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거래 연구소
도선우 지음 / 라곰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와 운명을 거래할 수 있다면.그러면 나는 거래를 할까? 별것 없는 인생이지만 글쎄 싶었다. 다 이러고 사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강렬한 제목뿐 아니라 마치 부적같은 빨간색 표지로 나를 사로잡았다.


주인공 고달.

평범한 인생은 아니다. 마치 불운이 그를 쫒기만 하는 것같은 이. 지금도 수십일째 이어진 야근중이야.  자신의 일을 부하직원 또는 동료에게 몰아버리는 한 인간으로 인해. 그리고 그조차 알려들지 않는 상사에 의해 겨우 숨만 붙어 일하고 있었다. 야근하고 돌아간 집은 윗집 배수 파이프 문제로 온통 물난리. 밤새 물을 퍼내고 다시 출근한 고달에게 전사 강연이 예정되어있었다.(아.. 일도 많은데 이런 행사 너무 싫다..) 그리고 반강제로 참여한 강연에서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

“인생 행복”등의 남의 세상 강연을 듣고 있자니 고된몸에 부아가 치민 상황.

어찌어찌 다 듣고난 강연의 강사가 고달에게 명함을 하나 주고갔다.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것 이라고.

명함의 앞면에 “운명 거래 연구소“라 적혀있었다.


그렇게 동네라 방문한 그곳.

그런 곳이 있었나 우리동네 인데 싶은 궁금함이 일기도 했지만 그곳의 ‘그레이스 켈리‘를 닮은 사장에 정신이 뺏겨버리고, 차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삶.

그녀는 내게 선의로 살아온 삶이기에 주어진 기회라고 했고, 그것은 그로부터 비롯되기도했지만,  부모님으로부터의 선한 영향력도 한몫을 했다 말했다.

뭐지? 이곳은? 

그리고 다시 돌아보게된 고달의 삶. 아니 고달 자신과 주변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불운의 시작들.

그것은 정말 그저 어쩔수 없이 그에게 닥친 하나의 현상이였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만약 나의 불운한 삶에 내가 알지못했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알아야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르고 살았더라면.  고달에게 “운명거래연구소”가 없었더라면. 


이 책은 마치 불가사의한 힘이 그의 불운을 사라지게 만든것 처럼보이나, 사회에 의해 억눌렸던 그의 용기를 다시 꺼내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알수 없는 일들에 인과 관계가 있었고,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 아님을 직면하게 하고 알게함으로써 과거에 붙잡힌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것이 결국 진실이였는지도.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던 이에게 주어진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행운은 노력하고 준비된 자만이 그 행운을 자신의 몫으로 만들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책 속 주인공을 보며 떠올랐다.


“이것은 선의를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의 헛된 희생을 방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스스로 정의가 된 힘 앞에, 선의를 가진 인간의 연대가 저항한다고 해도 최전방에는 선인들의 핏자국이 즐비하게 될 겁니다. 더 강한 책임감을 가졌다는 이유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야말로 부조리의 끝이 아니겠습니까?” p.188


사실이 교묘히도 아니고 대놓고 덮히는 부조리와 불공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운명거래연구소는 선의롭게 살아온 당신에게 공평한 세상을 제공하겠다 말하지만, 결국 책 속 주인공처럼 작지만 굴복하지 않는 이들이 모여 다수가 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선함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꿈같은 소리 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지 않나..

왜 이걸 자꾸 잊고 사는거지.

슬프네.


그래도 책은 재밌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라는 부제가 눈에 띈 책.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판형이 크고, 꽤나 두껍다.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딱 하나 였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련이라는 사회주의가 붕괴한 체제 이후가 궁금했었다. 20여년간 작가가 일천명이상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썼다는 이 책은 이 작가의 다른 책처럼 과거를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미래를 말하고도 있는듯 했다.


