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헤드 수확자 시리즈 2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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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언이 고더드 일당을 모두 죽이고 수확자 루시퍼로써 수확자들의 세계를 휘젓기 시작하고, 시트라는 수확자 아나스타샤로써 수확자 퀴리의 보조 수확자로써 활동한다. 

 대부분의 수확자들이 수확대상을 선택하고, 일시에 수화하는 것과 달리 아나스타샤는 그들에게 한 달의 시간과 죽을 방법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이것은 아나스타샤의 일을 2배이상 가중시키는 일이였지만, 아나스타샤는 그것이 “죽음”이 존재하던 시대의 죽음과 더 비슷하다고 말하며, 방법을 고수한다.

 나는 선더헤드 편에서 이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 죽음의 시대라. 고도록 발전된 시대에 인구수 조절을 위해 수확자를 두었고, 그들은 통계를 기반으루 무작위로 선택된 이를 수확한다.
지금을 돌이켜보면, 죽음은 무작위로 오는 것이 맞고, 시기도 내가 선택할 수는 없다. 죽음의 방법도 사실은 뭐. 하지만, 사망까지 이르는 기간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내가 누군가와 이별할 시간은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나스타샤와 퀴리를 노리는 이상세력이 감지되고 그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선더헤드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수확자의 일에는 절대 관여할 수 없으니, 시트라가 꼭 잘 해내기만을 바라는데,,
루시퍼 로언은 고더드를 숭배했던 브람스에게 잡혀 에인에게 넘겨지고, 그곳에서 상상도 못할 인물을 만난다.

선더헤드가 감지한 위기,
그리고 3편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종소리.
대체 수확자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과학으로 모든 것이 통제되는 시기에도 통제되지 않는건 인간뿐이라는 아이러니. 흥미로운 책이다.
멋진 신세계 속 세계관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겠지만, 제한된 AI. AI와 분리된 수확자라는 세계. 가능한 세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깊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던지는 건 사실이다.
조금 다른 결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불미자로 위장한 그레이슨에게 선더헤드는 친구이자 반려이고, 힘들 때 찾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과 선더헤드 스스로가 읊조리는 독백은 스스로의 완벽함을 인식하면서도 인간처럼 불완전함을 흉내내는 듯한 말이 새삼 두렵기도 하니까.

굿.
3권 시작!


“.. 그리고 시간의 시작으로 여행할 수 있다면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그건 내가 창조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류가 창조주를 원하여 창조주를 창조하는 셈이 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시적인가. 인간은 신을 창조하고,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완벽한 생명의 순환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경우라면 전체 그림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 선더헤드” p.291

“내가 죽음을 분배하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사망 시대 인간이 두려워하던 인공 지능 괴물이 될 터였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를 선택한다면, 고대의 황제이자 신인 이들처럼 두려움과 사랑을 받게될 것이었다. 나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원하는 자도 침묵시키는 자도 인간이 되게하자. 인간이 영웅이되고, 인간이 괴물이 되게하자.
그러니 수확령이 내가 한 일들을 망쳐 놓아도 탓할 상대가 나밖에 없다. - 선더헤드”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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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 개정판 미쓰다 신조의 집 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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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전작 <흉가>를 지인 추천으로 읽고 이야 이야~하던 중에 작가의 “집”시리즈가 총 3편이라는 글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개정판 <화가> 이 작품이 원래는 흉가보다 이전이라고 하던데;; 나는 제목 <화가>의 의미를 책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한자를 몰랐구나….


주인공 코타로는 할머니와 함께 도코 도심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본인은 태어나서 한번도 치바현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데, 이사온 집은 너무나도 낯익었다. 대체 왜재? 할머니께 여쭤봐도 그럴리가 없다는 말뿐.
그리고 그곳에 이사온 날 부터 악몽을 꾼다. 그리고 집에서 이상한 인기척을 느끼고, 끊임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하지만 할머니는 전혀 그런 기척이 없는데,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 할머니에게 의논을 해봤자 믿어주지 않으실께 뻔한 상황.
하지만 이사 온 우투키 마을에서 레나를 만나고, 레나의 할아버지가 동네 유지이기에 뭔가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레나는 전혀 아는바가 없고, 할아버지 별 말이 없다.

계속되는 기시감. 혼자 있을 때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계속 되는 위협. 코타로는 그 집에 얽힌 사실을 파헤치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지역 신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레나와 함께.
그리고 발견된 사실.
집에 얽힌 비밀.
자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코타로 집 옆집의 음침하지만, 이사 온 날 자신에게 경고해주었던 코쿠보 노인을 찾아간다. 밝혀지는 진실에 경악하는 코타로와 레나.

