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고 라운드 - Navie 291
심윤서 지음 / 신영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2012년 11월 9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이 글은 특이하게도 이메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남녀가 서로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메일들로 이야기가 이어져 간다.  

 

화사한 분홍의 표지만큼이나 화사하고 달콤한 글이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듯이 이 글은 ‘봄 같은 사랑 이야기’이다.

‘얼굴이 잘 붉어지는 봄꽃 같은 여자’, 윤은홍과 ‘무미건조하지만 사실은 아주 섬세한 남자’, 이각모, 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참 평범하지만 따뜻한 이야기이다.

 

꽤 괜찮은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외삼촌의 가구 공방에서 전통 가구 제작하는 일을 배우는 연홍은 어느 날 반강제로 선을 보게 된다. 그녀의 선 상대는 로펌 대표이사인 부친이 점찍은 변호사로 이각모란 남자. 각모는 그의 보스가 자신의 딸과 선을 보라는 말에 망설이다 결국 선 자리에 나가게 된다.

 

두 사람은 막 봄이 시작되는 때에 삼청동 민속박물관 제2전시실 느티나무 단층 머릿장 앞에서 처음 만난다.

     

 

단층머릿장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웹 

 

그 이름만큼이나 보들보들하고 순수한 연홍과 그 이름만큼이나 각이 지고 딱딱한 각모는 그렇게 선을 보고 만남을 거듭하고 서로를 알아간다. 

 

처음 연홍을 멀리서 본 각모는 그녀의 수줍게 얼굴 붉히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고, 반면 연홍은 각모를 보고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 같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크기가 크고 전면의 장식이 섬세하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건조하고 메라른듯 하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도 섬세한 각모를 연홍은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만남을 거듭하고 서로를 알아가던 두 사람은 결혼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가정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꾼다.  

 

  

숭숭이 반닫이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웹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은 선 본 이들 사이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따뜻하고 정겨운 자신들만의 가정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점. 그리고 그 꿈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 같은 순간, 모든 것을 뒤흔드는 일이 생기고 두 사람은 거듭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왠지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귤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은 글이다. 가족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는 화사하고 달콤한 이야기에 마음이 저절로 따듯해진다.

 

부레풀은 아교보다도 접착력이 더 강해서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나무를 붙일 때 많이 사용한대. 가구의 뼈대가 되는 소나무와 마감이 되는 괴목 사이에 부레풀을 바르고 마끈으로 칭칭 동여매서 다시 6개월을 기다리면 소나무와 괴목은 한 몸인 것처럼 달라붙는 거지. 연리지처럼 말이야.

갑아.

그 지난한 작업을 바라보며 내가 무슨 생각 했는지 아니?

전혀 다른 인격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 일심동체를 이루려면 그 사이에 무엇이 필요할까, 였어. 현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레풀 같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pg. 66-67, To 연갑 from 윤은홍)

 

이모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세상에 내가 원하는 남자는 없다는 거야. 세상엔 자기 나이만큼 살아온 ’그냥 남자‘들만 있을 뿐이지.

은홍.

연애란 말이지, 그렇게 살아온 ‘그냥 남자’ 속에서 네가 원하는 걸 찾아내는 거야. 보물찾기처럼.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모습이 유통성 없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배려 깊고 반듯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네 관점에 따라 ‘그냥 남자’는 특별한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찌질한 남자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내다 보면 어느 날 ‘그냥 남자’는 ‘너의 남자’가 되는 거지. 어쩌면 이각모라는 남자는 네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감추고 있는지도 몰라. 물론, 아닐 수도 있고.

(pg. 95, To 윤은홍 from 우아린)

 

“잘 자요.”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 남자의 어깨를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저 어깨를 한번 토닥여 줘야지, 생각했어요.

이모.

예전에 제가 짝사랑했던 남자들과는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남자는 계속 내일을 생각하게 해요. 그래서 바쁘다고 연락도 없는 남자를 자꾸 용서하게 되나 봐요. 내일…… 만나면 되니까.

(pg. 148-149, To 우아린 from 윤은홍)

 

“나두요. 나두 달 같은 사랑이 좋아요.”

그네가 높이 솟아오르자 오월 양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어.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또 언제나 다른 모습이잖아요. 채워지고, 비워지고, 그러다 다시 채워지고. 모습이 달라져도 알 수 있잖아요. 언제나 거기에 달이 있다는 거요. 화내고 짜증 내고 싸워도 언제나 거기에 사랑이 있다는 걸 서로 느낄 수만 있다면, 그건 꽤 멋진 관계가 될 거 같아요.”

그네가 솟아오를 때마다 오월 양의 목소리도 허공으로 높게 흩어졌어. 가슴 깊숙이 물방울이 맺히듯 왠지 간절한 목소리라는 생가도 들었어.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도 날렸지. 오월 양의 펄럭이는 스커트자락을 바라보다 문득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거 같아 그넷줄을 잡아챘어.

(pg. 181, To 이준모 from 이각모)

 

갑아.

가슴 한가운데, 심장이 뛰고 있는 그곳에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닿았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너무 놀라 숨을 내쉬지도 들이마시지도 못하는 그 순간에 고작 내가 생각한 거라고는 ‘땀 냄새 나면 어쩌지’였어.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샤워하고 어떤 브래지어를 했더라’하는 앙큼한 생각도 했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아무리 갑이 너라도 말할 수 없어.

키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 내가 키스 받은 곳을 모두 알려 주고 싶지만, 네가 너무 괴로워할까 봐 생략할게.

허락할 테니 마음껏 상상해 봐.

 

스물여덟 곳에 키스를 받은 은홍.

(pg. 376-377, To 연갑 from 윤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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