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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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라는 부제가 눈에 띈 책.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판형이 크고, 꽤나 두껍다.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딱 하나 였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련이라는 사회주의가 붕괴한 체제 이후가 궁금했었다. 20여년간 작가가 일천명이상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썼다는 이 책은 이 작가의 다른 책처럼 과거를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미래를 말하고도 있는듯 했다.


1,2부로 나뉘어 있고, 책은 전부 인터뷰로 이뤄져있다. 개인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대한 근현대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이들의 나레이션 속에 드러난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해 내게는 조금 어렵고 지루했지만, 그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 현재 처지에 대한 절망, 그래서 바라는 미래의 세상이 아이러니하게 과거로의 회귀를 꿈꿀 수 밖에 없는 현재의 부정, 그리고 그들 주변인들이 겪은 사건들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급작스럽게 찾아온 돈을 매개로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난하지만 안온한 일상을 살던 이들에게는 곧 생존투쟁이 되어버렸다. 
몇몇 정치인에 의해 체제가 붕괴되었고, 어떤 울타리도 없이 그 변화를 받아내야 했던 다수의 민중들에게 그것은 어쩌면 재앙이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옳고 그름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런 흐름속에서 살아남아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싣고 있었고, 어쩌면 소비에트 연맹, 사회주의 체제의 향수를 부르짖는 이들의 그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개혁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절박함과 자신들이 살았던 한 세계가 쓰레기장 취급을 받는 다는 사실이였을 뿐이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서로를 보듬고 살던 과거.
발전은 하고 있지만 돈이 있는 이만 사람 대접을 받는 현재.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독재였고, 사회주의 였더라도.


물론 개혁 상황에 적응을 마치고, 과거를 묻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급격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역시나 그들에게도 쉬운 궤적은 아니였다. 모든 것이 돈으로써 환산되었고, 그 모든 것에는 사람도 포함이였다. 끔찍했다. 부모가 자식을 돈에 팔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은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야 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내몰았을까.
책 속에서 충격적이였던 것은 체제를 바치고있던 강력한 통제력이 사라진 순간 서로 이웃이였던 이들이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진 참극이였다. 사실상 학살에 가까웠던 사건은  아르메이아인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학살에 가까운 폭력은 체제의 붕괴가 가져온 가난 보다 더 무서운 인간성의 파괴였다.

이들의 과거 향수를 읽어내려가며, 문득 한국의 1970년대의 독재를 그리워하고 추종하는 그 세대들의 말들이 오버랩 되었다. 어떤 체제인지가 중요했다기 보다, 많이 다른 결이긴 하지만, 현재에서 바라볼 때 옳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는 왜 되풀이 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 영광스러웠던 과걱 아니라 현재와 비교되는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강력한 차르를 기댜리는 어느 할아버지의 인터뷰처럼 말이다. 
“소비에트 정권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그곳이 돼지 우리여도 살 용의가 있다.” p.181

과거의 의로움은 갈곳을 잃고, 현재의 구걸만 남았다.과거에는 꿈꿀 수 있었던 미래가 현재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만 남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에겐 변화가 기회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변화를 기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다수의 일반 인민은 이제 서민이라 불리고. 가난에 시달리는 현재라니.

어쩌면 이 책에서 그리워하는 과거는 자유가 없었던 독재시절의 소련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었던 그 사실에 대한 절망의 발로였는지도. 그 울타리가 사라진 순간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것은 허무를 넘어선 증오와 야만성이였다.
그렇다면 2026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는 독재의 향수, 무력을 통한 전쟁 등은 인간이 존엄하게 살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라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오로지 효율과 이윤을 말하며 각자도생의 야생으로 사람들을 내몰았던 결과에 대한 대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좀 난해한 책이긴 했으나, 읽어볼 만했다.
과거에서 현재의 톺아보게한 책.

