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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공화국 ㅣ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조선조 양반의 사회사를 다룬 미야지마 히로시의『양반』에는 유교 문화의 전통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이 상세히 다뤄져 있다. 특히 양반계층의 형성 과정을 사회경제적 측면과 연결하여 분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양반은 노비와 농지를 근간으로 한 경제적 기반이 제한되어 있었기 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속제도, 족보뿐만 아니라 친분 네트워크의 관리가 핵심적이었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이었던 ‘유곡 권씨’ 가문의 고택이 복원되어 남아있는 <닭실 마을>에 가보면, 양반의 전통 가옥 구조 중 ‘사랑방’을 볼 수 있다. 양반의 일상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사랑방’에서 맺어지는 친분관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드는 손님들을 치르기 위해 양반가의 여성들과 노비들은 고단한 보살핌 및 접대 노동을 수행했다. 복원된 사랑방에 들어가 보면, 소박하지만 아늑하고 따뜻하며 고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방문했던 고택은 사랑방이 그 집에서 제일 좋은 쪽, 볕이 잘 드는 남쪽에 있었다. 사랑방의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는 제사 때면 좁은 부엌에서 남자들이 먹고 물린 상을 받아 짬을 내어 끼니를 해결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인상에 남았더랬다.
묘하게도 룸살롱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소통코드를 분석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랑방이 떠올랐다. 이런 연상 자체가 ‘전통’에 대한 모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방과 룸살롱은 접대의 공간이라는 점, 남성 동성 사회의 특권화된 친분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이런 연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방이 양반 '접대문화의 제도화 및 정교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룸살롱의 칸막이, 밀실은 기업의 그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책 p.87 <직장인이 꼽는 ‘내가 술 마시는 이유’> (자료: 현대산업개발 사보팀 1997년)
업무차 어쩔 수 없이 6%
스트레스 해소 목적 11%
그냥 마시고 싶어서 13%
기분 전환을 위해 18%
원활한 인간관계 때문에 46%
성구매자의 성매매 횟수가 늘어날수록 알코올 중독의 위험도 함께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또한 한국은 전체 남성 인구 대비 성구매 유경험자 비중이 서구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성구매자 프로파일은 서구형 성구매와 한국형 그것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서구의 성구매자들은 성구매 행위가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엔 집단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의 ‘접대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만의 리그, 특권을 유지하는 비공식적 규범이자 관행이다. 과연 ‘그들’이 누구인가? ‘접대문화’라는 관행을 변화시킬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이러한 관행을 ‘원활한 인간관계’로 만드는 자, 누구인가?
p. 263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은 룸살롱
“검사 시절, 나는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은 룸살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사를 하다 보니, 온갖 나쁜 짓은 다 룸살롱과 연결돼 있었다....마음에서 우러난 교제가 아닌, 억지 친분을 쌓으려면 술과 접대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폭탄주를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법과 질서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해진다”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말한다)
현재 한국의 행정력은 성매매를 개인 남성의 도덕적 일탈로 간주하고 단죄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깔때기 행정이 성매매 현상의 본질, 즉 기업의 부조리한 이윤축적 관행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기득권에 대한 과도한 똘레랑스와 서민 및 주변화된 계층에 대한 엥똘레랑스가 부조리하게 공존하는 사회다. 저자가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이라고 단정한 룸살롱 문제는 개인을 단죄하는 것으로 결코 해소될 수 없다. 기업인들이 이러한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 한 룸살롱 접대문화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달리 하자면, 기득권, 특히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서슴지 않는 기업인에 대한 똘레랑스야말로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이 아닐까?
사족. 저자의 정보 수집 및 편집 능력에 감탄하게 됨. 정보를 적절히 갈무리해내는 능력과 그 에너지가 놀라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