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연
청예 지음 / 래빗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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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예작가님의 이야기는 도무지 종잡을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평온하게 쓸 수 있는 것이지?! 그저 불륜에 대한 복수인가 싶었던 이야기는 나를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한글로는 “주와 연”이지만, 책 표기에 ‘와‘의 표기는 정말…


아버지가 바람을 폈고, 엄마를 버렸다. 부모에게 버려진 오주희는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받았다. 사랑의 부적이였다. 그리고 그 부적을 내연녀의 손에 쥐어주고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오연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태어났다.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와 계모의 딸로. 

축복받은 삶을 살기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복수의 심정으로 태어난 그녀의 손가락은 6개였고, 해를 넘기고 태어나면 큰 복을 누리지만, 해를 넘기지 못하면 대흉일 것이라는 늙은 무당의 말에 기여코 해를 넘기기 5초전에 태어났다. 

두번째 인생이기에 많은 것이 수월했다. 알고 있는 지식들을 이용해 오연린은 그녀의 부모에게 큰 자신감을 넣어주었다. 끝없이 돈을 쓰게 했고, 그녀는 그 모든것들을 원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서 그녀는 모든것을 망쳤고, 아버지와 계모는 절망했다.

자신들의 딸이 왜 그런지조차 모른채.


그녀는 그녀의 삶 전체를 들여 그들에게 복수를 했다. 늙은 무당인 할머니부터 아버지 계모까지.

그러다 만난 은정.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자란 아이. 둘은 합심하여 부모에게 상처를 입히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던 중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며 연린은 대체 누구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것인지가 흐려졌다. 분명 시작에는 분명했던 복수의 대상이 점차 흐릿해지며, 스스로에게 가해지고 복수의 결과가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이였을까.

누군가는 삶을 살아가며 잊었던 과거를 그녀는 두번의 생을 살아가면서도 잊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해로써 복수를 행하는 것일까.


보통의 회귀환은 통쾌하던데,ㅠ

통쾌함이라는 것 자체가 판타지려나. 복수라는 감정의 바탕에 깔려있는 그 분노가 통쾌함이라는 감정과 맞닿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녀의 분노가 만들어낸 과정에서 빚어진 또다른 분노는 결국 또다른 결과를 낳는 결말에서 우리가 회귀환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지고 싶었던 복수에 대한 통쾌함은 결고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작가님은 말하고 있는듯 했다. 내 인생 전체를 걸고하는 복수의 다음 생이 정말 “극락”일 수는 없을테니까.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윤회, 극락과 같은 단어가 의미하는 불교 철학사상은 결국 흘러갈 것을 흘러가게 두지 못하고 끝내 쥐고 놓지 못해 또다른 억겁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슬펐던 걸까.

무시무시한 이야기 한편을 읽었는데,

왜 내게는 슬픔으로 남는 것일까.


“할머니가 아무리 많은 부적을 써서 칠갑으로 붙여두어도, 이미 닿은 연을 지우지는 못한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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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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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금지어같은 느낌이 책. 18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이 책이 왜 지금에서도 이토록 짜릿한 것일까.

책은 마치 그때도 지금도 금지어로 가득한 내용을 써놓은 것 같았다. 죽음, 혐오, 질투 등등.

내밀한 감정이기에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시원하게 고급진 언어로 퍼부어주는 느낌이랄까.(그래서 조금 어려웠다는건 안비밀)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보다는 “죽음의 공포에 관하여”라는 에세이가 더 눈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지나고보면 짧은 인생이면서도 우리는 왜 현재를 낭비하듯 살아가고, 꼭 마지막에서야 생을 들먹이며 아쉬워하는 것인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찰나의 삶을 안달복달하며 열띠게 산 뒤, 헛된 희망과 하찮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산 뒤, 다시 마지막 편안한 잠에 빠지고 삶이라는 불온했던 꿈을 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다니!“ p.65

개인적으로 두려운 죽음은 내가 아닌 내가 아끼는 이의 죽음이고, 물리적으로 나는 나의 죽음을 알 수 없으니, 결국 죽는다는 물리적 엔딩의 결말 전, 딱 그 사건 전까지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은 결국 삶의 가치에 있다고 전한다. 활동적이고 위험한 삶. 그것이 죽음의 공포를 경감시켜 준다니. 흥미롭다.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한 두려움의 경감은 삶을 가장 격정적이고, 과감하게 살라는 것이다. 진짜일까?


그리고 ”질투에 관하여” - 가장 아픈 질투는 우리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향한 질투다. p. 85

저자의 말처럼 질투는  오로지 나에대한 선망과 우월감 즉 이기심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것의 또다른 이름은 매혹이다. 나만이 가져야하는 우월감과 선망을 타인이 가졌을때, 그것에 매혹되는 마치 곁눈질을 하면서 보게되는 매혹. 그래서 100을 가지고도 1을 가진 사람이 내 눈길을 끄는 것에 견딜 수 없어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질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의 재능을 부정하게 만든다. 흥미롭다. 

