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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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붉은 색 표지 "붉은 강 세븐" 대체 무슨 내용일까? 


어느날 배 위에서 깨어난 헉슬리.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다만 그의 팔에 새겨진 '헉슬리'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만을 유추했을 뿐. 그리고 그는 총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배위에서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팔, 그리고 머리수술자국. 그 자국은 아물었으나,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알뿐.

그리고 걸려오는 한통의 전화. 

배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었고, 그 전화로 기계음과 같이 감정이 없는 톤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그들의 상태를 묻고.

누군가 예전을 기억한다고 하면, 그를 당장 죽이라고 한다.

왜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목소리의 지령을 따르며, 하나씩 파헤쳐간다.


런던의 항구로 들어서며, 이상하게 변해버린 사람이라할지 괴물이라 할지등을 만나서 죽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때때로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백신을 맞는다.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주변탐사를 하지만 간간히 나타나는 괴물들에 의해, 서로를 믿지못해, 내분이 일어나고, 한명씩 죽어간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곳에 있고,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뭔가 익숙한 느낌의 소설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조차 모르며 나아가는 소재. 변해버린 인간과 변해버린 사회. 무엇을 찾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조차 모르지만 미지의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다. 그렇게 나아가는 이 이야기는 대체 뭐지? 뭐야. 뭐지?...?

마지막 노인의 말과 사건의 면모가 드러나며 그들의 상태가 엮이며, 정말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지금의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는다고 한들, 그것으로 부터 인간이 존속 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잃고도 우리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작가는 지금 우리가 앞을 향해 나가며, 잃고 지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머리속이 이 이야기 속의 병으로 가득찬 사회일지도.


익숙한듯한 느낌이 순간 아! 하는 신선함에서 다시 충격으로 바뀌는 책.

왜 그들인지, 왜 그곳이였는지, 대체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싶다면 읽어보시길.

"아포칼립스 스릴러"라는 말이 책이 후미에서야 이해가 된다. 근데 정말 아포칼립스...일까?


재미나다~


' "왜 이걸 지금 활성화 했을까?" 리스가 물었다.

 "왜냐하면." 플라스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앞에 있는게 뒤에 남겨두고 온 것보다 훨씬 끔찍할 거라는 거지." p.72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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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밍 웨이브
무스타파 술레이만 지음, 마이클 바스카 정리, 이정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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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두꺼운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경기로 유명해진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이 쓴 책이다. 궁금했다. “다가오는 물결”의 의미가 무엇일까? AI 기술의 가장 선봉장에 서있는 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책은 기술의 발전을 시작으로, 그것이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2023년초에 불었던 ChatGPT를보면서 소름이 끼쳤던 나로써는 이 책을 읽으며 두려움에 사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는 AI기술이 누구에게서 어떻게 이용될지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에 그러했다. 그 기술이 생명공학과 만난다면.... 

저자의 기술에 대한 생각 중 이 책을 관통하는 것중 하나는 기술은 파편화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된 하나의 기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술은 기술과 기술이 합성되어 증폭되어 그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조차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그렇게 증폭되고 합성된 기술이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이용된다면 우리는 그 기술의 발전을 억제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건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은 국경도 경계도 없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기술의 억제가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억제 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기술을 개발하는 이의 선의에 맡겨야 하는것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기술자로써 저자의 의견에 놀랐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은 대체로 그 기술의 발전에 매몰되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사용하는 이의 정의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일 줄 알았으나, 저자는 이 부분에서 기술자도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어떻게 사용될지 분명한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 


LLM모델의 발전은 AI시스템에 인간의 언어를 분석하는 기본의 토대가 되었고, 머신러닝에서 딥러닝으로 발전된 기술과 신경망을 이용해 만들어진 AI는 드디어 마치 인간처럼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진 수준까지 이르렀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불리는 캐스퍼. 이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든 유전자를 정밀하게 편집하고 수정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인간에게 발생하는 암과 같은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 생명공학이 AI와만난다면?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지도를 만들어 낸다면? 

만약, 그것을 누군가 악용한다면. 그래서 슈퍼 휴먼을 만들어낸다면. 또는 특정 인간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면. 

하지만 AI와 생명공학이 접목되어 지금 불치병이라 불리는 병들을 극복할 수 있고, RNA나 DNA 기술을 이용한다면, 한번의 치료로 병을 완전히 나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기술을 이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술의 발전 범위를 말그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기술이 주는 긍정적 효과에만 매몰되지도 말고, 그렇다고 그것이 주는 보복효과에만도 매몰되지 말아야 함을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안전한 기술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최전선에서 AI에대해 많은 이들과 고민해던 결과를 10가지 제안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특정된 기관, 특정된 기술, 특정된 기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인것이다. 그 질문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져질 것이고, 우리는 그 답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가 촘촘하게 사회 안전망을 꾸렸듯, 미래는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제안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부" 편이 였다. 기술의 발전으로 분명히 손실을 입는 계층이 생긴다. 그 계층에 대한 보상에 대하여, 저자는 인적 노동에 부과 되던 세금을 자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격차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가장 일반 시민의 삶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까지 짚고 있는 것을 보며, 저자가 AI 기술의 도래에 대해 깊게 고민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기술자가 기술의 발전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디스토피아로 향하지도, 유토피아로 향하지도 않은 지극히 현실에 발딛고 서서 던지는 질문들이였기에 더 빠져드는 책이였다.

