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솔직한 글을 담백하고 세련되게 쓰는 작가들에게 꽂혔습니다.

이슬아 작가나 홍승은 작가님같은 분들요. 세련되다는 말을 멋대로 정의내리자면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감정이 독자보다 앞서지 않는 그런 글이라고 말해두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들의 글이 그리 솔직한 글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슬아 작가가 쓴 아래의 문장들을 보고나서요.


'우리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시간 안에 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든 다듬어서 완성하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쓰지 않는 이야기 또한 있었습니다. 각별한 경험을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을 때 보존되는 자유와 행복을 선생님도 아실 겁니다.' 


요즘 문학동네에 이슬아작가와 남궁인작가가 편지형식으로 주고받는 에세이가 연재되고 있거든요. 거기에서 저 문장을 발견하고는 언젠가 제 글을 읽은 누군가가 '자전적인 소설이구나'라고 평을 시작했던 경험이 자연스레 떠올랐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허섭스레기같은 글을 보여줬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그 글을 읽은 사람은 자전적이란 말을 꺼냈습니다. 그 글에 담긴 경험이 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에서 온 글이었겠죠. 하지만 그건 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화자가 겪는 슬픔이 제가 겪은 것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을 뿐이었죠. 저는 오히려 제 경험을 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었습니다. 겪었던 경험이라면 어떻게든 비틀고 변형해서 아무도 못 알아차리도록 만들었을 거예요. 그건 그렇게 쉽게 기록되어서도 안 되고 쉽게 읽혀서도 안 되는 각별한 경험이니까요.


내 경험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건 내 머릿속뿐입니다. 일기에도 솔직한 감정은 남겨두지 않죠. 누군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솔직한 글은 생각보다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년엔가 읽었던 아니에르노의 글은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글이었어요. 하지만 그 글조차 아주 솔직한 글은 아닐 거라는 확신도 듭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글을 쓰는 일은 꽤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어떤 글들은, 심지어 제 글조차도, 어떻게 보여질까를 의식한 문장들로 빼곡하거든요. 조만간 아니에르노의 글을 또 읽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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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5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1-05-0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며가며 그 서신들을 보았어요. 혹시 출판되면 읽어보고 싶기도 했더랬답니다. 이슬아씨의 글의 경우 솔직하다기보다는 용감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봄밤 2021-05-05 10:44   좋아요 1 | URL
용감하신 건지 아닌지 저로선 좀 헷갈리더라고요. 오히려 겁이 많아서 그렇게 쓸 수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요. 분명한 건, 저는 족히 두 세권은 더 읽고 싶은 글이라고 느꼈다는 점이네요. 왜 이슬아 작가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았어요ㅎㅎ

공쟝쟝 2021-05-05 12:35   좋아요 1 | URL
저두 환호하며 수필집을 읽은 독자이지만,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sns를 찾아보면서 제가 관음증은 아닐까?도 생각하게 만든 책은 처음이었어여.. 이후에는 그래서 찾아 읽기가 꺼려졌고, 이슬아작가를 너무 응원하지만 소진되지 않길 바랬어요. 차라리 잘 감추고 있다는 뉘앙스의 인용하신 저 문장은 반갑기도 하네요 ^^ 안심이 되서 저두 몇권 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