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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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고 있던 책이다. 친했던 친구에게서도, 여러 방송을 통해서도. 그러다 최근에 읽었던 김애란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드디어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읽었다.
내게는 조금 낯설었다. 소설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묘하게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듯 끊어지는 이 느낌이. 다시 보니 연작소설. 

책은 난장이 가족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함을 말한다. 가장 소외된 계층에 가해지는 사회의 불평등이 한 사람을 한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말이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별것 없었다. 
 현실은 재개발을 이유로 살고 있는 집을 헐값에 내어줘야했다. 이십오만원에 집을 내어놓았다. 그 땅에 지어지는 임대아파트에는 삼십오만원이 있어야하고, 매달 만오천원의 관리비를 내야한다. 
그렇게 빼앗기듯 내어준 집을 되찾기 위해 영희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굴뚝에서 떨어졌다. 
집이 철거되는 중에도 아버지와 영희를 기다려야 하는 가족.
그것이 1960-70년대의 한국을 가장 밑에서 바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대우였다. 
그 집을 과외 선생 때문에 알게 된 윤호는 그 동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마치 영화의 기생충에서 박사장의 그 대사처럼. 
"냄새가 선을 넘지."

이 소설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층이 처했던 현실을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그린다.
중산층 집안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기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를 둔 윤호.
그리고 난장이 집안의 딸 영희.
그리고 이 책에서 자본가 집안을 말하는 은광산업의 사촌의 시선등을 통해서.
끝까지 내몰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였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책의 결말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음이였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고 있는 집을 빼앗겨서 외곽으로 몰려나야했던 누군가.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했던 직장에서 수십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공. 심지어 연장된 근로시간으로인해 조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아, 바늘로 찔려 피로 물든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했던 당시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야기이다.나는 이 책을 통틀어 이 대사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 앞엔 법이 있다" p.84

어느 집안의 노비였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들로 해방이후의 시대를 맞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아버지의 세대는 어쩌면 그 차별과 부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나은 현재이기에 묵묵히 감내하며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난장이의 아들 영수와 영희는 달랐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았기에 부딪쳐야만 했고, 그렇지만 여전히 높고 견고한 사회 계층의 벽은 부술 수가 없었다. 
반대로 은광 산업의 손자 경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난장이 로 대표되는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탐내고, 게으르기에 자신들이 데리고 가르쳐야 하는 조금은 덜 된 사람 쯤으로 치부한다. 
그렇기에 영호의 분노의 결과는 경훈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였고, 영호 역시 자신이 찌른 인물이 그 인물이 아니였다는 사실 역시 분노할 일이였다.

그래서 였을까.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선생님의 질문은 다시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첫 머리에 나올때는 무슨말일까 싶었던 그 질문은 결국 말미에서는 질문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알게한다.
한명은 굴뚝을 청소했고, 한명은 안했다는 것. 그러니 둘 다 청소를 했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 아닐까.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당시의 현실은 지금은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쎄. 그 때의 열악함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살던 곳에서 쫒기듯 내몰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직장 내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전히 뉴스에 등장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 소설이 스테디 셀러로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졌지만, 그것은 곧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모두의 이야기 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계급의 존재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계급의 존재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고, 내가 하지 않는 일을 누군가는 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서로가 암암리에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집의 말미에 쓰여진 신형철 평론가님의 글이 슬프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 

씁쓸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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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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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소설이 궁금해져서 읽은 "죽음의 꽃".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트롤리 딜레마가 떠올랐다. 전혀 다르지만 뭐랄까 어느 쪽도 선택하기 힘들어서 였을까.