다른 모든 장소는 자신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집은 다르다. 그렇기에 집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협과 알 수 없는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보다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우리도 잇사는 손없는 날을 택해가고, 이사갈 때 이래야 한다 저래야한다라는 미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행하지 않는가.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은 그래서 더 무섭다. 가장 편안해야할 공간을 가장 두려운 공간으로 만들기에.
흉가도 화가도.
나라면 벌써 도망을 가도 수백 번을 갔을텐데, 늘 주인공들은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선다. (그래서 주인공인가;;)

늦은 여름이지만, 더위를 날려줄 오싹함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 으흣.
근데.. 역시 귀신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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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매듭
배미주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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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계 전승"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각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다. 왜, 이 이야기를 "질긴 매듭"이라는 제목 아래 두었을까

개인적으로 이 제목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엄마의 마음" 같았다.
딸을 낳아야, 나의 엄마가 산다. 내가 딸을 낳지 못하면 엄마는 죽는다. 이토록 질긴 모녀사이가 있을 수 있을까. 엄마는 딸아이만 낳으면 남편을 "먹고", 아들을 낳으면 아들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요상한 이야기는 뭘까. 아직 아이인 딸에게 자신의 생을 말하는 엄마. 이 엄마는 진짜 완의 엄마일까? 모녀라는 관계에 대한 나의 막연한 생각을 깡그리 무너지게 하는 스토리였다. 뭐지. 모녀관계라는 것은. 이 둘의 관계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생을 위해 딸에게 기원을 말하면서도, 그 딸이 평범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와 엄마라는 위치에 대한 고민인 걸까. 저 두 관계에서 평범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엄마의 생은 완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순간까지만 이어지는 저주인걸까? 

"거짓말쟁이의 새벽"
쌍둥이인 지인과 지효. 하지만 유전자는 어느 한쪽에만 몰빵된듯 지인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졌고, 지효 그렇지 못했다. 늘 지효는 지인의 그늘 아래 있다. 심지어 지효가 언니임에도. 또 지효는 늘 아프지만, 병원에서는 병명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지효에게 주변 사람들은 '꾀병'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효는 억울하다.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팠는데,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지효의 원인 불명의 통증은 타인의 아픔을 그대로 미러링하는 기능이였던 것. 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엄마도 알고 있었다. 지효의 이모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지효에게 다가왔고, 그녀가 내민 손을 통해 지효는 자신이 맞은 운명을 달리 보기 시작한다. 이모 역시 같은 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왜 고통을 미러링 하는 것일까. 이모는 그런 지효에게 왜 손을 내밀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태원 참사가 일어 났을 때, 세월호 유가족 분들께서 깊은 위로를 건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도 작가님은 고통을 미러링하는 가상의 병을 통해 타인의 아픔에 그저 사건으로만 치부해 무심한 지금의 사회에 한마디 쓴소리를 하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그 고통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공감하고 위로 한마디는 건넬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효에게도 어둠의 시간이 끝나고 새벽이 찾아오듯 말이다.

이밖에도 "이삭은 바람을 안고 걷는다" 모두가 일을 못한다 외면했던 이삭을 품어준 도도. 도도. 왜 주인공의 이름이 이삭일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는데, 작가의 글을 보고서야 '아.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뿌려놓고 돌아보지 않는 이삭. 그렇게 말라가던 이삭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저 옆에서 가림막이 되어주는 도도.

"오랜일" 이 이야기는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및 살인 사건이 하루에도 몇 건씩 뉴스에 등장한다. 그런 일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내가 알던 이의 일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그것은 뉴스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되어버린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두고 그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님을 깨달은 영설은 미지처럼 죽어간 여성들에 대한 뉴스를 쓰고자 하지만 영설을 제외하고 모두가 그 일에 무감하다. 원래 그런 일은 늘 있었다는 듯. 이 이야기를 잘 생각해보면 진짜 두려운 일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 나의 가장 소중한 이가 죽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작가님은 그런 이를 우리가 제대로 위로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주제는 모계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금은 주위를 둘러보고, 타인의 아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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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 AI 제국의 설계자
저우헝싱 지음, 정주은 옮김 / 지니의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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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IT업계에서 근무 중이지만, 그 중에서도 보수적인 사이드(변화가 느린..)에 있다보니 ChatGPT의 등장은 조금 늦게 알았다. 어느날 누군가 알려준 ChatGPT. 오호라. 신기한게 나왔네.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에 초기 모델은 2.5년 전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였는지 아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등장과 동시에 순식간에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AI라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다.

 샘 올트먼은 2012년부터 AI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으나 미래를 지배할 기술이 AI라 말했다.
 2014년이면 머신 러닝이나 빅 데이터의 기술이 본격 괴도에 오르던 시점으로, IT에서도 AI는 상용화 단계는 먼~ 미래의 기술로 받아 들이던 시기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실로 놀라움이였다. 머리 속 막연하던 미래가 현재에 와있는 느낌이였달까..

