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고등학교 1
은태경(계란토스트) 지음 / 발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2012년 11월 2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소설은, 특히 장르소설은 취향을 많이 탄다고들 하지만 그 말을 이번처럼 공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싼 돈 주고 구입한 책이고, 힘들게 쓰신 분을 생각해서 꼭 한 번은 읽어야겠는데 책을 다 읽기가 정말 힘들었다.

일단 한 번 다 읽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대략난감이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 책은 로맨스소설이 아니라 인터넷소설이다. 소재와 설정, 인물들과 에피소드들, 거기에 더불어 문장들까지 십대들이 쓰고 읽는 인터넷소설 같다.

 

여자주인공인 김수영은 집안의 사정-사실 제 정신이 아닌 모친의 광기 탓-으로 어릴 때부터 남자로 키워진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인 최민우는 중학시절부터 그런 그녀의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킨다. 두 사람은 함께 남자중학교를 다니고 남자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 두 사람의 또 다른 절친인 승욱과 강도 함께 학교를 다닌다.

아무리 특이하고 황당한 설정이 로맨스소설에서 나쁘지 않고 흔하다고 하지만 이건 조금 너무했다.

일단, 두 집안 모두 재벌이다.

여자주인공 김수영은 웬만한 또래 여자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지지 않는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로 훈련되어서 키워진 덕에 못하는 운동이 없고 싸움 실력 또한 출중하다. 남자주인공 최민우는 말이 필요 없다.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외모, 두뇌, 집안은 물론이고 김수영 하나만을 보는 일편단심까지.

나를 더 황당하게 했던 것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에피소드들이다. 수영이 고등학교의 축제 때 여장을 하고 활약하는 모습이나 민우가 웨이터 차림으로 인기를 끄는 모습. 여장을 한 수영과 일일 웨이터로 가장한 승욱과 강이 함께 파티에 참석해서 민우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감시하는 장면들. 이 모두가 순정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장면들이다.

게다가 뒤에 밝혀지는 수영 모친의 사연은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이 없다. 군데군데 억지스러운 설정을 뒷받침하려는 긴 설명이나 해설도 보인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연재 때도 그렇고 출간해서도 인기를 끈 것으로 안다. 작가님의 필력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일인칭 시점, 수영의 눈으로 이어가는 이야기들이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너무도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뻔하면서 황당한 에피소드들에 정말 내 취향은 아니었다.

      

“김수영.”

“나 남자 안 좋아한다.”

“으응.”

“여자도 안 좋아한다.”

“야, 그럼 뭐냐?”

“김수영만 좋아해.”

낯이 뜨거워 미치겠다. 야, 너무 닭살스럽잖아. 민우의 시선이 너무 부드러워 얼굴이 더 달아오른다. 지금이 저녁인 것이 천만다행이다. 바람이 좀 더 불었으면 좋겠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김수영이라서 사랑해.”

얼굴이 불에 탈 것 같다. 너 원래 이런 인간이었냐. 너무 좋긴 한데 돌겠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작 녀석의 발끝만 보며 숨을 골랐으나 날 끝까지 궁지로 몰고 갈 작정인지 턱을 잡아 올리는 민우 녀석. 내 얼굴 열기를 감지한 모양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녀석이 갑자기 재수 없어진다.

(pg.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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