여기 223명을 죽인 살인자가 있다. 하지만 그 살인자는 현재의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무죄로 만들지 않으면 자살해서 죽을꺼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게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딸이 있다. 오로지 그만이 내 딸을 살릴 수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느 미친 살인마에 의해 난도질 당해 돌아가셨다. 누구도 나와 형을 도와주지 않을 때 어느 검사가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끝내 그에게 사형선고를 받게 했다. 나에게 법을 지켜야 할 사명을 알게해 준 검사를 따라 나는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 223명을 죽인 살인마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에게 그를 살려달라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 이영환. 그는 의대 본과를 다니다 자퇴하고 4년간 아무 흔적이 없다가, 어느날 살인자로 경찰에 잡혀왔다. 그리고 그의 살인은 무려 223명. 이유는 모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실험이였다 말한다. 심지어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까지. 아이부터 노인까지 죽은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실험체였다. 그리고 그는 10명의 불치병 및 장애인들을 완치시켰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말 그대로 승승장구의 삶을 살던 박재준. 사법연수원에서도 최우수. 판사보다는 변호사를 선택해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그가 결혼을 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얻었다. 하지만 그 딸이 악성종양으로 죽어간다. 그 앞에 이영환이 나타났다. 내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반대편의 검사 장동준. 법 앞에서 일체의 봐줌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기준에서 이영준은 당연히 사형이여야 한다. 그렇지만 살고 싶은 이들이 나타나 그를 살려달라 말한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고 따랐던 한 사람마저 그에게 그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223명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에게 세계의 모든 불치병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를 풀어줘야할까? 아니면 법의 기준대로 사형에 처해야 할까. 둘 중 하나가 아니면 그는 자살하겠다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흡입력 강한 스토리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계속 해서 나라면.. 이라는 내 스스로의 질문에 나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꼭 내 가족일이 아니더라도,,, 그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의견도, 그렇다고 그에게만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어떤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살인범인 그에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서사를 만들었지만,  원작에서 그런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더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사실 드라마의 서사가 있다해도 글쎄.)

트롤리 딜레마는 원래대로 간다면 4명이 죽지만, 내가 기차의 길을 바꾼다면 1명이 죽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그 상황이 내게 오지 않길 바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도 이 경우 내가 판사라면 법 대로라면 이영환 한명에 대한 판결이지만, 영향력은.. 반대로 그를 살리면 더 많은 이들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살림으로써 그에게 가족을 잃은 최소 223명의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사회 정의라는 기준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결론까지 갈 수 있는 토론의 장이 과연 가능 할까? 싶었다. 완전히 양극단으로 나뉘어진 의견에 중재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것이 중재로 가능한 논의일까..

 우리가 어쩌면 이로움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인간복제나 DNA 조작(특히 배아)을 막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 기술로 인해 어디 범위까지를 인권이라는 아주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권리를 침해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에 대해 얼마만큼의 위험성이 존재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결말을 보여주고 선택을 말한다. 그렇기에 책을 잃는 내내 나는 어떤 쪽으로도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흥미로운 스토리이지만, 정말 어려운 난제.
재밌네.(재밌다고 말해도 되나..ㅠ)

"'소생'이라는 단어가 내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는 순간 모든 사고가 멈춘다.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던 병신 같은 생각들이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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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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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5월 1일까지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다. 이 책을 지인에게 추천받고서, 한참을 묵혔다. 누군가의 일기를 왜 추천하는가.. 싶었는데 그분이 읽어준 문장하나가 너무 웃겨서.


하지만 직접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그때의 두려움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잊고 있었던 그 때의 두려움과 숨막힘. 
계엄 해제는 그 밤에 끝났지만, 그것을 내란이라 규정하는 것은 지난했다.
그 중간에 무안공항에서 참사가 있었고, 
우리나라 사법을 다시보게 한 어이없는 사건들이 있었고,
탄핵선고가 늦어지는 동안의 숨막힘이 있었다. 
민주진영에서 탄핵이 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있기에 다시 하면 된다는 위로되지 않는 정치평을 들으면서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던 그 시간들.

이 책은 그런 시간들에 대한 작가의 기록이다. 
작가님의 기록이라 그런지 구체적이면서도 그 때의 나의 감정이 단어와 문장으로 기록된 느낌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다니 싶은 낯선듯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생경스러운 기분이였다. 같은 시대를 지나며, 같은 마음으로 견뎌온 시간의 기록을 읽고 있다니.