배움은 긍정적 속성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천재성은 부정적 속성으로 받아들인다고. 결국 내가 넘지 못할 무엇을 가진 이에 대한 질투는 인간이 당연한 속성인것이락.


뭔가 나에 대한 굉장히 부정적 감정, 입밖으로 내놓을 수 없은 어두운 내면의 말을 시원하고 유려하게 써놓은것 같은 책. 기왕이면 좀더 간질거리는 말을 시원하게 내뱉어 주었으면 더 속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좀 어려웠다는 말)


흥미로운 책이다.

장강명작가님의 추천사에 쓰여진 말처럼 만나서 한번 그의 글이 아니라 ‘말‘로써 때리는 작가의 신랄함이 듣고 싶어지는 책이다. 진짜 시니컬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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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공포
이종산.정보라.허진희 지음 / 스프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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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가 높은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오니 저절로 공포물을 찾게된다. 에어컨이 주는 시원함도 좋지만, 두려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드는 등골 서늘함이 더 그리웠달까.

그래서 단편소설집 ”태양 공포“를 짚어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예상과는 다른 공포감이었다. 

3명의 작가가 쓴 각자 다른 도심속 세가지 공포이야기.


”태양 공포“

표제작인 태양공포는 정말 나도 공포다. 여름이라 찾아오는 계절감으로서의 공포가 아닌, 말 그대로 생존과 목숨이 걸린 두려움이다.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든 소재가 나왔다. 태양을 두려워하는 존재들. 우리가 영화나 책 속에서 보던 절대자로써의 존재가 아닌 그들은 인간을 두려워하고, 태양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주현은 방금 인간들 손에 부모를 잃었다. 

돈이 들어있던 가방에 있던 전화번호. 주현은 충동적으로 백화점에서 옷을 산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

끔직하지 않은가. 내가 평생을 속해 살아온 사회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그래서 나의 일상이 위협당한다는 사실은.  이 글을 읽으며 오래전에 읽었던 책 속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고하던 부분이었다. 왜 나는 이 글에서 그 글이 떠올랐을까..


”탈출기“

그녀는 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녀가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휴대폰 앱의 주소를 찾아 들어간 건물에서 그녀는 탈출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고, 그녀가 찾으려했던 곳에서 발견된 시체. 경찰은 그녀에게 대체 그곳에 왜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녀는 성폭행 피해자였고, 죽은 이는 가해자였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합의된사항이라 진술했고, 그래서 그녀는 마약사범이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무한루프 속 건물을 탈출하는 스토리인가 하는 숨막힘이 주인공의 사건과 맞물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굴레에 갖힌 것 같은 끔찍함이 느껴졌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군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런 사건들을 접할때 우리가 무심코말하는 XX사건 이라며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던 때가 있었다.(요즘은 아니지만) 그 때 그 이름이 가명이였더라도, 피해자들은 어떤 마음이였을까라. 

다른 어떤 책에서 성폭행 사건을 두고, 낙인이라는 말을 하며 누군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10년이 지나면 거의 모든 사람은 그 사고를 잊지만, 성폭행은 30년이 지나도 누구집 딸 당했잖아라며 절대 잊지 않는다고. 

탈출 할 수 없는 건물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였다. 그녀 스스로를 포함하여. 휴.

주인공은 탈출했기를. 


”나는 반대로 생존자들이 악몽에서 탈출하여 안전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악몽 속에는 가해자들만 남아 영원히 고통받기를“ p.103


”피터와 모“

외면, 고독. 이것이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발생했을 때, 인간이 가질수 있는 가장 어두움의 끝은 어디일까. 가장 가까운 이. 고독.

할아버지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어둠.지우는 남호가 태어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방치되었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래서 동생에게 화상을 입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너도 똑같이 해주겠다 말한다. 그말이 두려운 지우는 자신에게 화상을 입혔고, 골방에 갇혀 방치되었던 할아버지는 지우의 어둠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과 같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임종을 앞뒀던 어느날 돌아온 지우는 용서를 비는 엄마에게 자신이 돌아온 이유를 밝히고,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날 깨닫는다. 자신이 그곳을 떠날 수 없음을. 고독이라는 어둠이 나를 고립시켰고, 내가 그 안에 갇혀버렸음을 말이다.


이 이야기들은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종산 작가님의 소설속 주인공은 사회 전체가 그의 적인 일상이였고, 정보라작가님의 그녀는 하루가 고통이였다. 허진희 작가님의 지우는 어둠만을 끌어안고 사는 인물이였다.