1,2부로 나뉘어 있고, 책은 전부 인터뷰로 이뤄져있다. 개인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대한 근현대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이들의 나레이션 속에 드러난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해 내게는 조금 어렵고 지루했지만, 그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 현재 처지에 대한 절망, 그래서 바라는 미래의 세상이 아이러니하게 과거로의 회귀를 꿈꿀 수 밖에 없는 현재의 부정, 그리고 그들 주변인들이 겪은 사건들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급작스럽게 찾아온 돈을 매개로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난하지만 안온한 일상을 살던 이들에게는 곧 생존투쟁이 되어버렸다. 
몇몇 정치인에 의해 체제가 붕괴되었고, 어떤 울타리도 없이 그 변화를 받아내야 했던 다수의 민중들에게 그것은 어쩌면 재앙이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옳고 그름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런 흐름속에서 살아남아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싣고 있었고, 어쩌면 소비에트 연맹, 사회주의 체제의 향수를 부르짖는 이들의 그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개혁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절박함과 자신들이 살았던 한 세계가 쓰레기장 취급을 받는 다는 사실이였을 뿐이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서로를 보듬고 살던 과거.
발전은 하고 있지만 돈이 있는 이만 사람 대접을 받는 현재.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독재였고, 사회주의 였더라도.


물론 개혁 상황에 적응을 마치고, 과거를 묻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급격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역시나 그들에게도 쉬운 궤적은 아니였다. 모든 것이 돈으로써 환산되었고, 그 모든 것에는 사람도 포함이였다. 끔찍했다. 부모가 자식을 돈에 팔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은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야 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내몰았을까.
책 속에서 충격적이였던 것은 체제를 바치고있던 강력한 통제력이 사라진 순간 서로 이웃이였던 이들이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진 참극이였다. 사실상 학살에 가까웠던 사건은  아르메이아인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학살에 가까운 폭력은 체제의 붕괴가 가져온 가난 보다 더 무서운 인간성의 파괴였다.

이들의 과거 향수를 읽어내려가며, 문득 한국의 1970년대의 독재를 그리워하고 추종하는 그 세대들의 말들이 오버랩 되었다. 어떤 체제인지가 중요했다기 보다, 많이 다른 결이긴 하지만, 현재에서 바라볼 때 옳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는 왜 되풀이 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 영광스러웠던 과걱 아니라 현재와 비교되는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강력한 차르를 기댜리는 어느 할아버지의 인터뷰처럼 말이다. 
“소비에트 정권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그곳이 돼지 우리여도 살 용의가 있다.” p.181

과거의 의로움은 갈곳을 잃고, 현재의 구걸만 남았다.과거에는 꿈꿀 수 있었던 미래가 현재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만 남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에겐 변화가 기회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변화를 기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다수의 일반 인민은 이제 서민이라 불리고. 가난에 시달리는 현재라니.

어쩌면 이 책에서 그리워하는 과거는 자유가 없었던 독재시절의 소련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었던 그 사실에 대한 절망의 발로였는지도. 그 울타리가 사라진 순간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것은 허무를 넘어선 증오와 야만성이였다.
그렇다면 2026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는 독재의 향수, 무력을 통한 전쟁 등은 인간이 존엄하게 살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라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오로지 효율과 이윤을 말하며 각자도생의 야생으로 사람들을 내몰았던 결과에 대한 대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좀 난해한 책이긴 했으나, 읽어볼 만했다.
과거에서 현재의 톺아보게한 책.

