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신유진 지음 / 1984Books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37.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후 그녀의 글을 여기저기에 추천하고 다녔다. 누군가는 그녀의 책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어렵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느냐고 왜 같은 말을 어렵게 하는거냐고 내게 물었다.

누군가에겐 쉽게 읽히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타지의 글만큼이나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사는 삶이 단 하나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건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난 그녀의 글이 너무나 쉽게 읽혀서, 내 마음이 그녀의 마음을 따라 휘었다가 꺾였다가 부러지기도 해서 그래서 참 슬펐다.

절망하는, 절망하려는 고독이 내 삶의 어느 시절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자꾸만 그때의 마음을 그때의 고독을 끄집어 올리고야 만다. 다리 너머를 향해 10초 안에 뛰어가려는 아이의 마음 같은 것은 내게 이해하기 쉬운 일이지만 국수를 먹고 다리 위를 휘청거리는 사내의 마음 같은 것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두 마음을 작가가 한 데 이어 ‘얼룩이 된 것들’이라는 소설로 남기자 어쩐지 나는 그 사내가 된 기분이었다. 잘 쓴 글은 이런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라고 소리치는 이런 끈질긴 글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라도 더 읽어보려 애쓸 삶의 과제여야하지 않을까.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를 그토록 좋아하고도 단편소설을 느리게 읽은 것은, 두 가지 마음에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행여나 단편소설에서는 실패하지 않을까 라는 조바심이 첫 번째 마음이었고, 혹여나 그 작품이 너무나 좋으면 아끼고 아껴서 정말 그 글이 내게 필요해질 때 읽고 싶다는 마음이 두 번째 마음이었다. 다행히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첫 번째 소설인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를 읽으면서 뒤로 갈수록 재미없는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단편집 이름을 딴 소설이니만큼 작가에게 가장 자신있는 작품이리라 생각했다. 두 번째 소설인 ‘끝난 연극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다. 그녀가 쓰는 글은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런데 세 번째를 거쳐 네 번째, 다섯 번째 글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도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쓰는 글은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ㅡ 그래서 이 단편집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면서ㅡ 다양한 사람들을 말한다. 어딘가 닮은 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듯한 그 삶의 무게가 어쩐지 너도 힘들지, 너도 힘들지 하고 모두를 다독이는 기분이라서 나는 찐빵을 사오는 아버지였다가 이안을 떠올리며 휘청거리는 소은이 되었다가 불쌍해서 나를 좋아하냐고 외치는 세계가 되어 펑펑 운다.

최근 박상영 작가의 글에 감탄했었는데. 박상영 작가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글이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모든 글이 널리 읽히는 거지만.

그녀가 어서 장편소설을 쓰면 좋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gicbegins 2019-11-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덕분에 작가님 소식을 알아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