다가오는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하게 기술을 구축해야 하는가. 그 매뉴얼을 우리 모두 고민해 볼 시점 이다.

근미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란 것을 시작 할 때.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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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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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것 같다. 물론 지금 보이지 않는 것도 많겠지.
20대부터 읽었던 박완서작가님 책은 늘 내게 향기로움을 주었지만,
40대가되어 읽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깊은 공감을 준다. 20대때에는 그냥 흘리듯이 읽었던 문장, 단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지만, 뭔가 지금은 나의 입주위를 맴도는 말들이 유려하게, 그러면서도 소박하게 작가님의 글로 아, 맞아. 아, 그래. 이런 감탄사가 나온다.
어쩜 이리 솔직하면서도, 깊은 속마음을 단아하게 쓰는 분이라니.
새삼 작가님의 새로운 글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이 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새로움은 낯선듯 반갑다.


제목부터 "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라니. 20대라면 당연한 말이지라고 생각했을 이 제목 마저도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세월이 흐르고, 지켜야 할것, 지켜나가야 할것이 나이가 지나며 어깨 위로 한켜 한켜 얹히다 보면, 문득 그것들이 다 사랑임에도 무겁워 버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 제목이 뜨끔하면서도, 나의 젊음을 내가 가졌던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달까. 표제작이 책의 거의 말미에 등장하는데, 작가님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싶어서 책 제목을 물끄러미 다시 보게도 했다.


"화창한 세상" 10, 20대에는 입시와 취업준비과정을 거치며 내가 첫 발을 디디는 곳은 남들에게 보기 좋아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 속에 갖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였다. (돌이켜보니 그러했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맞고보니, 왜 그런 편협한 생각 속에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다. 빈부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더 무한경쟁으로 빠져드는 사회 속에서 지쳐가서 인지도. 이 글을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외면하였는지를 알게했다. 그래서 뜨끔했달까. 
"이제  우린 열심히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정도는 보장된 세상이 됐다고 믿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헐벗고 굼주렸을 때 보다 더하면 더하다" p.126


"항아리를 고르던 손" 어여쁜 손에 고무장갑을 끼웠을 때, 그 투박함으로 인한 정나미 떨어지는 손에서 옹기를 고르던 뿌뜻함으로 이어지는 손으로 쓰여진 글이라니. 그저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던 글이다. 덤으로 작은 옹기 하나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골라 뿌듯한 웃음이 지어진 B부인에 대한 작가님의 글은 묘하게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배워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은 "방망이 깎던 노인"이란 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작은 방망이 하나이지만 정말 그토록 진심이였던 그 노인 이야기. B부인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그 웃음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셨겠지. 예전보다 사회는 계속해져 편리해지며 말그대로 현대화 되어가지만, 문득 예전의 것을 떠올려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 느꼈던 그 감성 때문이겠지. "목욕탕에서 갓 나온 여자 p.188"이라는 문구가 그 시절을 생각나게했다. 맞어. 그 상쾌하고도 싱그러운 표정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말이 필요없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얼마전에 TV에서 보았던 마라톤이 생각났다. 예능프로의 출연자가 마라톤에 참석한 내용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각장애인 분이 도움을 받아 42.195km를 뛰고 있는 모습. 뭉클해지는 순간이였다. 작가님이 보냈던 그 갈채는 내가 보았던 마라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자신과의 싸움.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히 나의 의지로 이끄는 그 걸음에 보내는 갈채. 감히 나는 한걸음 조차 떼어보지 못한 그 걸음에 대하여 말이다. 어쩌면 과거 금메달에게만 보내던 박수가 이제는 올림픽 전체의 선수들에게 향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결과만을 바라보던 사회가 과정을 보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결과가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글을 1970년대에 쓰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p.173


"보통으로 살자"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그때도 그랬지만 더 깊어진 혐오를 생각하게 한다. 재벌에 향하는 혐오. 가난에 향하는 혐오. 우리는 왜 혐오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재벌에 향하는 그것은 아마도 나는 갖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로 인한 사회의 삐뚤어진 구조에 보내는 미움이겠지만, 가난에는 왜 미움이 담겼을까. 작가님의 쓴 보통의 조건은 그시대나 지금이나 결국 돈이라는 잣대가 그어져 있다. 그것이 점점 돈으로 수치화 되어가는 것이겠지. 구체적으로. 
1975년에 쓰여진 글속에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 돈이 귀하지만, 사람을 더 귀하게 ,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내시겠다는 글을 읽으며, 왜 우리는 여전히 이토록 팍팍해지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나에대한 안타까움.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는 돈 그자체가 아니라 삶의 목표라는 것을 세우고는 있을까.  


