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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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파시즘”이란건 무엇일까. 나치에 대한 긍정적 표현에 대한 언급, 손표시에도 치를 떠는 독일에서 나치정당이 나오고, 유럽/미국, 우리나라에서도 극우의 스피커들을 대신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요즘 “파시즘” -ism 이라는 이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은 책.


이 책은 흥미롭다. 파시즘에대해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득세했던 그 시대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들의 등장/탄생, 그리고 뿌리내리기와 장악, 권력행사, 그리고 비로소 파시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책의 맨 마지막장. 그리고도 여전히 나는 파시즘에 대한 의미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딱 정의되지 않은 무엇의 느낌이랄까. 

세계사에서 파시즘하면 독일/이탈리아를 떠올리지만, 사실 파시즘의 시작을 저자는 미국의 KKK 로 본다. 초기 파시즘의 등장은 결국 현체제의 불안이고 불만이다. 그렇기에 급직적 재건주의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부여한 투표권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일으켰고,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뒤집힌 사회질서를 바로잡곘다고 나선것이 민병대 즉 KKK인것이다. 마치 그들의 폭력은 사회를 위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신념으로 말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현 체제의 불안 속에서 등장한다. 유럽전역에도 파시스트 정당이나 세력들이 꽤나 많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정치세력들의 견고함이였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했고, 기존 정치세력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끌어들인 파시스트 세력들에 의해 먹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세력은 왜 파시스트에게 권력을 내어준 것일까? 모두 다는 아니지만, 파시즘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기존 세력의 사유재산이나 가진 기득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저자는 짚고 있다. 나치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처음엔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주의 그 자체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 세력을 규합했고, 당시 1차 세계대전 등으로 세계적 위험이 닥치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는 기존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그 자체가 모든 불만세력들의 연합이였기에 그 모두를 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였다.

그 빈틈을 비집고 등장한 파시즘. 그들은 기존 세력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주의의 불만세력들을 규합했고, 그 최 앞단에 세계가 아니라 국가를 내세웠다. 그들의 외침은 세력을 규합했고, 세력화된 세력은 소수이지만 정치권으로의 입성을 의미했다. 그렇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이탈리아, 독일의 세력이 되기 시작한 것. 그렇게 권력을 쥔 파시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였다. 파시즘은 어떤 이념을 가진 집단이 아니였기에, 그들의 집권에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그들이 한 것은 한마디로 지지세력이 원하는 말을 해준것이였으니까. 그들의 이념은 “없다”는 것이 이념이랄까.
그렇기에 내부 분열을 막기위해서 선택한 것은 적. 그것이 반유대주의였다. 그것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의 세력을 규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종하지 않으면 당신도 저 부류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인 것이다. 그렇게 세력화를 막고, 그들 모두를 원자화 시키는 효과를 낸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외부 포로들의 노예노동으로 인해 많은 독일인들이 주인의 위치로 격상된 효과도 있긴했지만.

파시즘은 한 개인에 의해 등장한 이념이 아니다. 그들의 근본엔 대중이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정신분석이 필요한 대상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파시스트 대중일지도 모른다.” p.467
이토록 무서운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곧 누군가의 등장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파시즘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며, 현재는 세계적으로 그런 현상들이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파시즘과 독재, 공산주의 등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러했다. 선전선동이 만들어내는 결집.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적, 폭력. 이 모든 것이 파시즘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에와 세력에 맞도록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시즘이 세력을 불려나갈 때 적절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파시즘의 주기가 무턱대고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p.490

