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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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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이 기승을 부려 너도나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이때 복지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어느 쪽이 좋은지 아리송해지곤 한다. 그리스발 위험으로 유럽 전체가 휘청한다는 뉴스는 그렇게 개방적 자유시장주의의 그림자를 슬쩍 가릴 수가 있다. 세계가 모두 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국가라고 마냥 사는 게 편하겠는가마는, 한 국가의 위기가 곧 다른 국가의 위기로 빠르게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토마스 게이건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고. 이 자조 섞인 목소리가 다시 태어나면 미국에서 살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노동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그가 사회 취약 계층의 입장에 서 있는 게 이 책의 주장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이는 저자 스스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님을 강조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의 말처럼 모든 나라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다. 다시 말해, 모든 국가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고 고백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럽의 가시적인 위험보다 미국의 비가시적인 위험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느낀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더니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 스스로 일어날 힘도 없는데 만날 미국만 따라하다가 가랑이 찢어지게 생겼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유머와 재치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면서 극적인 사건 하나 없이 오로지 식사를 하고 테니스를 치는 장면만 줄기차게 나열되는 것에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한 채 일도 안 하고 마냥 빈둥거리는 유럽인을 생각했다는 저자의 말이 재밌다. 아마 이야기를 소비하기에 바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사회의 특성이 묻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한 유쾌한 이야기에 여러 번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가 베를린에서 살 때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실감했던 내용들이 재밌는 일기처럼 적혀 있어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다. 재밌는 제목만큼 술술 읽히는 이 책은 청자를 배려한 화자의 말하기가 돋보인다. 거기서 앞서 언급한 그 아리송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정도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야근을 하는 동안 복지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저녁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한다. 카페에 들러 하루를 정리하며 차를 마신다. 클럽에 들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푼다. 돈 조금 더 벌면 뭐하나. 식사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는 어느 유럽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게 백번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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