 왜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눈을 뜨는 아침의 지루함이 새삼 반갑게 느껴지는지.

서늘함을 기대하고 읽은 책에서 그저 더위가 짜증나는 하루의 일상이 다른 의미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한 책.


추천.


모두의 안온한 일상을 바라며.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나의 원초적 애정의 대상이자 내 모든 외로움의 근원인 엄마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을,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허상의 탯줄을 끊고 마침내 내가 완벽하고 고독해지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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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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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이상문학상 최연수 수상자였던 예소연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  <그 개와 혁명>이라는 소설이 꽤나 인상깊게 남았던 터라 다시 궁금했다. 이분이 어떤 유머를 숨겨놓으셨으려나 싶어서.


이 단편 소설집은 굉장히 신기한 관계들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있는 일상적 그런 관계가 아니라 분명 남이지만 남같지 않은 그런 관계들.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라는 말이 이제는 좀 오래된 말같이 느껴지는 요즘이여서 그랬을까, 꽤나 신선하면서도 익숙한듯 생경한 느낌이였다.


<작은 벌>의 서송이와 진정희는 묘하다. 병원간 이송을 위해 부른 사설구급차를 탈취하여 진정희의 마지막을 준비하러간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설 구급차의 운전자 이중일에게 당신은 죽고싶은 사람 같다고, “살고싶은 것과 죽고싶지 않은 것은 다른”것이라 말하는 두사람. 이중일 역시 과거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진 사람이다. 두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의 구급차를 탈취한 이를 중일은 어떻게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졌을까. 어쩌면 아무도 없는 중일 자신에게 생길지 모르는 송이나 정희 같은 인물에 대한 갈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가족같은 관계는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중일도 가족같은관계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관계를 송이와 정희가 보여주었기에 그들의 탈취를 응원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표제작인 <너의 나쁜 무리>는 가족일까 아닐까.

여사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무튼 그것은 중요치않다. 나와 여사가 함께 살고있고, 여사는 아이인 내게 숨긴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사는 많은 남자를 사랑했고, 그 중 현구 아저씨는 오래된 연인이면서 여사의 돈을 들고 튄 인간이다. 현구아저씨의 연락을 다시 받았을 때는 돈을 회수하기 힘든상태였고, 현구아저씨는 그 돈을 나중에 굴착기를 팔아 나누기로 했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었다. 이미 내가 여사를 떠났고, 현구아저씨도 여사와 헤어졌고, 나도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해신과 헤어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현재.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굴착기의 돈을 회수하기 위해 모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그들을 모이게 한 것은 마치 돈이라는 가짜 피로 얽힌 가짜 가족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작가님은 "나쁜 무리"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일까.

  가족이란 늘 좋을 수도 늘 나쁠 수도 없지만 피로 얽혀있기에 끊어지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가짜 가족의 끈은 돈인 걸까. 돈으로 얽힌 사이는 피보다 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물보다 옅으려나. 분명한 건,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깊은 애증과 피로감은 영락없는 '가족의 그것'을 닮아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좋았던 <소란한 속삭임>.

지하철 사건으로 만난 모아와 시내. 둘은 <속삭임>모임을 만든다. 온갖 소음속에서 속삭임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고 마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처럼 보이게도, 그리고 중요한 비밀스런 말을 하는 사이같게도 보이게 만드는.

그런 그들이 또다른 모임원을 찾아 간곳에서 만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수자를 조건부 회원으로 들인다. 그리고 수자는 또 제안한다. “시끄럽게 구는것“도 하자고. 자전거를 타고 음악을 크게 듣고, 공원에서 오카리니를 불고, 

그렇게 친해진 세사람이 수자의 초청으로 간 그녀의 집에서 윗집 사람과의 분쟁을 해결하며 또다른 모임원 두리를 만난다. 뭐지 이 진짜 묘한관계는.

생각해보면 속삭임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고, 그래서 더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에. 그리고 그 서로에게 집중된 작은 소리는 나의 감춰진 무엇을 드러내게 만든다. 

”정말 사는 것 같았다. 모아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감각하며 속삭이는 일은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것일 수 있겟다고 생각했다.“ p.178


이밖에도 <아무 사이>에서 나타나는 할머니들과 간병인의 관계. <통신 광장> 속 여인2와 해피엔드. 만나지 않았지만, 상대의 글로써 누구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사이. 책 속의 인물들간은 관계를 정의할 수가 없다. 그저 어떤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가족보다 가깝고, 가족이라 말하기에는 가족은 아니니까. 하지만 끊어낼 수 없고, 나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리는 관계들이다. 단지 휴대폰 속 저장된 이름 하나로 나를 이해시키는 사이.