우리는 또다른 파시즘을 맞닥뜨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혐오,선동, 양극화되어 서로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세력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말을 읊는 정치권.
과거를 읽고 있음에 나는 왜 두려울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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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감과 러브레타 ㅣ 범우문고 32
현진건 지음 / 범우사 / 198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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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 아마 학창시절 "고교생이 읽어야할 필독서"리스트에 있었던 것이 그 시작이지 않았을까. 우연히 어떻게 구매하려던 책 가격을 맞추려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작디작은 책.
그리고 심지어 궁서체로 쓰여진 아주 오래된 현대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 현진건 작가님의 소설집이고, 이렇게 소설을 많이 쓰신분인 줄은 몰랐다. 내가 읽은 책은 범우사 범우문고의 문고판 사이즈의 책인데 얇고 작은 책에 현진건 작가님의 단편이 꽤나 여럿 수록되어 있었다. 읽다보니 느껴지는 시대. 1920.30년대의 말투 그리고 그시대상. 당시로써는 굉장히 리얼한 소설이였겠다 싶은 내용들.

개인적으로 내게 인상깊었던 소설은 잘 알지 못했던 "불"
열다섯살 순이의 이야기. 봉건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농촌에서 조혼의 피해자가된 그녀. 남편을 피해 헛간으로 숨어들었지만 남편은 끝내 그녀를 원수의 방으로 데려간다.  밤에는 남편에게 낮에는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는 그녀가 끝내 살기 위해 선택한 것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옛날이지만, 열다섯 순이는 그 시대에 저항을 던진다. 벗어나기 위해
"순이는 근래에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 못견디겠다는 듯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로 뛰고 세로뛰었다." p.30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할머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가족을 관찰한 듯한 이 소설은 묘했다. 가장 큰 어른이고, 나의 오랜 가족이였던 이를 보내는 그날까지의 가족의 군상. 이 단편은 시대상이 보이지가 않았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죽음만 유예되었을 뿐 여전히 병간호, 돒봄등은 가족들의 몫이다. 그 몫이 주는 힘듬 부담 이런 시간들이 표면적으로 한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을 수 있는가. 어떤 모습들이 가족에게 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진짜 병자를 위한 행위인지를 이 단편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도 유효하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그리고 표제작 "B사감과 러브레터"
요즘도 사감선생님이 있나.. 나때도 없었지만, 대학 기숙사에는 있었던것 같다. 사실 선생님이 아니라 대학 기숙사는 직원분이시긴 했던것 같기도 하고. 다만 이 소설은 작가님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당시 남성보다 혼기를 놓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로인해 억압된 시선 속에 갇혀 살아야했던 한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연얘편지 속 주인공이라는 마치 광기어린 모습으로 변질된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여성의 희화화된 모습이였는지는...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님이 말하는  B사감의 모습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만 남았던 소설.

이 소설집에 실린 내용들을 읽고있다보면 여성과 남성의 대비가 분명히 드러난다. 빈처에서도 운수좋은날에서도 술권하는 사회에서도. 빈처와 술권하는 사회는 인테리 남편이면서 가난한 가장, 그런 가장을 그저 믿고 믿는 아내. 일제 치하라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자괴감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가정에서는 그래도 대우받고 존중받는 모습이 대비가 암울한 사회 속에서도 살아갈 한 숨이 되어줄 수 있었던 버팀목을 그린 것일까.. 싶다가도 지금의 "나"는 못살겠네 싶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운수 좋은 날"은 반어법 제목답게 결말을 알고 보면서도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어느 하루 그래도 꽤나 돈을 벌어 으쓱한 마음으로 아픈 아내가 먹고 싶었던 설렁탕을 사들고 들어간 집에서 가장 싸늘한 결말을 맞게되는 사실이 앞선 두 이야기들과 완전히 다른 결론앞에 왜이리 씁쓸하던지.