샘 올트먼의 OPEN AI 설립은 일론 머스크를 제외하고는 논할 수가 없다. 머스크와 래리 페이지는 AI를 두고 좁힐 수 없는 의견차가 있었다. 래리는 결국 인간은 AI와 합쳐져 새로운 인간의 진화가 될 것이라 했지만 머스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인간은 방화벽을 잘 세워, 인간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도구로서의 AI를 주장했다. 결코 좁혀질 수 없었던 둘의 생각차는 머스크를 OPEN AI로 이끈셈.

머스크와 올트먼의 결합으로 세워진 비영리 기업 OPEN AI. 
초창기 그들은 AI는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되고, 그 기술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다. 이 부분에서는 올트먼과 머스크는 동일한 의견이였다. 하지만 현재의 OPEN AI는 영리 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구조나 기술에 대한 일부는 공개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올트먼의 입장에서 OPEN AI가 비영리로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여기 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초 거대 기업들이 AI기술 개발에 뛰어든 시기 그들이 가진 기술 및 인력을 유지할 보상이 없는 비영리 기업으로는 더 이상 인력, 기술력의 유출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익을 창출할 무엇이 필요해진 것. 

사실 OPEN AI의 창립 시기 올트먼은 다윗이였다. 페이스북, 구글의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그의 나이 고작 20대 후반. 대다수 회사의 중요 임무자 역시 20대 후반이였다. 일론 머스크를 제외하고는 자본력이 가능한 이도 없었고, 비영리 기업이였다. 
 비전과 미래를 바라보며 OPEN AI는 머스크의 자본력과 기술을 총동원해 GPT-1을 개발하였으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머스크는 OPENAI의 인력을 줄이고, 일부 인원을 테슬라로 옮기자고 제안했으나 올트먼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은 그의 의도를 의심했고, 그것은 그들의 결별로 이어졌다. 

 그 무렵 더이상의 사업적 수익성을 찾을 수 없어 흔들리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트먼에게는 기회였다. 
 AI 기술 확대와 자본. 그 모든 것을 가진 곳이 마이크로소프트였고, 그들과 사업적 결합 외에 OPEN AI는 영리 법인을 설립, 해당 법인의 소유주가 된다. 오픈소스를 클로우즈드 소스로 돌리던 시기도 그 무렵이다.
OPEN AI의 “보편성” “투명성”이 이 때부터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비난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개인적으로는 글쎄. 싶다. 명확한 이유가 없달까... 실제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뭐 이런 식.

사실 이런 내홍?은 구글과 딥마인드 사이에도 있었다. 독립적인 연구와 비 영리성을 보장받고 싶었던 딥마인드의 철학과 별개로 구글은 그들을 구글의 큰 그림 아래 편입시키고자 했다. 딥마인드는 그에 반발했고, 두 회사는 크게 부딪쳤다. 뭐 어찌어찌 합의에 도달한듯 하나.. 글쎄…(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이 책의 중반부터는 내가 느끼기에는 올트먼은 기술 개발에서 보이는 측면보다는 사업가 적인 면모가 더 돋보인다. 사실 사업가라는 측면이 강한 인물이긴 했으나 초반엔 기술자로써 AI기술의 사용성,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위력을 알기에 기술자로써 가지는 마인드가 분명해 보였으나, 중반부터는 사업가로써 사업 그 자체를 키워나가는 측면에서의 그가 좀 더 뚜렷해 보인다.
 그런 부분에서 올트먼과 여러 인물 간의 갈등은 구글과 딥마인드의 갈등과도 유사하다. 
 
사실 이런 부분들을 읽고 있자면, 그들 간의 분쟁은 우리가 AI라는 기술을 오로지 기술의 발전 정도로 치부해서 안된다는 것과도 같이 한다.
왜냐고?
그들 스스로도 지금 시대의 오펜하이머라고 말하니까.
 핵무기의 개발에 대한 당위성은 당시 기술자들로써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러한가. 오펜하이머가 왜 핵을 만들지 말하야 했던 것으로 말하는지 그의 후회를 돌이켜본다면.... AI가 핵은 아니지만, 핵을 넘어서는 위력을 보일지.. 어찌 아는가..
 SF소설 속에서의 AI는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권력을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일단 현실에서의 AI는 현재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생각 역시 중요하다. 오로지 도덕적인 이유가 다가 아니지 않은가..
 또한 누군가의 정의가 타인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AI의 발전의 기반 데이터가 되고 있다. 진짜로  AI시대가 온다면 인간이 필요하기는 할까?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되는건 비약일까.