“매국과 내란의 얼굴들, 파렴치며 몰염치가 그네들의 힘이다. 꼴도 보기 싫다,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들, 샹, 샹. ‘국가‘와 ’나라’를 주제로 열렬히 말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보수 인가 싶었다. 이 계엄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보수‘라 칭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봉건, 내란, 위헌 중에 골라봐” p.25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지 1년 3개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내란은 진행중이다. 
계엄부터 탄핵선고, 그 이후 조희대의 난인지 뭔지까지 6개월 동안 쓰여진 일기는 그 시간을 견뎌내어야했던 우리를 다시 대면하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한편 책을 읽으며 내 가슴을 뜨끔하게 했던 문장이 있었다. 참담했다 표현하면서도, 내 일이 우선이였던 순간들. 그 때 들었던 내 스스로에 대한 불편감.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 일상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 찰나에, 그들이 나처럼 생각했다면.
그날 뒤로 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p.52

내란 수괴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드디어 2026년 2월 19일에서야 나왔다. 하지만 지금의 재판 결과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기 까지에 대한 재판관들의 ‘말‘ - 잘못은 했지. 근데 뭐 이게 큰일이야? 싶은 식의 말들을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 - ‘나‘는 약하지만 ’우리’의 힘은 강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정말..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말할 수록 말하고자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 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43
 
작가님은 지금 어떤 일기를 쓰고 계시려나.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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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관하여 - 이금희 소통 에세이
이금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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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나운서 이금희 작가가 쓴 책이다. 나는 이분의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그 2000년도에 있었던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장의 이금희 아나운서를 잊지 못한다. 그런 분이 쓰셨다는 책. 공감. 그런데 다른 책도 많이 쓰셨던듯..

그 이산가족상봉장에서 이금희아나운서는 가족들을 보며 거의 인터뷰가 없었다. 지켜보고, 지켜볼 뿐.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그런 분과 참 잘어울리는 단어 공감.

누구와의 공감일까.
50대가 되어버린 저자가 지금 20대와 중년간의 대화 단절. 서로가 서로를 이해못하는 세대 단절시대에서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써 당신의 20대와 지금의 10,20대가 무엇이 다른지를 말하고 있었다.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따뜻하게.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말들, 틀림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인정, 나의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어주려는 노력들에 대하여 저자가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학생들과 나눴던 대화, 청취자의 사연등을 들어 말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건 자동이지만, 어른이 되는 건 노력이다.” - John Maxwell의 말.
늙은이와 어른의 차이. 그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힘으로써 나를 바꿔나가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사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나의 20대를 돌이켜 생각한다면, 지금의 청년층세대를 이해 못할께 뭐있을까.

“다양성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며, 그렇기에 우리에겐 차이가 희망입니다.” - 회식메뉴도 취존해주세요. 중
평생직장 시대가 사라진 것은 이미 20년전일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같이 밥먹고 술먹고 가는 회식문화에 대한 불평은 있었다. 그런데 그때 20대가 지금 40대가 되어서는 왜 회식에 대해 다시 말하고 있는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하는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낙오자에게도 따뜻한 세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성숙한 사회다. 한국 교육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학자 김누리 교수도 말합니다. 청년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지친것이다” - 후라이의 꿈 중
나는 이 챕터가 뭐랄까 가장 가슴이 아팠다. 고3을 마치면 시험과 공부에서 가장 행복한 대학생(적어도 나는 그랬는데..)들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20대는 그저 문턱하나만 넘은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대학입시는 빨라야 중3정도부터 였는데,(내가 비평준화 고교입학을 해서..) 지금은 대학입시가 초2-3부터 시작이라니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노릇. 그렇게 꾸역꾸역 경쟁에 치이고 공부에 치여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들앞에는 취업레이스가 펼쳐진다. 그러니 스트레이트 졸업은 생각도 못하고, 휴학을 통해 각종 자격증이나 시험준비에 또 허덕허덕. 
그렇게 들어온 직장은 완존 적자생존의 또다른 생태계인 셈. 


