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와 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책 표지의 고양이 그림이 참 인상적이다. 만만치 않은 인상에 목에는 훈장을 매달고 있다. 주인공 말케는 이 훈장을 목에 달기 위해 인생을 바치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무척이나 어울리는 이 그림이 과연 누구의 작품일까 궁금했는데, 이 그림도 <고양이와 쥐>의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왠지 글과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라니, 재능이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귄터 그라스는 열 세살, 열 네살 때 미술에 관한 직업을 갖기로 생각할 정도로 미술적인 방면에도 소질이 있었고, 소설뿐만 아니라 시화집도 냈다고 한다. 그 시화집의 내용은 시와 그림이 거의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니 그 그림들도 궁금하다.
화자인 필렌츠가 말케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된 1939년부터 패전한 1945년 무렵이다.
주인공 말케는 '울대뼈'가 눈에 띄게 컸다. 말케는 고양이가 쥐로 착각할 정도로 크고, 쉴새없이 움직이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울대뼈를 감출 도구들을 끊임없이 찾는다. 드라이버, 마리아상이 달린 목걸이, 털술, 넥타이, 야광배지, 봉봉 등...
말케는 무리의 대장인 동시에 무리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자이다. 말케는 처음에는 체육시간에도 활동도 하지 않고, 수영도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가 수영을 배우고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한다. 반쯤 침몰한 폴란드 소해정은 말케가 동급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행동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배의 무전실 안에 자기만의 은신처도 만든다.
말케의 학교 선배로서 훈장을 받은 잠수함장이 와서 강연을 하고, 말케는 울대뼈를 감출 최고의 물건을 발견한다. 일명 봉봉이라고 불리는 훈장이 바로 그 물건이었다. 결국 말케는 그 훈장을 훔치고, 나중에는 퇴학을 당한다. 이 일을 계기로 말케는 참전을 하게되고, 드디어 훈장을 받게 된다.
훈장을 받은 말케는 학교 강당에서 강연을 하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한다. 말케는 교장선생님에게 복수하고 어린시절 소해정의 무전실 안으로 도망친다. 두 개의 깡통은 가지고 가지만 깡통따개는 가지고 가지 못한다. 결국 깡통따개를 발 밑에 숨긴 필렌츠의 고백으로 끝이 난다.
이 책은 전쟁의 무서움과 죽음, 그리고 아픔 등을 직접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주는 피해와 고통, 아픔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전쟁 때문에 가족 중 한 명이 전장에서 사망하고, 고등학생들이었던 주인공과 친구들이 전쟁이 자원하여 군인이 되고, 전선이 아닌 일상에서도 물자가 부족하게 되며, 해수정이 바닷가 근처에 침몰해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등 이 모든 일이 그냥 일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전쟁에서 훈장 받은 사람을 우러러보는 일이 당연한 시대였기 때문에, 말케도 그 훈장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그 훈장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 강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 결국 말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유였을 것이다. 전쟁의 영웅이 되는 소년의 이야기, 그것을 방조한 사회의 집단적 책임 등을 말하는 이 책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밴 사회를 비판한 소설이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게오르크 뷔히너 상, 토마스 만 상, 몬델로 문학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자전적 소설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출간하며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음을 뒤늦게 고백했다. '단치히 3부작(양철북, 고양이와쥐, 개들의 시절)'에 등장하는 세명의 1인칭 서술자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두 죄책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금의 폴란드에 해당하는 단치히 자유시는 작가의 고향이자 세 작품들의 배경이었기에 생겨난 별칭이다.
작가의 독일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단치히 3부작'의 다른 작품들인 <양철북>과 <개들의 시절>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 지원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