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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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불안, 공포, 그리고 삶의 의지마저도 내 속에서 모두 꺼져버렸다. 완전히 사그라져버렸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주입하려는 모든 종류의 종교적 믿음들을 던져버렸다. 그러자 독특하면서도 안락하고 기분 좋은 평온함이 찾아왔다. 죽음 이후에 그 어떤 희망도 갖지 않음, 이것이야말로 내 최대의 위안이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고, 절대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일생 동안 내가 살아온 이 세상에 단 한 순간도 익숙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또 다른 세상에서 적응해나갈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132쪽

다음 생에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두려울 지경이다.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구역질나는 세상과 인연이 없었다. 비루하고 역겨운 얼굴들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세상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미련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다니, 신은 허풍쟁이, 사기꾼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나 삶을 한 번 더 통과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지각과 감각이 훨씬 더 무디고 둔감해져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야만 힘들이지 않고 호흡할 수 있을 테니까.-133쪽

그러나 1951년 4월, 스위스에서 체류 비자 연장을 거부당한 뒤, 헤다야트는 파리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그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그는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았으며 죽기 직전, 쓰고 있던 원고를 자기 손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옮긴이의 말)-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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