저자는 그렇다고 무조건 지금의 청년층을 이해해야 한다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40대. 낀 세대에 대한 연민, 그리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는 “자기 연민” 그러면서도 너무 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가져야하는 마음과 생활 루틴에 대해서도 말한다.

결국 공감은 타인에 대한 공감 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공감도 필요한 것이다. “흘러 넘친 물로 베풀어라”라는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스스로 나를 돌아볼 수 있을 때, 타인과의 관계 역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 이금희 아나운서는 말하고 있다.

좋은 말이지만 참.
어려운 일인것같다. 나도 돌보고 남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이란 것은.  
그래도 늙은이 소리보단 어른소리 듣고 싶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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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숲 - 세상을 바꾼 인문학 33선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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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렇듯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반성을 하게된다. 뭐랄까 나는 책을 헛읽는 느낌이랄까 고전 인문학을 바탕으로 그들이 남긴 의미를 소개하는 33선의 책들중 읽어본 책은 한손에 꼽혔다. 즉 5권도 안된다는 것. 그나마 읽은 책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안비밀. (아. 슬프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의 그 유명한 수상소감이 떠올랐다.“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책은 총 33선의 인문학책을 기반으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다. 철학, 사회, 소설, 시를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 명저들은 분명 오래전 과거에 쓰였고,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관련되었던 책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맞닿아있었다.

인간다움의 근원에는 ‘사람‘이 있었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생애는 백성이 있었고, 그것은 그가 추구했던 실학이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 선진문물을 이용해 조선 후기 백성의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고자했던 그의 생각이 돋보였다.
 박지원이 선진기술을 이용해 당시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했다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사회적 발전을 꿈꾸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의 세상이 내게는 그다지 유토피아로 보이진 않았지만,(이 책은 읽었다.ㅎ)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의 소망에 대한 이상을 안겨준 책이 유토피아라고 하니 정말로 세상은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는 어찌보면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주의에 좀 가까운 느낌을 받아서인지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에 다가왔던 책은 마르틴부머의 <나와 너>이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우선 나는 너를 나의 바깥에 동떨어져있는 이질적 “대상”으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p.70
혐오와 배척이 난무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걸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는 저 기본적이고 아주 오래된 말이 왜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유대인으로 독일의 박해를 피해 시오니즘 운동을 했고, 결국은 조상의 땅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을 탄압을 어찌 바라볼까... 물론 그는 두 민족의 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램의 싸움은 아주 오래된 분쟁이기에 양쪽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상황이라…. 아직도 계속되는 현실에 안타까울뿐..

문학분야의 명저(소설) 중 소개된 책 베르톨트 브레이트의 ”사천의 착한 사람“. 이 책은 흥미로웠다. 절대적 선을 부정하는데 그 이유가 자본이라 말하는 책이다. 
”점심 한끼를 먹기 위해서는 보통은 제국이라도 건설할 가혹한 힘이 필요합니다. 열 둘을 짓밟지 않고는 아무도 빈곤한 자 하나를 도울 수 없어요“ p.211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회가 뒷받침 되지않으면 그 선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아주 구체적인 말을 하는 소설이다. 사회주의 사상을 말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자본주의를 바탕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회주의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흘리는 땀방울이 소수에게만 흘러들어가는 사회는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소개한 명저들 중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 

과거에 쓰여진 책이 여전히 현재에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은 어쩌면 우리가 나아가면서도 여전히 떨치지 못한 것들이 분명이 있다는 것을 서사한다. 
가장 문명화된 사회속에 있으면서도 파시즘이 다시 등장하고 있고, 전쟁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력 싸움도 여전하고, 널리 모두의 이로움이 아니라 나의 이로움만을 추구하는 경향도 짙어지는 요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왜 한강 작가님의 수상소감이 떠올랐는지 이 책을 읽어보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납득하실듯.

추천!

“역사랑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중에서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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