“우리는 부드러운 사회주의,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얻게 되었죠? 길거리에는 잔인한 자본주의만이 팽배합니다. 총싸움, 말다툼. 누가 가게 주인이고 누가 공장 주인이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뿐입니다.”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탄탱고 (블랙 에디션)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5년 노벨문학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제목도 표지도 강렬한 책. “사탄탱고” 궁금했다. 묵시록의 대가라 저자의 소개글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이 책은 꽤나 읽기 힘들었다. 뭐지 이 늪지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은. 읽는 내내 끈적하고, 축축한 공기가 나를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 후반 체제의 붕괴로 진흙탕이 되어버린 헝가리 작은 집단농장이다. 8개월치 고약스런 노동의 대가를 받아오기로 한 슈미트 일행.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떼어먹고 도망갈 생각이지만 슈미트부인은 후터키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후터키는 돌아온 슈미트가 돈을 떼어먹을 생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추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편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챌 모의를 하던 중 크라네르 부인이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메시아의 등장인 셈. 책속에서 이리미아시가 왜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그런 농장사람들을 등쳐먹기 위해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을 퍼뜨린것도 그였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퍼뜨린것도 그였다. 이 허술한 사기극에 조차 마을 전체가 들썩일만큼 그들의 삶은 바닥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2명의 소외된 이가 있다. 마을 의사와 소녀 에슈티케. 의사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소외된 이였고, 에슈티케는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아이다. 자신의 오빠조차 자신을 경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를 믿고 의지했으나, 그는 동생을 속이고, 그녀의 돈을 가져가버렸다. 그 분노와 배신은 어린 에슈티케로 하여금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포학함으로 분출되었지만, 결국 죄책감, 배신, 그리고 이 현실을 구원해 줄 이 없다는 절망은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에슈티케의 죽음, 더 이상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이용한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을 웅장한 연설로 호도한다. 또다른 낙원을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처럼. 그리로 가자고. 그런데 그리로 이끌기 위해서 자신은 가진돈이 없다고. 위대한 메시아 같은 그의 연설에 감동한 마을 주민들은 가진돈을 내어놓고 그를 따라 길을 떠난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은…그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이야기 속에 소외된 이들 중의 한명인 의사. 의사는 그들과 길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이 책의 대미를 완성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치 생각없이 자신의 세계에 갇힌 듯한 이 인물은 울릴수 없던 종소리의 실체를 확인한 인물이기도 하면서,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디스토피아가 나타내는 끝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이랄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지옥같은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메시아를 찾는 어리석음을 보일까.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무기력과 어리석음을 만들어 낸것은 무엇일까. 이 스토리속 인물들중에서 다음 세대의 인물은 소년과 소녀다. 소년은 이미 기성세대에 녹아들어버린 인물이면서 권력을 쥔 이를 가까이하려는 이미 현실속 찌든 다른 인물들과 다를바 없었고, 소녀는 그 현실 속에서 자살을 택했다. 소년이 에슈티케의 돈을 빼앗아간 그 오빠라는 점은 대물림되고 반복되는 현실이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다음은 없는 그 몰락속에서 만약 마을 사람들이 종소리의 실체를 확인했다면, 그들의 이후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디스토피아가 나타내는 가장 두려운 것은 무기력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아질 수 없다는 좌절은 순응을 만들어내고, 모든 희망과 소망, 심지어 욕망까지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세상 속에 이미 순응해버린 이들이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리미아시와 같은 인물을 메시아로 인정해버리는 과오를 저지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의사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마치 이 이야기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현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어쩌면 아주 먼 훗날 누군가 의사의 기록을 본다면, 이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실낱같은 방어선쯤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묵시록의 대가 맞네.
끝나지 않을 종말같은 세상의 반복이기도,
반대로 종말같은 세상속에서 남기는 기록이 다른 이에게는 희망이 될 바탕이 될지도 모르니.

어려웠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책.
나는 무엇에 눈가리고 봐야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가도 생각하게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기기묘묘 부동산 ㅣ 기기묘묘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인간이다보니 나는 내가 알지못하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렇게 눈에 띄인 이 책. 여름이 끝나고도 “기기묘묘”라는 말은 나의 호기심을 툭하고 건드렸다. 박혜연 작가님의 책은 처음인데,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염라도 어쩌지못하는 괴이라는 존재와 염라의 계약이다. 저승에 나타난 삿된 것. 그것은 저승을 집어삼킬 힘을 가졌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위해 염라는 그 삿된것과 계약을 맺었다. 그것이 명부에 손대지 않는다라는 대전제하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의 껍데기를 그 삿된 것이 취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16XX년대 오롯히 한명 남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양반에게 잃은 한 여인이 다리위에 섰다. 그리고 그 여인은 죽기전 한 존재와 게약을 맺었다. 그리고 ‘단야‘가 탄생했다.

연준은 늘 불운을 몰고다녔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홀로 살아남았던 날부터 불운은 모두 그에게 달려드는 듯했다. 그래서 오래전 삶을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질때 찾아오라는 호암사의 스님 법호를 찾아갔지만 스님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대신 호암사의 주지스님 헌승의 배려로 그 절에 하루 묵어가던 중 괴이한 일을 당하고, 단야를 만났다.