현진건 작가님이 오래토록 살아 지금을 놓고 소설을 쓰셨다면 아마도 빈처, 술권하는 사회는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던 소설들.
재밌었다.
소설 속 대사가 정말...
1970년대 영화 속 신파 대사가 귀에 맴도는 듯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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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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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번역가님이 추천해주신 동화책. 가끔 누군가의 추천으로 동화를 읽다보면 낯선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지? 하는 느낌. 내가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읽었다면 어떤 의미로 읽었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이 이야기는 이타릴아의 베파냐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동화라고 한다. 산타클로스의 할머니 버전?! 하지만 할머니가 마녀처럼 보일 정도로 주름도 많고, 못생겼고, 빗자루를 타고 다닌다고하니. 하지만 이 동화 속의 할머니는 빨간 스카프 두르고, 사신 앞에서도 당신이 지금은 사신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빵소를 만들기 위해, 누가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줄 팡도르를 만들기 위해.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은 그 때마다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음식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절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문턱을 넘어 음식의 향에 맛에 그 결심이 무너진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마지막일까. 아니면 또다른 시작을 말하는걸까. 할머니의 레시피는 누구의 손을 타고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똑깥이 달고, 따뜻한 맛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시작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엄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이때 뭐넣었어? 할머니꺼는 무슨 맛이였지? 오래토록 살아계실 줄 알았어서 한번도 할머니의 음식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할머니 였다.(할머니와 오래 살아서 대다수 음식을 할머니가 해주신 맛으로 기억하기에..)

삶과 죽음은 물리적으로 절대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은 할머니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탈리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일까. 
“집과 나무들은 유령처럼 희미해졌고 두 여인의 뒷모습은 솜사탕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팡도르를 하나 사먹어 봐야겠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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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장강명 지음 / 글항아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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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읽어야지. 벽돌책. 그리고는 책장에 예쁘게만 꽃혀있는 나의 벽돌책들을 바라보며 이 책을 들었다. (저 책은 언제 읽지..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엄!청! 놀랐다. 벽돌책이 이렇게 많다고?! 그리고 나의 벽돌책 기준은 500페이지였는데, 장강명작가님은 700페이지를 기준으로 잡으셨다고하는데도 백권이 넘는.. 물론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것이라고는 하나 백권이 넘는 벽돌책을 읽!었!고. 읽고나서 글을 썼다는게 더 놀라웠다. 와.와.


총 7장의 주제로 분류된 벽돌책들.

이 책은 벽돌책들에 대한 서평책이 아니다. 소개의 글?! 정도. 하지만 수백 페이지의 책을 읽고 서너 페이지로 책을 소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한번은 체험해봐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p.19

독서라는 행위에 있어 벽돌책은 얇은 책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해주고, 책을 읽는 다른 근육을 키워준다고. 나는 이말에 동의한다.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정리했다는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벽돌책이 그러한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에 번역된 대부분의 벽돌책은 번역가가 편집자가 출판사가 엄선한 것들이기에 그런 효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내가 몇 안되는 벽돌책을 읽으며 막연히 느꼈던 밀도 높은 충만함의 이유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첫 파트는 단연코 흥미다. 일단 재미있고, 흥미로워야 읽지. 첫 장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은 <재난, 그 이후> 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했던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내용이다. 재난이라는 극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믿었던 윤리가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를 두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는 책이라 한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지만, 일어났고, 그 비극을 토대로 우리는 재난 프로토콜을 어떻게 가동하고 있는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 우리가 어떤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니.. 궁금해지는 책이다. 


두번째 파트. AI 시대. (아.. 이노므 AI.)

나는 여기서 내가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예쁘게만 꽂혀있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어야 할 시점이라는걸 알았다. 저자는 이 책의 추천 이유를 "인간 존재에 염증이 생기고 진보를 더는 믿을 수 없을 때 이 책은 해독제와 같습니다.p. 62" 라고 말했지만, 내가 선택한 이유는 작가님이 말한 이유에서는 아니다.

나는 다른 질문이 피어올랐다. 인간의 방대한 지식과 행위에 따른 역사를 학습하며 진화하는 AI의 최종결론도 정말 '선함'으로 향해갈까?!  인간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는 AI의 시대에 오히려 인간 본성을 다룬 벽돌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를 찾은 셈이다.


