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레지던트
이서윤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이 책의 설정이 너무 부럽습니다. 늦더라도 딱 이대로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2012년 10월 22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1993년 남북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
2000년 세계 경제 5위권, 군사력 3위권으로 도약한 통일한국
2004년 통일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2009년 이강유, 통일한국 3대 대통령으로 최연소 당선
이상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이 글은 정말 안타깝게도 판타지로맨스다.
헌정 사상 최연소인 34세에 통일대한민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강유. 수백만 여성 유권자들을 팬으로 거느린 미혼인 젊은 대통령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난 구 년간 스치듯 마주치기를 거듭했던 한 여자가 점점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그를 흔들어 놓는다.
반면, 강유의 가슴은 바람을 맞아 더욱 썰렁해져 갔다. 왜 이렇게 가슴속이 허한지 스스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게 외롭다는 감정일까?
잘 모르겠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쁜데, 그럼에도 문득문득 가슴이 허할 때가 있었다.
흠, 외롭다면 결국 연애가 하고 싶은 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 정신없이 살았다. 20대를 지나고 30대로 넘어온 지도 많이 지났건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던 그 일이 퍼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떠오른 영상 하나가 그의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거친 모래 바람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던 한 여자의 얼굴.
강지후…….
(pg. 60-61)
내전이 일어난 아프리카 아이센공화국에 종군한 여기자, 강지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정치부로 발령이 나고 청화대 출입기자가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빠의 동기동창이자 스무 살 자신의 짝사랑이었던 이강유 대통령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지 말고……”
지후가 올려다본 강유의 눈빛은 고요했다.
“……나랑 연애합시다.”
강유를 올려다보는 지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마치 ‘밥이나 한 끼 먹읍시다’ 하는 말을 꺼낸 사람처럼 일상적인 강유의 표정으로 인해 지후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pg. 102)
“방금 강지후는 수백만 여인을 연적으로 돌려 버렸어요. 한순간이네요.”
(중략)
“그래서? 걱정하거나 후회하나?”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똑바로 강유의 시선을 올려다보며 눈빛을 빛냈다. 열렬한 키스의 후유증으로 도톰하게 부푼 입술과 볼이 발갛게 상기됐다.
“강지후가 후회를? 천만에요.”
그래,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은 이 사람의 직위일 뿐, 이강유는 사람이고, 또 남자다. 이렇게 심장이 벌떡대고 뛰는데, 이대로 도망가면 아마 터질지도 모르겠다. 그래, 연애……할 거야. 연애할 거라고!
“대통령 오빠나 겁 집어먹지 마세요.”
지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 이제 스무 살 아니거든요.”
눈동자를 반짝이며 바로 그녀 스스로 발돋움하여 강유의 목을 껴안았다. 보기 좋게 늘어진 그의 입술을 다시 찾아드는 지후의 입가에도 웃음이 터졌다. 그녀의 지구 마을로 강유가 돌아온 날이었다. 서로의 마음에 상대가 가득 찬 느낌이 꽃망울처럼 화륵 피었다.
(pg. 130)
가끔 잠 안 오는 밤이면 이렇게 내 나라의 땅을 둘러본다는 사람. 답답하고 지칠 때면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으로 아름다운 조국을 확인한다는 사람.
평양까지 오는 동안 나누었던 말을 떠올리며 지후는 천천히 강유의 팔에 몸을 맡겼다.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나른하고 행복한 기분이 몸의 중심에서 시작해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겁내지 말자, 강지후. 네가 본 이 사람을 믿고, 마음 가는 대로 한번 가 보자. 최선을 다해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 나중에라도 후회 따위 하지 않을 테니까.
(pg. 164-165)
이렇게 두 사람은 비밀연애를 시작하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는 점점 깊어진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급변하는 아이센공화국의 내전 상황에 한국은 파병을 결정하고 서로의 입장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두 사람은 부딪힌다. 결국 대통령 이강유는 전쟁을 시작하는 통일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로 전쟁을 지휘하고, 기자 강지후는 전쟁터로 변한 아이센공화국으로 종군한다.
조심에 또 조심을 한다 해도 천운 또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구석에서 총알이 날아와 심장에 박힐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후는 자신이 운명처럼 되뇌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전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국군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겼는지, 모조리 기록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강유……. 나의 대통령.
(중략)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내 걱정은 않겠다던 당신이……, 나를 잊을지도 모르겠다던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그 자리에서, 나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될 거야. 당신 말대로 지금은 전쟁 중이니까.
돌아섰지만, 찰나를 영원처럼 TV화면에 비치는 강유의 얼굴이 지후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pg. 382-383)
통일대한민국에 대한 설정은 눈물 나도록 부럽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미혼의 대통령이라는 가정을 정말 로맨틱하다. 그리고 이런 뛰어난 남자 앞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이 확실한 여자주인공도 정말 좋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글 중간 부분이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조금 더 이야기의 강약이 더해졌다면 정말 뛰어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순전히 나만의 의견 내지 생각. 하지만 마지막 삼분의 일 분량은 와, 하는 감탄이 나오도록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음…… 이대로 드라마 한 편 찍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과 왜 이 작가님은 이다음 이야기를 쓰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 뒤로 영부인이 된 지후의 모습을 담은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와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