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체제가, 그때 그때 가능한 것의 한계 내에서의 ‘정당한‘ 질서라는 뜻에서 ‘정당한 법‘이라고 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요구조건을 충족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에게도, 법률가에게도 제기되는 것이다.
정의의 내용, 인간의 생활의 ‘정당한‘ 질서의 문제는 적어도 플라톤 이래 윤리학의 기본문제에 속하기 때문에 철학자에게 관련되고, 또 법률가는 우선 실정법의 주어진 규정이나 기준적이라고 인정되는 법관의 여러 재판례만을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편 그들이 말하는 근거가 변화된 생활관계나 또는위상을 달리하는 사건에 당면하여서도 역시 ‘정당‘한가 하는 물음이 항상 제기되는 것이므로 위의 문제는 법률가에게도 관련되는 것이다. - P1
그러나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서로 다르다. 철학자는 서양철학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규정이나 재판의 기초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을, 법률가는 언제나 개별사건의 정당한 결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방은 타방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쌍방에 손실을 끼친다.
만일 법률가가 그들 나름대로 ‘정당한‘ 결정을 발견함에 있어서 적용한 고유한 관점에 관하여 제공하는 자료를 철학자가 자신의 사색에 참작한다면, 항상 제기되는, 단순한 ‘공허한 정식‘ (Leerformel)이라고 하는 비난을 받게 하는 바의 모호한 설명 이상의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률가가 자신이 발견하여 사용한 보다 일반적인 관점들을 당해 실정법을 초월하는 법윤리와의 관련에서 고찰한다면, 그 관점들을 보다 명료하게 다루고, 그것들의 ‘가치‘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간에는 하나의 가교가 필요하다. 그것을 이하에서 시도하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하여는, 일단 비교적 광범위한 기본적 동의를 얻고 있는 법윤리의 일정한 기본적 명제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실정법의 규정이나 재판에 ‘구체화‘ 되어 있는정당하다고 간주되는 규정의 원리 사이에서 시점을 번번이 왕복시켜야 한다.
즉 두 개의 상이한 극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양자를 매개하는 사고과정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많은 독자를 혼란시키게 될 것이다. 즉 법철학적 서술과 실정법에 관한 서술이 빈번하게 교차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영역침범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경계유월이 본서의 방법론적인 원칙이다. 그것이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저작으로부터 본서를 구별하는 것이고, 또한 새로운 시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정당한 법‘ (richtiges Recht 정법)이라는 표현은 법철학자 루돌프슈타믈러 (Rudolf Stammler)에게서 연유한다. 그의 책 『정법론』 (DieLebre von dem richtigen Recht)은 1912년에 출간되었다. 그 이후로 그 표현은 법철학 관계의 문헌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해석법학관계의 문헌에 채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슈티블러가 생각한대로만 이해되었던 것은 아니다. 슈타블러에 있어서 ‘정당한 법‘은 "특정한 성질을 가진 제정법", 즉 "그의 의사내용이 정당성(Richtigkeit)의 속성을 갖춘 실정법"을 의미하였다. 그 말의 내용을 분명히 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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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법‘은 "특정한 성질을 가진 제정법", 즉 제정법 또는 실정법이 - 두 표현은 슈타플러에 있어서는 분명 같은 뜻이었다- 의 영역 이외의 법이 아니고, 항상 실정적인, 즉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적용영역 내에서 규범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효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나 효력을 발휘하는 모든 법이단지 효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역시 내용적으로 정당한 법인 것은 아니다.
‘정당한 법‘이 ‘특정한 성질의‘ 실정법이라고 한다면, 슈타믈러는 정당한 실정법도 있고, 부당한 실정법, 적어도 부분적으로는정당하고 부분적으로는 부당한 실정법도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 P2
그렇다면 모든 실정법, 그리고 어느 실정법의 모든 개별적인 규범에 대하여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 부당한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어야 한다. - P2
어느 법의 ‘정당성‘을 묻는 것은 그 준수를 요구하는 것, 즉 그 규범적 효력주장 (normativer Geltungsanspruch) 이 "내적으로 근거가 있는가" (innerlich begrindet), 실질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물음과 동일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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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믈러는 "누구도 법적인 규범의 내적인 근거부여에 대한 물음을 회피할 수 없다. 그 규범의 기본적인 자격부여 (Berechtigung)에 대한 의문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의식하는 사람은 누구나 실정적인 문구에 얽매이지않은 판단행위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 P2
그러나 슈타믈러는 모든 개별적인 법적인 규범 그리고 실정법전체의 ‘내적인 자격부여‘, 즉 정당화에 대한 물음이 왜 불가피한가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독자적인 판단 그리고그에 따라 스스로 결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정당하다‘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만을 자신을 구속하는 준거로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 P3
우리가 실정법의 여러 가지 규율의 기초에 놓인 사회적인 조건과 동기과정(Motivationsprozesse)을 전보다 훨씬 명백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위와 같은 물음이 ‘낡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실정법의 규정을 정함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일회적인 것들, 특수한 세력관계 및 이해관계를 더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왜 그 규정이 우리를 구속하는가 하는 물음은 더 절박하게 된다. - P3
"언제나 인간은, 자신이 그 안에 존재하는 국가적·법적인 질서가왜 자신을 구속하는가 하고 물어 왔다"고 한스 리펠 (Hans Ryffel)은 말하였다.
