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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지은이: 김제동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2011년 4월 21일
초판 50쇄 발행 2011년 11월 25일
나는 〈환상의 짝꿍〉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다. ‘사촌이 논 사면?’일고 물으면 ‘보러 간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 싱싱함에 덧씌워 ‘배가 아프다’고 가리치는 사회다. 함께 산에 갔던 윤도현 형의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던 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푸름을 어른들이 마치고 있는 게 아닐까? (pg 13, 김제동, 이외수 편)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김용택 (pg 39)
박 변호사께서 갑자기 명함을 건네신다. 명함엔 ‘소셜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소셜 디자인? 생활과 사회와 사람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설명이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무언가를 바꿔 상황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 이참에 나도 ‘스마일 디자이너’ ‘해피바이러스 디자이너’라고 새겨볼까? (pg 64, 김제동, 박원순 변화사 편)
지금까지 과학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편하고 풍요롭게 살아보자는 방향으로 사용됐어요. 이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해요.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도 과학은 권력과 돈에 종속돼 있는데 이건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과학과 다르잖아요. 과학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리적 사고이자 방법론으로 보고 싶어요. (pg 77, 정재승, 정재승 편)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 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pg 103, 고현정, 고현정 편)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거든. 그래서 내 작품에 대한 비판에는 언제든 정당하게 맞설 준비가 돼 있어. 요즘 선진국 되겠다고 발버둥들을 치잖아.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나름의 선진국에서 대중 아티스트들은 정말 존중받아. 이런 어려운 시대에 감성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박수 받을 만하지 않나? 연주, 노래, 연기, 개그 등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자기 고통을 갉아 먹으면서 창작한 산물이야. 난 내 작품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데 그게 인기를 못 끌 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무러 좋아할까 고민하며 좇아가는 식의 본질을 비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pg 141, 김C, 김C 편)
그럼,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겨울이죠. 그렇지만 겨울이야말로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에요. 어릴 때 어머니가 밀가루를 치대서 칼국수를 만드는데 그만하고 끓이면 좋겠다 싶은데도 자꾸 비벼 치대기를 반복해요. 그럴수록 칼국수의 면발이 쫄깃해져요. 전 그 칼국수의 면발이 역사가 전진하는 방법 같아요. 지금은 치대고 있지만 이 자체가 전진이죠. 태양만이 역사를 전진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pg 166, 안희정편)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마이 하는데 결국은 본인이 느껴야지.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땅볼로 날아간다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나는 인정 안 해.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 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내가 나를 돕고 최선을 다해야 남도 나를 돕고 기회가 생기는 이치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 (pg 178, 양준혁 편)
어찌 보면 이 시대가 가장 불행해요. 일본 식민지 때 타인에 의해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을 천시해요. 바깥을 나가보면 죄다 외국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써놨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뒤에 있는 꽃밭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래요. 이런 얼빠진 놈들이 있나. 스스로 식민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식민지를 자초하고 있다니까. 물론 영어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영어로 먹고 살아야 할 사람을 집중 양성하고 투자하면 돼. (pg 200, 조정래 편)
호텔에서는 야한 영화를 안 틀어줘서. 하하. 늘 좋은 것,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만 찾다보면 몸이 썩어. 진짜 취한 게 없어지는 거지. 시상식에도 그래서 안 가고 싶어. 작품보다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는 게 아주 싫어. 어떨 땐 레드카펫을 팍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pg 213, 황정민, 황정민 편)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흐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 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결빙, 정호승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도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 감옥에서 보면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했어요. 나 같은 무기수는 사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만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pg 289, 신영복, 신영복 편)
2011년 한국의 출판계는 시사, 사회 이슈가 중심이었던 것 같다. 연말에 여러 곳에서 나오는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 중에 빠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닥치고 정치’, 정치 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와 '청춘콘서트'가 화제가 된 해. 이건 아마도 현 한국사회가 이런 이슈들에 깊이 고민하고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거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 힘들어 하고, 그 힘듦을 이길 해법을 찾는다. 그 해법을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람을 만나 소통하려 한다.
이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도 이런 맥락의 책 중 하나이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경향신문에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칼럼에 실었던 이 시대의 흥미로운 인물들과 만나 나눈 내용들을 간추려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심각하거나 깊이가 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양각층의 흥미로운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고 부담없이 사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편당 길이도 짧아서 짬짬이 읽기 좋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남편에서 지하철에서 읽기를 권한 책이다. 일주일 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완독했다는 보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