그렇게 단야의 제의로 함께 일하게 된 연준.

단야 곁에는 차귀가 있고, 기영이 있고, 또 금두꺼비가 있다.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고, 괴이로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준은 끊임없이 궁금했다. 대체 왜 나를 데려왔을까.

차귀는 연준을 고이 보아주지 않는다. 그로인해 단야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했고, 대체 왜?!


서서히 밝혀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기묘한 존재들에게서 다시 인간으로 향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지못하는 죽음 이후는 어떤 모습일까.

왜 괴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껍데기을 갖는 것으로 계약을 했을까.


“인간이란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있다 한들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붙들고 싶어 하니까요. 얼굴이 나온 사진이든 이름이 적힌 위패든, 혹은 추억이 담긴 물건 무엇이든.” p.210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인간의 껍데기를 가지고 살지만 결국 인간이 되어간다. 인간의 삶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한한 삶과 힘을 버리고 유한한 존재로써 살아가기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인간이 아니였음에도 인간다운 선택을 했고,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고서도 인간처럼 대했다.


단야가 연준을 택한 것은 무엇때문이였을까.

괴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유한한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 것일까.


나에게도 딱 맞는 그 방을 찾을 수 있도록 

“귀국부동산 빈방 있음” p.248

이 팻말이 내게도 보인다면, 나도 딱 맞는 내 방을 찾을 수 있을까.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6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박지리 작가님의 책은 읽어보진 않았으나 “다윈 영의 악의기원”이라는 책은 알고 있다. (읽어보고 싶으나 엄청난 두께에ㅠ)

그런 박지리 작가님을 기리는 문학상. 

“알갱이들”

내가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건 죽음에 대한 살아남은 이의 감정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정미를 잃은 현비는 전학을 갔고, 그곳에서 김라희에게 거친폭력을 당하는 소윤을 만난다. 그리고 정미의 언니 유미는 현비를 찾아온다. 현비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할머니가 가끔 방문하고, 고모부를 잃은 고모와 연을 맺고있다.

정미의 죽음을 두고 유미는 현비에게 그 이유를 묻지만 현비는 정말 알수가 없었다. 그런 현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유미와 계속해서 죽은 친구를 두었다며 참회하라는 할머니,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자신을 마치 불경한 무엇으로 대하는 친구들.

현비는 이런 태도들이 그저 이상할 뿐이다. 자신도 정미가 왜 죽어야했는지를 모르는데, 대체 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그 이유를 알아야함은 왜일까. 그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내가 납득되지 위함일까. 죽음이라는 살아있는 사람과는 절대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물리적 상태를 두고, 왜 죽음 그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유를 찾으려하는 것일까.

현비에게 찾아온 고모부는 죽고싶은 마음을 요구한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것 같은데.” p.110


그런 고모부에게 현비는 죽고싶은 마음은 떡볶이 그릇에 그리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단무지 그릇에 담아 전달한다. 죽고싶은 마음 옆에 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까. 아니면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너무 슬퍼서였을까.

죽은 고모부와 만난 현비는 정미를 만나면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한다. 그녀의 죽음에 단 하나라도 누가 되지 않기위해.

나는 고모부와 현비의 대화를 통해 오로지 죽음을 산자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려 했던 나를 발견하게했다. 죽은 자의 마음을 나는 모르니까.

하지만 가장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두고 유미와 현비, 그리고 고모의 시간은 결국 죽음의 이유도, 원망도 아닌 기억만 남았다. 좋은 기억. 그리고 서로가 그들을 기억하고있다고 공유하는 마음.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은 죽은 이에게 바치는 애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은이를 터부시하는 할머니는 책을 읽는 나에게도 알갱이들 속의 현비에게도 고모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알갱이가 모여 만드는 하나의 알맹이.

그것이 우리가 상실의 아픔을 겪고도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일지도.

그래도 누구가를 잃는 일은 아.. 너무 힘들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하여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한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