“우리는 부드러운 사회주의,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얻게 되었죠? 길거리에는 잔인한 자본주의만이 팽배합니다. 총싸움, 말다툼. 누가 가게 주인이고 누가 공장 주인이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뿐입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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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블랙 에디션)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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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문학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제목도 표지도 강렬한 책. “사탄탱고” 궁금했다. 묵시록의 대가라 저자의 소개글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이 책은 꽤나 읽기 힘들었다. 뭐지 이 늪지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은. 읽는 내내 끈적하고, 축축한 공기가 나를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 후반 체제의 붕괴로 진흙탕이 되어버린 헝가리 작은 집단농장이다. 8개월치 고약스런 노동의 대가를 받아오기로 한 슈미트 일행.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떼어먹고 도망갈 생각이지만 슈미트부인은 후터키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후터키는 돌아온 슈미트가 돈을 떼어먹을 생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추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편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챌 모의를 하던 중 크라네르 부인이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메시아의 등장인 셈. 책속에서 이리미아시가 왜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그런 농장사람들을 등쳐먹기 위해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을 퍼뜨린것도 그였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퍼뜨린것도 그였다. 이 허술한 사기극에 조차 마을 전체가 들썩일만큼 그들의 삶은 바닥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2명의 소외된 이가 있다. 마을 의사와 소녀 에슈티케. 의사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소외된 이였고, 에슈티케는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아이다. 자신의 오빠조차 자신을 경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를 믿고 의지했으나, 그는 동생을 속이고, 그녀의 돈을 가져가버렸다. 그 분노와 배신은 어린 에슈티케로 하여금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포학함으로 분출되었지만, 결국 죄책감, 배신, 그리고 이 현실을 구원해 줄 이 없다는 절망은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에슈티케의 죽음, 더 이상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이용한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을 웅장한 연설로 호도한다. 또다른 낙원을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처럼. 그리로 가자고. 그런데 그리로 이끌기 위해서 자신은 가진돈이 없다고. 위대한 메시아 같은 그의 연설에 감동한 마을 주민들은 가진돈을 내어놓고 그를 따라 길을 떠난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은…그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이야기 속에 소외된 이들 중의 한명인 의사. 의사는 그들과 길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이 책의 대미를 완성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치 생각없이 자신의 세계에 갇힌 듯한 이 인물은 울릴수 없던 종소리의 실체를 확인한 인물이기도 하면서,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디스토피아가 나타내는 끝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이랄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지옥같은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메시아를 찾는 어리석음을 보일까.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무기력과 어리석음을 만들어 낸것은 무엇일까. 이 스토리속 인물들중에서 다음 세대의 인물은 소년과 소녀다. 소년은 이미 기성세대에 녹아들어버린 인물이면서 권력을 쥔 이를 가까이하려는 이미 현실속 찌든 다른 인물들과 다를바 없었고, 소녀는 그 현실 속에서 자살을 택했다. 소년이 에슈티케의 돈을 빼앗아간 그 오빠라는 점은 대물림되고 반복되는 현실이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다음은 없는 그 몰락속에서 만약 마을 사람들이 종소리의 실체를 확인했다면, 그들의 이후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디스토피아가 나타내는 가장 두려운 것은 무기력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아질 수 없다는 좌절은 순응을 만들어내고, 모든 희망과 소망, 심지어 욕망까지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세상 속에 이미 순응해버린 이들이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리미아시와 같은 인물을 메시아로 인정해버리는 과오를 저지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의사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마치 이 이야기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현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어쩌면 아주 먼 훗날 누군가 의사의 기록을 본다면, 이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실낱같은 방어선쯤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묵시록의 대가 맞네.
끝나지 않을 종말같은 세상의 반복이기도,
반대로 종말같은 세상속에서 남기는 기록이 다른 이에게는 희망이 될 바탕이 될지도 모르니.

어려웠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책.
나는 무엇에 눈가리고 봐야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가도 생각하게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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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부동산 ㅣ 기기묘묘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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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이다보니 나는 내가 알지못하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렇게 눈에 띄인 이 책. 여름이 끝나고도 “기기묘묘”라는 말은 나의 호기심을 툭하고 건드렸다. 박혜연 작가님의 책은 처음인데,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염라도 어쩌지못하는 괴이라는 존재와 염라의 계약이다. 저승에 나타난 삿된 것. 그것은 저승을 집어삼킬 힘을 가졌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위해 염라는 그 삿된것과 계약을 맺었다. 그것이 명부에 손대지 않는다라는 대전제하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의 껍데기를 그 삿된 것이 취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16XX년대 오롯히 한명 남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양반에게 잃은 한 여인이 다리위에 섰다. 그리고 그 여인은 죽기전 한 존재와 게약을 맺었다. 그리고 ‘단야‘가 탄생했다.

