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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정보라 작가님의 책인데 SF 단편선이라. 궁금했다. SF는 기본적인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하고, 그런 설명을 이해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기에 대체로 장편만 있는 줄 알았는데 SF 단편선이라. 어떤 이야기 들일려나.
결론 부터 말하자면 나와 너.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실의 나와 너 즉 타인은 타인이다. 타인을 우리로 인식하기보단 타인 내가 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지금 표제작인 <너의 유토피아>는 우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계가 말하는 우리의 이미지. 그것은 마치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을 생각나게 했다. 아무도 살아있지 않는 지구에서 자동차인 나와 어떤 로봇이였는지 모를 너. 인간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건물에서 만난 괴물은 너를 완전히 망가뜨렸고, 나는 조금 남은 전원으로 너를 소생시켜 줄 전원을 찾아 헤매인다. 너의 '말'을 기다리며.
어른들의 말처럼 소위 미물도 우리를 아는데, 우리는 왜 우리라 말하지 못하는 지금을 맞이한 것일까.
이 책의 일부 배경은 디스토피아이다. 디스토피아라서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일까. 유토피아의 세상에선 유토피아를 말할까. 문득 든 생각..
인간이 멸망하거나 멸망 할 전염병에 걸린 세상. 작가님이 그 세상 속에서 말하고 싶은것은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왜 우리여야만 했을까.
<여행의 끝>에서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인해 살아있는 사람을 먹는다. 왜, 어떻게 걸렸는지도 알수 없고, 치료약도 없다. 어떤 이가 사람을 먹기 전까지는 그가 병에 걸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구를 떠난 탐험대. 결국 선장이 보균자였고, 그로 인해 생존싸움이 일어난다.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이들만 살아남아 지구로 귀환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그 둘은 감염자가 아닌걸까. 우리라 말하지 못하는 세상은 결국 최초의 세상처럼 퍼스트 인간 하나만 남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혐오하며 결국 남은 오롯한 한 사람에게 그 세상은 행복할까...?
<여행의 끝>의 마지막이 디스토피아로 향한 것이라면, 표제작인 <너의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 세상 속에서 보여지는 희망 같다. <아주 보통의 결혼>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이야기 그이가 그가 아닐지언정 말이다.
<One More Kiss, Dear>에서 나는 그녀를 오래토록 생각한다. 그녀의 손가락이 닿았던 흔적을 기억하며, <그녀를 만나다>에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나지만, 이 이야기가 그리는 세상은 현실에서는 요원해 보인다. 그녀가 꿈꿨던 세상은 적어도 이정도는 되는 모습이였던가. 새삼 잊고 있었던 안타까운 이가 생각나는 스토리,
<Maria, Gratia Plena>는 죽은 이의 기억을 소생시켜 그녀가 했던 약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하는 내가 그녀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 그녀가 했던 약보다 왜 그녀에게 그 약이 필요했는지를 결말에서야 비로소 이해함으로써 그녀의 마지막을 타인으로부터 지켜주는 인간으로써의 연민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혐오가 일상이 된 지금은 어쩌면 정말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너의 유토피아는?"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답할까.
우리가 과거를 통해 배울 것이 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마음처럼.
어쩌면 가장 첫 작품인 '영생불사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약을 먹고 우리가 영생을 산다면,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참혹한 사건들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가장 첫작품으로 선택하여, 그 다음 이야기들 속 세상을 생각해보라는 의도였을까?!
적어도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시대에서, 나의 다음 세대에서는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씨앗> 속 세상에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속박되고, 타인의 시선 속에 갖힌 삶을 살게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 세상에서 속박되지 않기 위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고 지켜낸다. 그래야 책 속의 아무도 살지 않는, 아무도 남지 않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생, 디스토피아, 기계에서 보이는 희망, 타인에 대한 연민, 그리고 공감 그 끝에서 말하는 우리, 그래서 다시 시작!
"그런 날이 정말로 온다면, 바로 그날 세상은,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땅과 바다는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사람과 자연은 햇살 속에 하늘을 향해 함께 자라나게 될 것 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p.354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