한편한편 허투루 읽을 수가 없는 글이였다. 
맞어맞어하면서 읽다가 문득 쓰여진 연대를 보면서, 어떻게 이 때의 글이 지금도 깊은 공감을 이끄는 것인지. 어떻게 대체 그 한줄한줄이 뻔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웠던 책.... 흑.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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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물 -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
조국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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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 정의의 여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여신. 그런 여신의 이름을 빌어 조국 교수가 책을 냈다. 무슨 내용일까.


“법”이라 하면, 당연히 공정할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 불리는 법인데, 그런 법이 불공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법이란 가진자들의 권력을 지키고, 못가진 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가진 자들에게 주어지는 벌금과, 임금이 수개월치 나오지 않아 벌이는 노동자들의 벌금의 금액이 거의 비슷할 때, 누군가를 차로치여 죽이고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각종 감형사유로 말도안되는 판결을 받을때….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현재의 대한민국은 “법을 이용하는 지배”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법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버린 부조리를 본다. 그렇기에 

그 전제가 정말 옳은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하는 시대.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다시 되살아나는 시대가 아닌가.


책은 조국 교수가 생각하는 법과 그 법의 지배하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여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글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근거에 법이 어떤 역할이여야 하는지, 그 법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교감, 공감에 대해서 말이다. 계속해서 양극화되어가는 사회가 어떻게 우리 인간을 더 약하면서 악하게 만들어가는지, 그렇기에 사회의 안전망 두텁게 만들고 생활 최저선을 왜 끌어올려야 하는지를, 인간이 “노동”이라는 굴레에 갖혀 잊었던 여유를 왜 되찾아야하는지를 말이다.  먹고사니즘에 빠져 타인의 불행에 눈감고, 당장의 삶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돈의 숭배에 빠져버린 대한민국. 인구가 줄어서 망하는게 아니라, 어쩌면 함께 하지 못한 각자 도생사회로 인해 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라는 결속력이 없는 나라가 지탱이 가능할까. 그 나라는 정말 나라일까..? 하는 생각.


같은 법전으로 같은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도,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를수 있을까. 가족 모두가 말그대로 멸문지화를 당하는 수순까지 갔음에도, 스스로를 돌아 반성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그의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신념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추천!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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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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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책은 언제나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말이다.

 죽음과 삶은 공존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것인데, 왜 죽음을 돌아보다 보면 아이러니하게 삶을 생각케할까.

이 책은 유명한 이들의 삶 끝에 남긴 말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떤 이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그 끝에서 다시 삶을 말한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미국의 소설가 오스카와일드는 죽음 직전에는 초라했지만, 여전히 작가로써의 풍자는 살아있던 인물이였다. 그래고 재미(?) 있게도 마지막 말이 “돈“이 진리였음을 깨달았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선택할 수 있다면 그는 삶을 생각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독일의 극작가이면서 항상 빈곤하게 살았던 고트홀트 레싱은  마지막까지도 아픈 몸을 이끌고 복권 판매소에서 복권을 사기 위해 ”52” p.169라 속삭였다고도하니. 당첨이 되었다면 누구를 위한 복권이였을까..

죽으면서도 돈을 생각했던 인물들의 마지막을 읽으며, 아직은 삶을 살고 있는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싶은 웃픈 생각이 들기도..ㅠ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말은 마르크스의 말이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책으로도, 연설로도 다 했었던 사상가의 마지막 다웠달까. 

”유언이란 살아서 할 말이 별로 없었던, 좀 바보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 같네.“ p.118


그리고 아직은 살아있는 삶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했던 사람 넬슨 제독의 마지막은 슬펐다. 그것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 모두의 감정이 느껴졌어서. 그 사람과 나누는 마지막 온기...니까.

”나에게 키스해주게, 하디.“ p.286


그들의 말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가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말그대로 유명한 이의 삶이였기에 그럴 수 도 있으나, 그들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이들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의 그 끝은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별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 죽음이란 것을 별로 겪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사랑했던 가족들의 죽음을 돌이킬때, 늘 내 곁에 항상 있었던 내가 사랑하는 이와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고, 그 사실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책속의 인물들 곁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었고,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았기에 남길 수 있었던 한 마디의 말들. 그들이 남긴 말들을 읽으며, 나는 한편 이토록 초연히 삶의 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마지막에서 나는 후회만 하다가 끝날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내 말은 누가 들어줄까. 모르겠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P.56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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