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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평점 :
#싸울때마다투명해진다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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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맘에 들어 앞부분을 읽었고, 단 몇개의 문장을 읽고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이다. 그만큼 문장들이 좋았다. 산문책은 대학생시절 이후로는 내 의지로 읽은 적이 없건만 이번 책은 정말이지 취향저격이다. 여자로서의 본분에 대한 파트를 읽으면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책인가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덮고나니 생에 대한 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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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아릿했다. 아직 결혼하지도 않은 주제에 엄마의 마음에 공감이 갔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공감을 하는 내 자신이 미웠다. 엄마로서 살게 될 삶, 40대로서 살게 될 삶, 인생에 대한 고민은 커녕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낼 삶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에 허무해지고, 얼마나 많이 행복해지고, 지난간 것들이 얼마나 그리워질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예상조차 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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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일찍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되어서 감사하다. 책에 나온 말처럼 ‘사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미리 삶을 탐구한 탓에 조금이라도 덜 흔들릴 것이라고 혹은 아무리 흔들려도 다시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할 근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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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작가의 생각과 경험들, 그리고 시 혹은 산문의 일부가 결합된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있는데 등장하는 시도 꽤나 좋다. 시라면 몇 편 읽다가 졸기 일쑤이기 때문에 애초에 읽지를 않는 나인데도 좋았다. 중간 중간에 위인들의 명언들을 인용한 부분이 꽤 많은데 그것들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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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작가가 말하는 모든 생각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설명이 있기에 존중할 수 있다. 언젠가 엄마가 되었을 때, 40대를 앞에 두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삶의 소외나 불평등을 겪는 순간들에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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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
인생의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
p.253
1년 내내 성탄 전야처럼 북적거리는 이 향락의 미로는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자식들의 노동으로 굴러가는가.
p.265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 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