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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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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시기에 놓여 있든 대중운동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종교운동이나 사회혁명 등을 거친 끝에 어느 정도 사회가 발전했더라도 대중운동이 서서히 마침표를 찍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 대중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라 할 수 있는 강력한 행동의 물결, 맹목적 신념과 판단, 일편단심에 가까운 충성심 따위의 것들은 대중의 마음에 더 빈번하게 일고 있다. 우리 눈앞에 있었던 일들만 생각해봐도 그러하다. 촛불집회는 어떠했는가. 촛불의 상징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단결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그것은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원인을 일일이 파악할 수도 없겠지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결론은 운동의 본질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모든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20세기에 있었던 여러 대중운동을 관통한 삶을 살았던 그는 집단 동일시에 관한 심리 연구서로 알려진 바로 이 <맹신자들>을 1951년에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머물지 아니하고 사색과 독학을 통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굉장히 단정적인 어투로 쓰인 점이 인상적이다. 서문에서 직접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대중운동이 활발했던 그 당시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하는 차원의 글을 쓴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광신자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 이 책은 종교적·이념적 근본주의자, 테러리스트, 자살폭탄자의 심리를 규명한 고전이 되었다. 이 책이 올해 발간되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가치가 유효하다는 것을 말한다. 

대중운동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의 성분을 낱낱이 분석한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중운동을 노동자로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이 벅찼을 저자가 이토록 차분하고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어 나갈 때 본문에서 말하는 '현재'가 1951년이라는 것이 서문에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시기를 딱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대전과 같은 특정 사건을 언급할 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대중운동과 맹신자에 대한 개념은 시대를 불문하고 비슷한 속성을 띤다. 더구나 그는 대중운동의 사례를 열거하여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일반적인 특성을 끌어내기 위해서 말의 군더더기를 없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서술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들이 불필요한 특수성을 없애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상가의 단상을 나열한 책들은 그것이 낱개로 유의미하기는 해도 단상과 단상이 한데 엮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단상들의 모음이 하나의 의미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가령, '가난한 사람'을 설명하는 5장에서 23, 24번의 단상은 각각 두 개의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었을 따름이지만 그 장의 맥락을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서 잘 어울린다. 물론 모든 단상이 그렇게 유기적인 모양새는 아니나 대체로 이야기가 흐르는 리듬이 깔끔한 편이다. 나는 이 시대의 고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책 속의 날카로운 문장 하나하나가 그것을 읽는 자의 현실에 가닿아 적잖은 사유를 끌어낼 것이라 확신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아마 밑줄을 그을 펜이 필요할 것이다. 

대중운동이 사무치도록 좌절한 이를 치유하는 것은 절대 진리를 설파하거나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곤경이나 학대로부터 구제해줘서가 아니라, 쓸모없는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 깊고 기쁨 충만한 전인적 공동체 안에 그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때문이다. / P.67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하고 판에 박힌 생존 방식의 한계가 명확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보다는 눈앞에 무한한 기회가 펼쳐져 있는 사람들이 애국심, 인종적 결속, 심지어는 혁명의 선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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