그리고 네번째 파트의 "루시퍼 이펙트"

이 책은 꽤나 유명한 교도소 실험.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부여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한 내용을 다뤘다. 뭐 실험 자체가 문제가 많았고, 굉장히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궁금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우리를 위의 책에서 선하게도 만들지만 얼마나 악하게도 만들 수 있는지가. 알아야 피해갈 수 있고, 알아야 같은 수렁에 두번은 빠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섯째 파트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님의 추천으로 알고 있던 책인데, 여기 소개글을 보고 더 궁금해진 책이다. 3대에 걸친 악의 기원을 쫒아 심연으로 향하는 소설이라는 글에 더 궁금해진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궁금해진 책 리스트를 정리하고 보니 나는 인간의 선과 악에 관심이 많은건가. 아니면 내가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인건가..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


작가님의 글솜씨로 인해 소개된 많은 벽돌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하지만, 나는 안다.. 벽돌책은 정말.. 무겁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읽고나면 뿌듯함이 인다는 사실도.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할 때, "나는 절대 작가님의 꼬심에 넘어가지 않을테다! 나는 절대 장바구니를 늘리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덧 내 장바구니는 터지고 있고, 일부 품절/절판된 책들을 찾아 중고서점을 뒤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뭐 일단 리스트업한 책들부터 시작해 볼까나.



"저는 지적 지구력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기초 정신력'이라고 봅니다. 지적 지구력이 있어야 복잡한 사유를 견딜 수 있고, 그래야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높은 해상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151

"거듭 말씀드리지만 벽돌책 독서의 의의는 과정에 있지 결론에 있지 않습니다.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고 등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p.339

-- 암요암요. 읽다가 멈춰도, 벽돌책이니까 다른 책 한권은 읽은 셈...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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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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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도 몰랐고, 그저 제목 하나에 끌렸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이라는 저 제목이.

이 책은 저자가 10명의 철학자들의 언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존엄과 존재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다.

예전에는 속한 집단 속에서 쓸모를 증명해야했는데, 현재의 삶은 내 삶 전반에서 나의 쓸모가 필요해졌다. SNS, 회사, 가정. 그리고 이제는 AI의 등장까지. 사람뿐 아니라 기계와의 경쟁 속에서도 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몽테뉴까지로 이어지는 축적되어진 지혜 속에서 인간은 인간자체로써 존엄한 존재임을 분명히 학습했음에도 우리는 왜 쓸모를 찾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잠깐 “토”를 달았던 부분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에 대한 부분이였다. 당시의 교육은 “인간의 본성대로 살도록 돕는일”이 교육이였으나, 현재는 좀더 경쟁력있는 인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맞는말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교육이 평균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커리큘럼을 집중시키며 능력제일주의라는 이상을 만들어냈으니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은 그런것을 하지 않아도되는 노예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아니였나. 하는..

그렇다면 현실에 발을 딛고 먹고사니즘을 고민해야하는 우리와 먹고사니즘을 고민할 필요없었던 노예제 시대의 사회 두 사회의 교육관은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지 않나하는 생각.

물론 능력제일주의 만을 위한 교육이 현재의 “쓸모”를 증명하는 사회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도구화된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내기 위한 기본을 잊지말라는 것이다. 죄책감, 부끄러움, 그리고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에서는 우위에 서라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을 가져야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좋은 말이고, 우리가 잊지말하아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책속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나 벌어진 지금에서 뭐랄까.. 너무너무 착한 친구가 내게와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말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도 누군가는 이런 글을 쓰고 상기시켜줘야겠지. 무엇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고 지치게만드는지.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역시 죽음이였다. ”몽테뉴“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p.220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말이다. 삶의 유한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죽음은 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속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매 순간 도구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써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어떤 순간을 가장 후회할까, 아니면 어떤 순간을 가장 행복해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내가 가지는 생각을 달리할지도.


재밌는 책이다. 너무 착한 친구가해주는 충고 같으면서도 순간순간 뼈때리는 말들이 숨어있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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