연준은 늘 불운을 몰고다녔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홀로 살아남았던 날부터 불운은 모두 그에게 달려드는 듯했다. 그래서 오래전 삶을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질때 찾아오라는 호암사의 스님 법호를 찾아갔지만 스님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대신 호암사의 주지스님 헌승의 배려로 그 절에 하루 묵어가던 중 괴이한 일을 당하고, 단야를 만났다.

그렇게 단야의 제의로 함께 일하게 된 연준.

단야 곁에는 차귀가 있고, 기영이 있고, 또 금두꺼비가 있다.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고, 괴이로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준은 끊임없이 궁금했다. 대체 왜 나를 데려왔을까.

차귀는 연준을 고이 보아주지 않는다. 그로인해 단야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했고, 대체 왜?!


서서히 밝혀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기묘한 존재들에게서 다시 인간으로 향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지못하는 죽음 이후는 어떤 모습일까.

왜 괴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껍데기을 갖는 것으로 계약을 했을까.


“인간이란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있다 한들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붙들고 싶어 하니까요. 얼굴이 나온 사진이든 이름이 적힌 위패든, 혹은 추억이 담긴 물건 무엇이든.” p.210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인간의 껍데기를 가지고 살지만 결국 인간이 되어간다. 인간의 삶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한한 삶과 힘을 버리고 유한한 존재로써 살아가기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인간이 아니였음에도 인간다운 선택을 했고,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고서도 인간처럼 대했다.


단야가 연준을 택한 것은 무엇때문이였을까.

괴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유한한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 것일까.


나에게도 딱 맞는 그 방을 찾을 수 있도록 

“귀국부동산 빈방 있음” p.248

이 팻말이 내게도 보인다면, 나도 딱 맞는 내 방을 찾을 수 있을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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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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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박지리 작가님의 책은 읽어보진 않았으나 “다윈 영의 악의기원”이라는 책은 알고 있다. (읽어보고 싶으나 엄청난 두께에ㅠ)

그런 박지리 작가님을 기리는 문학상. 

“알갱이들”

내가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건 죽음에 대한 살아남은 이의 감정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정미를 잃은 현비는 전학을 갔고, 그곳에서 김라희에게 거친폭력을 당하는 소윤을 만난다. 그리고 정미의 언니 유미는 현비를 찾아온다. 현비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할머니가 가끔 방문하고, 고모부를 잃은 고모와 연을 맺고있다.

정미의 죽음을 두고 유미는 현비에게 그 이유를 묻지만 현비는 정말 알수가 없었다. 그런 현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유미와 계속해서 죽은 친구를 두었다며 참회하라는 할머니,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자신을 마치 불경한 무엇으로 대하는 친구들.

현비는 이런 태도들이 그저 이상할 뿐이다. 자신도 정미가 왜 죽어야했는지를 모르는데, 대체 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그 이유를 알아야함은 왜일까. 그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내가 납득되지 위함일까. 죽음이라는 살아있는 사람과는 절대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물리적 상태를 두고, 왜 죽음 그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유를 찾으려하는 것일까.

현비에게 찾아온 고모부는 죽고싶은 마음을 요구한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것 같은데.” p.110


그런 고모부에게 현비는 죽고싶은 마음은 떡볶이 그릇에 그리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단무지 그릇에 담아 전달한다. 죽고싶은 마음 옆에 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까. 아니면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너무 슬퍼서였을까.

죽은 고모부와 만난 현비는 정미를 만나면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한다. 그녀의 죽음에 단 하나라도 누가 되지 않기위해.

나는 고모부와 현비의 대화를 통해 오로지 죽음을 산자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려 했던 나를 발견하게했다. 죽은 자의 마음을 나는 모르니까.