“당신이 인류의 다른 모든 자질보다 지능을 더 가치있게 여긴다면, 앞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p.205

AI의 발전을 무조건적으로 디스토피아로 몰아가도 안되지만, 유토피아 만을 꿈꾸는 것 역시 위험하다. 샘이나 구글의 모토는 ”인간을 이롭게“하기 위한 것으로서의 AI를 말하지만, 그들의 숨긴 의도 역시 모르고,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그 결과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머스크의 의견에 동의한다. “방화벽”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명과학 분야의 유전자 조작에 대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생식 세포의 유전자 조작을 막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샘 올트먼과 오픈AI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소송은, 이타주의와 탐욕에 관한 교과서 같은 이야기이다.” p.275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 <웨스트 월드>라는 SF드라마가 등장하다는 것이다. 그 드라마가 보여줬던 시대가 먼~미래일 것 같았는데, 지금을 돌아보니 그 드라마는 근 미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ㅠ


본격적 AI등장을 가져온 인물.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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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새 우는 소리
류재이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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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어렸을 때는 제대로 한번 보지도 못했던 전설의 고향. 귀신이야기를 가장 무서워하던 아이가 커서는 무서운 이야기만 찾아다니는 어른이 되었다. 사실 알아버린거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당시 어른들의 말의 진실을.

"귀신새 우는 소리" 궁서체로 쓰인 책의 제목. 그리고 스산한 표지. 으흐흐흐흐.
더위가 조금 꺽이긴 했지만, 여름밤엔 이런 불끄고 스텐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서 읽는 맛이란..

이 책은 진짜 전설의 고향과 같은 옛날 옛적 무도사 배추도사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글로 쓰여진 전설의 고향이다. 

<금녀> 
 못생겨서 시집도 못갈 것 같았던 주인공 금녀는 현감에게 시집갔으나 쫒겨났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지만,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자고 있던 금녀를 아버지는 밖에 내다 버렸다. 점차 몸이 얼어 죽어가던 그녀는 어떤 따뜻한 털에 쌓여 어디론가 옮겨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엔 각자의 이유로 버려진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 였다. 그들은  "그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날라주고, 그들은 "그분"의 주변을 돌보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고 하는데,,, 대체 그들이 말하는 "그분"은 누구일까... 
 "그분"이 사는 동굴에는 그의 아내가 함께 기거하지만,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내는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데려온 지금의 아내. 하지만 그 아내도 그를 거부한다고 한다. 그렇게 "그분"의 아내에게 저녁상을 주러 들어간 곳에서 만난 여인.
그리고 금녀의 발에 묶여있는 알 수 없는 명주실.
그분은 누구이고, 그녀는 누구이며, 금녀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여우의 미소>
와.. 끝까지 누가 범인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던 스토리. 하지만 결국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 
"누가 오만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이 되고 싶다더냐? 오로지 너희 인간들만 그 모습으로 살아가려 발버둥 칠 뿐이다." p.116
관찰사의 집에 업둥이로 들어온 영인.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다 알고서도 그녀를 품은 부부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고을의 현감이 된 아들 재원은 영인이 마땅찮다. 그녀의 존재도 그녀가 자신의 동생이 된 날부터 재원은 그녀가 싫었다. 
하지만 묘한 존재의 그녀는 현감이 오빠의 고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쫒기 시작한다. 어느 여인의 죽음과 그 여인의 죽음에 관련된 이들이 하나씩 죽어가는데, 이것은 죽은이의 저주인 것일까.

<폭포아래서> 
개인적으로 결말이 제일 쇼킹했던 작품. (결말을 말할 수는 없음.)
복숭아 하나 따먹고 천년이 지났다는 이야기의 외전이면서도, 그 천년의 세월에 부서져버린 도끼손잡이가 아닌 결말.으흐흐. 그리고 이선이 믿었던 백결의 진짜 존재는 무엇일까?! 이선이 돌아간 그곳은 어디였을까..

할아버지가 모기향 피워놓고 아이들에게 해주시는 듯한 이 이야기들은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도 있고, 또..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도 하면서, 이 이야기의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귀신"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특히 <반쪽이가 온다>는 그 유명한 "내 다리 내놔~"가 등장하고, <웃는 머리>는 죽은 이의 머리가 웃고 있다는 설정 만으로도 유명한 얼굴 귀신이 연상된다. 뭔가 그 웃는 머리에 범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답해줄 것 같은 느낌 적인 느낌!?(물론,, 그이야기와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달리 같음, 다리가름>은 뭔가 피리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키면서도 진짜와 가짜를 끝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스토리. 각각의 이야기가 새로우면서도 어렸을 적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의 소재가 조금씩 들어있는 익숙함을 주기도 한다.

으슬하면서도, 묘하게 아련한 이야기들.
으흣 재밌다.
역시.
여름은 이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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