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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김초엽 작가를 알게한 최초의 책. 근데 이제서야 읽었다. 지인이 꽤나 멋진 SF가있다며 알려준 책인데, 표지는 왜 잔잔한 단편소설집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며 신기해했었는데, 책을 읽고보니 다시 보이는 표지. 그냥 그랬다고,
책의 첫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굉장히 센세이셔널하달까. 순례자 마을에 사는 데이지는 궁금했다. 순례자들이 왜 돌아오지 않으며,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왜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어떤 역사가 있을까. 이 마을을 설계한 릴리 다우나는 자신이 가진 유전병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 편집기술을 통해 인간배아의 디자인을 연구했고, 성공했다. 인간성에 대한 반발이 심했으나, 결국 각 나라는 이 연구를 받아들였고, 바이오 과학자로써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실패한 시술로 기형아가 발생했고, 개조된 인류와 비개조 인류의 차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릴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릴리는 마을을 만들었다.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도 차별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 마을의 순례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지구를 순례한다. 남을 사람은 남고,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는것. 어찌보면 지구가 디스토피아이고 마을이 유토피아인셈. 그런데 꼭 디스토피아에 남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아무 걱정없는 낙원같은 마을은 그들에게는 유토피아 아닌것이다. 차별이 있을지언정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타인과 부딪쳐가며 어떤것을 극복하고, 어떤것은 수용하며 좌절할지언정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현재보다 더 낫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디스토피아를 지향하는 SF세계라니.
“공생가설”
보통의 사람이 7살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하나로, 7살 이전에 우리가 누군가와 공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신박한 상상이 그려낸 이야기. 정말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왜 만화책 기생충이 생각났을까.ㅎ 우리가 잊은 어떤 기억속에 누군가와 함께 했다면 그는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이미 중년이 된 나를 그는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제작인 이 소설. 여운이 많이 남는다. 빛의 속도로 간다는 것은 빛을 능가할수도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안나는 100년전의 지구로 돌아갈까? 이미 떠나와버렸고, 100년도 넘게 시간이 지나버린 안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동결을 통해 우주로 나와 시간이 어긋나버린 사람. 그리고, 그 시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에게 지금 돌아갈 곳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 p.180
다시 떠나는 안나의 아주 느린 여행의 끝은 지구일까. 아니면 그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가족일까.
“관내분실”
나도 생각해본다. 그리운 이를 다시볼 수 있는 시스템은 축복일까 아닐까. 우리가 가장 그리운 이를 보내는 마지막은 망각이다. 그리운 이를 기억하지만 붙잡지는 않는 것. 좋은 기억을 추억하는 것.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차차 서서히 잊어가며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데 그런 이를 언제나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마인드는 진짜 일까? 그저 프로그램일 뿐일까? 그저 프로그램이라면 분실되어도 그만인 것 아닌가?
김초엽 작가님의 미래는 지금의 현실처럼 온통 물음표만 남는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완전한 디스토피아 아니면 지금보다 훨씬 윤택해진 미래여야 하는데, 작가님의 미래는 여전한 궁금증과. 어떤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한다.
첫작품의 순례자는 유토피아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고,
관내분실은 인간의 뇌가 모두 스캐닝이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표제작은 여러 우주를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고 싶어 하는 곳이 먼 곳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품은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케하고, 감정의 물성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다양함에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것은 행복, 기쁨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스펙트럼은 대항해 시대를 생각케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대항해시대에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것을 지켜내야 함을. 그래서 지금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케 한다.
흥미롭다.
결국 미래는 지금과 풍경이 다를 뿐, 우리는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해가며 살아가는 존재인 걸까.
그럼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가 올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