하지만 가장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두고 유미와 현비, 그리고 고모의 시간은 결국 죽음의 이유도, 원망도 아닌 기억만 남았다. 좋은 기억. 그리고 서로가 그들을 기억하고있다고 공유하는 마음.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은 죽은 이에게 바치는 애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은이를 터부시하는 할머니는 책을 읽는 나에게도 알갱이들 속의 현비에게도 고모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알갱이가 모여 만드는 하나의 알맹이.

그것이 우리가 상실의 아픔을 겪고도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일지도.

그래도 누구가를 잃는 일은 아.. 너무 힘들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하여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한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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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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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파시즘”이란건 무엇일까. 나치에 대한 긍정적 표현에 대한 언급, 손표시에도 치를 떠는 독일에서 나치정당이 나오고, 유럽/미국, 우리나라에서도 극우의 스피커들을 대신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요즘 “파시즘” -ism 이라는 이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은 책.


이 책은 흥미롭다. 파시즘에대해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득세했던 그 시대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들의 등장/탄생, 그리고 뿌리내리기와 장악, 권력행사, 그리고 비로소 파시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책의 맨 마지막장. 그리고도 여전히 나는 파시즘에 대한 의미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딱 정의되지 않은 무엇의 느낌이랄까. 

세계사에서 파시즘하면 독일/이탈리아를 떠올리지만, 사실 파시즘의 시작을 저자는 미국의 KKK 로 본다. 초기 파시즘의 등장은 결국 현체제의 불안이고 불만이다. 그렇기에 급직적 재건주의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부여한 투표권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일으켰고,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뒤집힌 사회질서를 바로잡곘다고 나선것이 민병대 즉 KKK인것이다. 마치 그들의 폭력은 사회를 위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신념으로 말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현 체제의 불안 속에서 등장한다. 유럽전역에도 파시스트 정당이나 세력들이 꽤나 많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정치세력들의 견고함이였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했고, 기존 정치세력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끌어들인 파시스트 세력들에 의해 먹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세력은 왜 파시스트에게 권력을 내어준 것일까? 모두 다는 아니지만, 파시즘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기존 세력의 사유재산이나 가진 기득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저자는 짚고 있다. 나치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처음엔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주의 그 자체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 세력을 규합했고, 당시 1차 세계대전 등으로 세계적 위험이 닥치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는 기존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그 자체가 모든 불만세력들의 연합이였기에 그 모두를 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였다.

그 빈틈을 비집고 등장한 파시즘. 그들은 기존 세력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주의의 불만세력들을 규합했고, 그 최 앞단에 세계가 아니라 국가를 내세웠다. 그들의 외침은 세력을 규합했고, 세력화된 세력은 소수이지만 정치권으로의 입성을 의미했다. 그렇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이탈리아, 독일의 세력이 되기 시작한 것. 그렇게 권력을 쥔 파시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였다. 파시즘은 어떤 이념을 가진 집단이 아니였기에, 그들의 집권에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그들이 한 것은 한마디로 지지세력이 원하는 말을 해준것이였으니까. 그들의 이념은 “없다”는 것이 이념이랄까.
그렇기에 내부 분열을 막기위해서 선택한 것은 적. 그것이 반유대주의였다. 그것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의 세력을 규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종하지 않으면 당신도 저 부류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인 것이다. 그렇게 세력화를 막고, 그들 모두를 원자화 시키는 효과를 낸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외부 포로들의 노예노동으로 인해 많은 독일인들이 주인의 위치로 격상된 효과도 있긴했지만.

파시즘은 한 개인에 의해 등장한 이념이 아니다. 그들의 근본엔 대중이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정신분석이 필요한 대상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파시스트 대중일지도 모른다.” p.467
이토록 무서운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곧 누군가의 등장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파시즘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며, 현재는 세계적으로 그런 현상들이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파시즘과 독재, 공산주의 등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러했다. 선전선동이 만들어내는 결집.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적, 폭력. 이 모든 것이 파시즘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에와 세력에 맞도록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시즘이 세력을 불려나갈 때 적절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파시즘의 주기가 무턱대고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p.490

우리는 또다른 파시즘을 맞닥뜨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혐오,선동, 양극화되어 서로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세력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말을 읊는 정치권.
과거를 읽고 있음에 나는 왜 두려울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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