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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한줄평) 한국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인공은 이경.
625한달전에 부(父)가 사망하고, 6.25전쟁의 여파로 집안의 행랑채에 폭탄이 떨어져 거기 숨어 있던 생때같은 오빠 둘을 동시에 잃었다. 그 뒤로 엄마는 회색이 되었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 놓으셨노”
이 말은 어린 이경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엄마를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못한 채 살아있는 것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후 경의 삶은 회색빛이다.
(중략)
경이가 오빠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혼절한 후 눈을 떴을 때 사루비아가 눈에 들어왔다. 찬란한 젊음을 이야기하는 사루비아는 오빠들을 생각나게 했고,슬프게도 눈을 다시 감았다.
조와 경성호텔..
(중략)
붉은 색은 경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색이되어 버렸고, 회색빛을 가진 엄마를 통해 회색은 점차 증오의 색으로 변한다.
그러던 중 화가 옥희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옥희도는 그런 마음을 정확히 간파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경을 뿌리치지 않는다.
(매우 적당히 즐기면서, 매우 적당히 이용하고, 매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다.) 유부남들은 특히 결정적일 때, 꽁무니를 빼는데, 옥희도 역시 전형적인 유부남이었다.
“사막에서 목마른 자가 신기루나 환각으로 오아시시를 보는 데도 이치가 있을까?”
옥희도는 ‘달과 6펜스’의 순한 스트릭랜드 같았다. 자신의 예술혼을 태우기 위해 경을 뮤즈로 이용했다. 그것도 아주 가늘고 길게....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발뺌할수 있게.
그리고 태수와 직면한 희도는 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아는 나를 사랑하게 아냐. 나를 통해 아버지와 오빠를 환상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경아는 희도 아내에 대한 감정에 대해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희도 아내에 대한 마음은 희도에 대한 소유욕의 감정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뒤섞여 보인다.
(중략)
희도의 아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면서도 갑자기 적대적으로 대하는 장면이 경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처럼 보였고, 누군가(희도가 아니더래도)의 지지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PTSD같았다. (안걸리는게 이상하다.
희도의 그림에서 나무 그림이 있는데,
희도의 입장에서 보면, 나목(희도)이 바라는 여인 역시 둘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희도가 볼 때, 나무도 잎을 다 떨군채 몸을 움츠릴 때, 여인들은 살기 위해 더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나목은 희도를 뜻하거나 혹은 희도의 예술혼을 의미한다.
경을 나목에 빚대어 설명하면, 겨울을 지낸 나목이 지금은 감람을 띄며 점차 본연의 색을 드러내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은 드디어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코발트 블루
어둡지만 어둡지 않고, 밝지만 밝지 않고, 나름의 중심을 잡는, 그러나 어디에나 있지 않은 색.
그 뒤로 황금빛 은행과 아이가 놓친 붉은 풍선이 마지막 장면이다.
(신호등같다. 🤣)
다시 훑어봐도 경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떠올랐다.
울지 않는 경. 거짓말하다 자기꾀에 넘어간 경, 사랑 앞에 저돌적인 경, 어리지만, 남자를 다룰줄 아는 경,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경.... 이 모든 것이 스칼렛 같았다. 내가 가진 영화의 이미지는 붉은색이고, 붉은색은 태양의 색을 말한다. 그러나 나목의 색은 연두다.
경이 힐링을 얻은 색은 노랑이었는데, 왜 연두색(감람)일까?
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희도의 아내를 통해, 은행나무를 통해 달랬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마지막에 누운 이불은 연두색이다.
또 은행나무는 노랑색이 되기 전에 연두색을 띈다.
또 나목이 봄이 되어 새싹을 틔울 때는 연두색이다.
경에게 연두는 뿌리이며, 희망이며, 보내줘야 할 과거이며, 과거를 잘 보내고 맞이하게 될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초록이 무성한 어린시절과
농익은 노오란 중년
그 사이 연두색시절을 무사히 보낸 경에게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그만하면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