 지식을 부담 없이 나눠준다. 동시에 달리기를 ‘과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서, 독자 스스로의 몸을 더 잘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해준다.

달리기를 이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든든한 가이드북이 되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응원서가 된다. 무릎이 아픈 날에도,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서고 싶은 날에도, 이 책은 뛸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달리기도, 사람도, 알고 나면 더 사랑하게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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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불안 - 폭주하는 걱정을 멈추는 생각 정리 솔루션
닉 트렌턴 지음, 박선영 옮김 / 갤리온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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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에 이미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과도하게 생각하는 습관은 때때로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생각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와 관찰력을 조명하고, 그것을 삶에 잘 녹여내는 방법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책은 '패닉하고 갇힌 상태'에서 시작해서, '관찰적이고 의도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뇌의 구조와 감정 반응, 그리고 습관화된 사고방식에 대한 설명을 간결하고 쉽게 풀어내면서 독자가 자신의 패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불안을 진정시키는 기술이나 마음챙김 방법도 소개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함께 따라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다그치지 않는 태도다. 어떤 페이지에서도 “이래야 한다”는 강요는 없다. 대신, 지금의 나를 먼저 알아주고, 그 위에 차분히 길을 놓아준다. 마치 “괜찮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같이 걷는 동행자에 가깝다.


본문에 등장하는 질문들도 인상 깊다. '이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내가 두려워하는 건 실제로 일어날 일일까, 아니면 내 해석일까?' 같은 질문들은 읽는 내내 생각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는 자신의 불안이나 과도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익숙해진다.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우 사적인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이라, 독자가 자신의 속도대로 따라갈 수 있다.


《Wait! I Need to Overthink!》는 빠른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불안을 마주한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나아질 수 있어'라고 말하기보다, '나도 그랬어, 그리고 이렇게 지나왔어'라고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좋다.


과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꼭 단점일 필요는 없다는 이 책의 시선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는 날들이 잦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다 읽고 나면, 생각이 줄어들었다기보다는 생각과의 관계가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꽤 단단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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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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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이하게 ‘원안’ 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에다 마코토> 라는 사람의 이름이 있다.

* 작품은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가 원안을 제공하고, 와카타케 타다시(上田誠)가 각본을 맡은 소설이다.
또 『四畳半神話大系』(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의 후속작 성격을 가지며,
『サマータイムマシン・ブルース』(서머 타임머신 블루스, 2001년 연극 및 영화화된 작품)의 설정을 결합한 형태이다. 결론적으로 두 작품의 크로스오버작품!!

내가 처음 보는건지, 아님 이제사 눈에 뜨인 건지👍👍👍

‘원안’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작품의 기본적인 설정이나 이야기 구조, 세계관 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보통 소설가가 아이디어도 글도 다 쓰지만, 이 작품은 원안제공자를 굳이 드러내어, 작품을 한 번 더 보게한다. 일본은 원래 그런가?

한낮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하숙집에서 사소한 사건이 벌어진다. 선풍기의 리모컨이 망가졌을 뿐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친구들의 계획은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우연히 발견된 타임머신이 그들의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간단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어제의 리모컨을 가져오면 될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 여행이란 언제나 예상보다 복잡한 문제를 동반한다.

가볍게 출발한 이야기는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단순한 리모컨 회수를 위해 한 번만 과거로 가려 했던 계획은 점점 여러 번의 시간 여행을 불러오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변수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의 작은 행동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유쾌한 장난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는 이 소동 속에는 묵직한 질문이 숨어 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손에 넣고도 이들이 하는 일은 너무나도 소박하다. 전쟁을 막거나 세상을 구하는 대신, 더운 여름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현실적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대부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실수 하나, 지나가는 순간의 작은 행동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야기의 재미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에서 비롯된다. 각자 독특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이 펼치는 대화는 경쾌하고 위트 넘치며, 그들이 벌이는 소동은 엉뚱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 유머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 나아간다.

타임머신이라는 SF적 장치를 사용하면서도,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인간의 삶이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과거를 바꾸고 싶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이 책은 무더운 여름날, 작은 하숙집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동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리숙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 따뜻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약간 지붕뚫고 하이킥의 타인머신 에피소드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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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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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ur of Time: A New History of the World, 1850-1960(2018)』의 책이 한국버전으로 나오면서 1,2권으로 나뉘었다고 추측된다.

처음에는 ‘왜, 굳이’ 나눴나 싶은 생각이었으나, 책을 보니 나눌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Q. 1권을 나눠도 되나? 계약이 다 된 거겠지?)

가벼우니 슥슥 더 잘 넘어가고, 얇으니 손에 꽉꽉 잡히고, 아이들도 그림(아니,사진)보고 더욱 흥미를 느낀다. (내 책이야~~☺️)

'과거를 지금처럼'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든다. 댄 존스의 역사 해설과 마리나 아마랄의 컬러 사진 복원이 만난 이 책은 말 그대로 ‘과거에 색을 입힌’ 시간 여행서다. 뻔한 사진집도 아니고, 지루한 연대기 역사책도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의 절묘한 조합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이거 실화냐?’ 싶은 순간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 사진을 '보다'가 어느새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당연히 그림이다. 원래는 흑백이었던 역사적 장면들이 아마랄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는다. 장군의 군복에 깃든 먼지, 소년 병사의 두려움 섞인 눈빛, 거리의 소녀가 입은 분홍색 원피스까지—컬러 하나하나가 의도적이고 세심하게 복원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컬러화된 사진이 있어요”가 아니라, “사진이 말하는 걸 들어보세요”라고 속삭인다.

그림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던 전쟁 사진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초상이, 색을 입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흑백 속에서는 단지 ‘시위’처럼 보이던 장면이, 컬러에서는 인물들의 피부색, 피켓의 문구, 주변 환경까지 또렷이 보이며 훨씬 더 깊은 맥락을 이해하게 만든다.
아마랄의 복원은 재현을 넘어, 새로운 시선의 창조다.

그리고 그 옆에서 댄 존스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댄은 “이 장면이 왜 중요한지”, “이때 세계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짚어준다. 그의 글은 짧지만 핵심을 찌르며, 독자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게끔 배려한다. 마치 박물관에 갔는데, 큐레이터가 유쾌하고 짧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지식과 지식 사이 빈곳을 메워줄 때, ‘아~’하고 자연스럽게 ‘바보 도 터지는 소리’가 나온다.

📷 "기억에 색을 입히면, 감정이 살아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감’이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지며, 우리는 100년 전 누군가의 삶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역사는 더 이상 낡은 기록이 아니다. 생생한 얼굴, 현실적인 색감, 그리고 명료한 해설이 만들어내는 이 삼중주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선명한 세계사1,2』은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시각예술과 기록의 힘을 느끼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도 좋고, 깊은 몰입으로 읽어도 좋다. 역사와 사람과 색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 책은 꽤나 유쾌하고,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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