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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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것 같다. 물론 지금 보이지 않는 것도 많겠지.
20대부터 읽었던 박완서작가님 책은 늘 내게 향기로움을 주었지만,
40대가되어 읽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깊은 공감을 준다. 20대때에는 그냥 흘리듯이 읽었던 문장, 단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지만, 뭔가 지금은 나의 입주위를 맴도는 말들이 유려하게, 그러면서도 소박하게 작가님의 글로 아, 맞아. 아, 그래. 이런 감탄사가 나온다.
어쩜 이리 솔직하면서도, 깊은 속마음을 단아하게 쓰는 분이라니.
새삼 작가님의 새로운 글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이 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새로움은 낯선듯 반갑다.


제목부터 "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라니. 20대라면 당연한 말이지라고 생각했을 이 제목 마저도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세월이 흐르고, 지켜야 할것, 지켜나가야 할것이 나이가 지나며 어깨 위로 한켜 한켜 얹히다 보면, 문득 그것들이 다 사랑임에도 무겁워 버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 제목이 뜨끔하면서도, 나의 젊음을 내가 가졌던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달까. 표제작이 책의 거의 말미에 등장하는데, 작가님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싶어서 책 제목을 물끄러미 다시 보게도 했다.


"화창한 세상" 10, 20대에는 입시와 취업준비과정을 거치며 내가 첫 발을 디디는 곳은 남들에게 보기 좋아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 속에 갖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였다. (돌이켜보니 그러했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맞고보니, 왜 그런 편협한 생각 속에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다. 빈부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더 무한경쟁으로 빠져드는 사회 속에서 지쳐가서 인지도. 이 글을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외면하였는지를 알게했다. 그래서 뜨끔했달까. 
"이제  우린 열심히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정도는 보장된 세상이 됐다고 믿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헐벗고 굼주렸을 때 보다 더하면 더하다" p.126


"항아리를 고르던 손" 어여쁜 손에 고무장갑을 끼웠을 때, 그 투박함으로 인한 정나미 떨어지는 손에서 옹기를 고르던 뿌뜻함으로 이어지는 손으로 쓰여진 글이라니. 그저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던 글이다. 덤으로 작은 옹기 하나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골라 뿌듯한 웃음이 지어진 B부인에 대한 작가님의 글은 묘하게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배워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은 "방망이 깎던 노인"이란 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작은 방망이 하나이지만 정말 그토록 진심이였던 그 노인 이야기. B부인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그 웃음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셨겠지. 예전보다 사회는 계속해져 편리해지며 말그대로 현대화 되어가지만, 문득 예전의 것을 떠올려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 느꼈던 그 감성 때문이겠지. "목욕탕에서 갓 나온 여자 p.188"이라는 문구가 그 시절을 생각나게했다. 맞어. 그 상쾌하고도 싱그러운 표정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말이 필요없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얼마전에 TV에서 보았던 마라톤이 생각났다. 예능프로의 출연자가 마라톤에 참석한 내용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각장애인 분이 도움을 받아 42.195km를 뛰고 있는 모습. 뭉클해지는 순간이였다. 작가님이 보냈던 그 갈채는 내가 보았던 마라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자신과의 싸움.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히 나의 의지로 이끄는 그 걸음에 보내는 갈채. 감히 나는 한걸음 조차 떼어보지 못한 그 걸음에 대하여 말이다. 어쩌면 과거 금메달에게만 보내던 박수가 이제는 올림픽 전체의 선수들에게 향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결과만을 바라보던 사회가 과정을 보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결과가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글을 1970년대에 쓰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p.173


"보통으로 살자"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그때도 그랬지만 더 깊어진 혐오를 생각하게 한다. 재벌에 향하는 혐오. 가난에 향하는 혐오. 우리는 왜 혐오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재벌에 향하는 그것은 아마도 나는 갖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로 인한 사회의 삐뚤어진 구조에 보내는 미움이겠지만, 가난에는 왜 미움이 담겼을까. 작가님의 쓴 보통의 조건은 그시대나 지금이나 결국 돈이라는 잣대가 그어져 있다. 그것이 점점 돈으로 수치화 되어가는 것이겠지. 구체적으로. 
1975년에 쓰여진 글속에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 돈이 귀하지만, 사람을 더 귀하게 ,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내시겠다는 글을 읽으며, 왜 우리는 여전히 이토록 팍팍해지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나에대한 안타까움.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는 돈 그자체가 아니라 삶의 목표라는 것을 세우고는 있을까.  


한편한편 허투루 읽을 수가 없는 글이였다. 
맞어맞어하면서 읽다가 문득 쓰여진 연대를 보면서, 어떻게 이 때의 글이 지금도 깊은 공감을 이끄는 것인지. 어떻게 대체 그 한줄한줄이 뻔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웠던 책.... 흑.


진짜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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