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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에 관한 검은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 알마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검열에 관한 책이다. 의미심장하다. 요즘 주변에서 워낙 검열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서는 주로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검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의 선진 사회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그건 내가 괜스레 오해하고 착각한 탓(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탓)이지만, 프랑스가 아니라 프랑스 할아버지라도 검열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런데 이때 검열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법 검열이 아니다. 사법 검열의 정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데, 그게 별로 심하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어디에서건 검열이 사그라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이 책이 전반적인 주제로 삼고 있는 내용처럼 이제 사법 검열이 자기 검열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에 비해 검열의 종류가 많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알다시피 자동적이고 사적인 검열은 국가나 사회가 감시하는 것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여기서 여러 저자가 밝히고 있는 다양한 검열 가운데 인터넷 검열과 경제적 검열은 매우 흔하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검열 가운데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회적으로 밝히려고 한다.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블로그 이웃 S 님에게 난데없이 집으로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다. 예고도 없이 검찰청으로부터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를 받았노라고 했다. 이른바 민간 사찰을 당한 것이다. 그는 이렇다 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를 하고 통지서만 달랑 보낸 것이다. 그쪽에서 이유라도 명백히 밝히고 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법적 조항을 근거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왜'가 없었다.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황당하다는 하소연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유조차 제시하지 않는 이와 같은 일방적 통보는 아니다. 그의 하소연은 자연스레 본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온라인상에서 그런 일을 목도할 때면 사람들은 그 알량한 자유마저 행사하길 꺼리게 된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 검열을 하는 것이다. 한창 정부에 욕을 퍼붓던 네티즌들이 잠잠해진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게 바로 사법 검열의 힘이다. 사법 검열은 자기 검열을 낳는다.

 

최근 한 영화 감독이 작품을 만들다가 제작사로부터 갑자기 촬영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정을 듣자 하니 각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과 같은지 따져 묻고 싶지만, 일단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근데 그 각본이라는 게 얼마나 웃긴지 헛웃음이 나온다. 요즘 대기업 영화사는 시나리오가 나오면 사람들을 모집해서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거친다.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요소는 미련 없이 삭제한다. 웃고 우는 포인트까지 잡아 놓고 감독에게 대본을 넘긴다. 그래서 최근엔 대박을 치는 영화가 없다. 중박만 있을 뿐이다. 관객도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는 영화를 보는 데 만족하는 듯하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만큼 실패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의 역량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로 영화를 만드는 건 세상의 모든 창작자를 모욕하는 행위다. 예술이 돈을 낳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예술을 살 수는 없는 법. 그분은 한국영화 8, 90년대 르네상스를 이끌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에 흥행 성적이 부진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렵게 기회를 잡았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갈수록 경제적 검열이 자기 검열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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