이 물음은, 사실 과학으로서는 그 대답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철학적인 물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의 ‘정당성‘은 논리적 정당성, 즉 사고의 정당성이 아니고, 정당한 행위에 있어서와 같이 규범적인 정당성, 즉 효력주장의 정당화를 의미한다. - P3
그러므로 그것은 윤리의 문제이고, 또는 리펠에 의한다면 ‘생활실천의 철학적인 반성‘ (philosophische Reflexion der Lebenspraxis)의 문제이며, 칸트의 표현방식에 따르면 이론적 이성, 인식하는 이성이 아니라 실천적 이성, 즉 윤리법칙을 설정하는 이성의 문제이다. - P4
슈타들러는 자신의 ‘정당한 법‘에 관한 이론으로써, 그 자체 타당하고 시공을 초월한 ‘자연법론‘과 당시를 풍미하던 해석방법상 및법철학상의 ‘실증주의‘ 사이에 난 제3의 길을 가려고 하였다. 여기서 자연법사상의 긴 역사와 다양한 발현을 상세히 논술할 수는 없으며, 그에 관하여는 관련 문헌에 미룰 수밖에 없다.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이 지적될 수 있다. - P4
자연법의 사상은 그리스의 철학, 즉 소크라테스전의 학파 (Vorsokratiker)에 소급되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철학에 채택되었다. 중세 토마스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신학 그리고 스토아적 방법의 결합에 터잡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론이 동류인간과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자기실현에노력하는 정신적인 존재로 인간을 파악하는데 근거하고 있다면, 중세의 자연법론은 ‘타락한‘ 그러나 신에의 재접근에 노력하는 인간을위하여 신에 의하여 세워진 질서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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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티우스(Grotius), 홉스(Hobbes), 푸펜도르프(Pufendorf)와 토마우스(Thomasius)에 의하여 대표되는 근대의 자연법론에 있어서는 인간이 이성적 숙고에 의하여 구축한 질서가 점점 전면에 대두하게 된다.
칸트는 ‘순수실천이성‘의 여러 원칙에 기한, 즉 그의 윤리에 기한 법론을 제시하였으며, 헤겔에 있어서는 정신형이상학의 차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회귀가 확인된다. - P5
이들 학설은 모두, 인간적인 소여와는 무관하고 그런 의미에서는 ‘초시간적‘이되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가능한 ‘법 자체‘, 즉 규범적인 효력을 가진 이상적인 법이 존재하며, 그리고 만일 사실적인 효력발생을 원한다면 그것이 실정법이 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므로 실정법은, 자연법을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구체적으로 형성해 갈 과제를 진다. - P5
헤겔은 "실정되어 있음은 현존재의 일면을 이루는 것이며, 이 점에서는 역시 자의라든가 기타 특수성이라는 우연적인 것도 들어올수 있다. 그러므로 법률은 그 내용에 있어서 아직 법 그 자체와는 다를 수도 있다"고 한다. 그 한에서 자연법은 실정법의 모범이며 척도이다. 그 주창자 중 다수는 몇 개의 최고원칙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는 않았고, 특히 푸펜도르프와 토마우스는 부분적으로 법명제 형식을 취하는 방대한 정리체계를 구축하였다. - P5
주로 이러한 형태의 자연법론이 19세기 초 이후로 자연법론을 오만한 사고의 월권으로서 배척하고 오직 실정법과 그 역사적인 원천, 즉 현실에서 증명가능한 것에 몰두하도록 법률가들을 자극하였다.
자연법론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약간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특히 영미법과 스칸디나비아법계의 법률가들을 지배하였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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