대가족에서 핵가족, 그 핵가족 속에서도 파편화 되어가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대신하는 무엇이 지금 우리가 맺고있는”사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가볍지만 진득하고, 타인은 이해할수 없지만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으로 정의되는 관계?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여러 플랫폼이나 사회적 변화속에서 다변화 되면서도, 묘하게 좁아진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해의 폭도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추천.


”기문은 작별 인사를 아주 오랫동안 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상대가 먼 길을 갈 때는 배웅도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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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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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물, 어두운 숲이라는 작품으로 알게된 작가님. 잘 가던 북카페에서 여름이면 꼭 언급되던 분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고시원” 나는 머물러본적은 없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집이 수도권이라. 다만 첫 직장을 다니던 무렵 친한 동료한명이 고시원에 살았는데, 잠시 다녀올 일이 있어 들어간 그곳은 꽤나 놀라웠다. 이토록 좁은 공간이라니. 그리고 친구는 거기서 한마디도 하지말라했다. 방음이 전혀 안되기에 타인에게 소음이 된다고.


그런 고시원에 대한 기담. 고문 고시원.

완전히 낡은 고시원.작가는 이 고시원을 “초식동물”이라 했다. 너무 낡아 들어올려고 하는 이 조차 없는.더군다나 흉가터위에 올려졌다는 소문과 귀신이며 뭐 이런 것들이 나온다는 소문에 이제는 사는 사람마저 몇 없는 상태다. 

이 이야기는 그런 고시원의 각 방에 대한 이야기다.1,2층은 폐기되고 3층에만 사람들이 살고있다.


 시작은 303호 홍의 이야기다. 홍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한움큼씩 빠지던 날, 무심코 들려오는 304호의 소리. 그는 304호의 권이다. 우연히 얇은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작한 둘의 대화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따뜻한 권에 홍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간다. 그래서 총무에게 304호에 대해 물었을 때, 고시원 총무는 그 방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말하는데.. 그렇다면 권은 누구지?


그리고 316호 오케이맨.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서 갖은 차별을 당하던 그에게 생긴 초능력. 그도모르게 그 능력으로 지하철 선로에서 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고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모두가 그의 능력을 궁금해하던 중, 어느 유튜버의 꽤임에 빠져 참석한 곳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능력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국민영웅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돌아간 고시원. 그곳에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313호 무림 사내 편.

중국무술을 연마했고, 무인으로 살려했지만, 웬지 서울에서 취업을해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머물게 된 그. 자주가던 책방에서 책방 주인에게 시비를 걸던 무뢰배를 혼쭐을 내주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된 책방주인은 알고보니 대기업인사팀 출신이였고, 그의 도움을 받아 제출한 이력서로 최종 면접가지 간 편.

마침내 취업을 눈앞에 두었던 그날, 그 취업장에 나타난 덩치가 큰 사내. 그에게 당한 무뢰배였다. 사장과 친인척인. 그리고 돌아온 고시원에서 마주친 뱀같은 사내에게 느껴진 한기. 그리고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 그는 지나칠 수 없었다.


311호 매일죽는 남자 최.

타인의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내야하는 직업을 가진 그. 돈때문에 하는일이지만 정말 소름끼치는 사내가 있다. 얼음장. 타인을 이렇게 다양하게 죽이고싶을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어느날 자신이 살던 광천동의 연쇄살인의 패턴이 자신에게 와 다양한 죽음을 요구했던 얼음장의 선행 살인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산것은 휘발유였고, 자신의 사업장에서 자기에게 요구한것도 다수의 살인과 방화. 그는 얼음장의 얼굴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가 막을 수 있을까.


317호 사투소녀 정.

직업이 킬러. 정이 자신의 타겟을 데리고 도망쳤다. 왜 이 아이가 죽어야하지. 분명 정을 고용한 곽사장은 그녀에게 죽을만한 인간만 죽인다고 했는데.

데리고 도망친 란은 용한 무당이여다. 그런 란이 정에게 말한다. 그 고시원은 가지말라고. 어마어마한 귀신들이 붙어있고, 그날은 큰 일이 날것이라고.


재밌는 점은 각각 다른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얼음장/괴물/뱀이라 불리는 누군가이다. 왜 고시원이였을까. 작가님이 그리고싶었던 곳은. 그것도 가장 낙오된 곳. 앞을 알 수 없는 이들이 모인 고문고시원. 그들에게 놓인 현실은 얼음장같았고, 모두가 그들을 누르고 싶어하는 괴물이였고, 이용해 먹으려 드는 뱀같은 현실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야했고, 

찾아야했고,

이겨내 삶을 지속해야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

그 장소가 주는 느낌은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은 느낌이였다. 살아나올 수 없는. 


그들은 그 괴물을 이겼을까.

공통적으로 들리던 여자의 외침은 무었이였을까.

그리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누구였을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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