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이 대산세계문학총서 75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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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두었던, 은 거짓말이다. 다른 만만한 술들을 먼저 꺼내 마시다보니 마지막, 다시 말해 오늘까지 손대지 않은 병으로 남아 있던 포도주를 땄다. 크리스마스라기에, 그리고 마침 아주 조금은, 나 외로운가? 아니, 외로워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 아닌 자책이 들어, 부제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든 책을 들었다가 조금 전에 집어던진 참이다. 제목에 속으면 안 된다. 형식에도, 인터넷 사전을 띄워놓고 단어를 확인해가며 읽게 하는 현란함에도, 단정함에도, 책 만듦새에도, 필자의 이름에도.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약간의 위무를 찾고 있었지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틀 전에 읽은 놀라운 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기에, 좀처럼 하지 않는, 그것은 내가 반추동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으른 습성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되새김질을 해서라도 자위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적잖은 걱정거리를 던져주는 일임을 모르지 않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 어떤 한 시선이 벌써부터 따갑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위무가 필요한 나는 그 책 바깥에서는 어떠한 어루만짐도 만날 수 없고 지금 나는 그런 손길이 무척 필요하므로 차라리 뚫어보고자 하는 그 시선을 견디어내고 말리라.

 

결코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 하는 쓰기, 그래서 어쩌면 성공적으로 이야기 아님, 또는 아무것도 아님이 되어버린 어떤 글로부터 어떻게 감동을 받으며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 있었는가가 의문인, 그래, 언젠가는 밝혀야 할 제목, 사뮈엘 베케트의 『몰로이』다. 아니, 질문이 틀렸다. ‘이야기 아님’에 어째서 감동받을 수 없을 거라고, 아름답다는 감탄도 불가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거지? 감동이 일관된 ‘이야기’에서 오는 거란 말인가? 알아 볼 일, 그러므로 리뷰에 소설의 줄거리가 들어갈 필요가 하등 없음주의자!인 나의 게으른 성격에 참으로 맞춤한 작품이건만, 간혹 일탈하고 싶어 하는 기질이 하필 지금 발현하여, 굳이 줄거리를 여기에 한 줄로 말하겠으니, 소설에서 이야기를 원하는 영혼들에게 이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터이다, 아무렴. 몰로이는 모친의 집을 찾아가는 중이고 모랑은 그런 몰로이를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다. 끝.


하지만 나도 인간이라,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전진은 이러한 일의 정황으로 영향을 받아, 내가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든지 간에, 그때까지 항상 그랬었듯이, 느리고 고통스러운 데서 이제는,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지의 끝도 없고, 십자가형의 희망도 없고, 내 진정으로 말하건대, 시몬도 없는, 진짜 갈보리의 고난으로 변했고, 난 빈번하게 멈춰야만 했다. 그렇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점점 더 자주 멈춰야 했고, 멈추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114쪽)


낯선 숲길을 한참이나 헤매는, 꿈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심각한 농담인지 저자의 입꼬리가 슬며시 은밀하게 올라가는 장난인지, 내뱉는 말은 통하지 않고 귀도 어두우며 다리까지 굳어 몹시도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발걸음, 급기야는 배를 땅에 대고 기어, 기어서 나아가는 악몽 같은 여정에 오로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줄기차게 혼자 말하는 문장들만이 명료하다. 꿈같은 공간, 종잡을 수 없는 시간,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얼거림. 배경 없는 인물 사진에서 인화된 인물만이 부담스럽게 두드러지며 관람자를 쳐다보듯, 사유들이 수정 같은 문장들로 성큼 와서 뜻밖의, 맙소사, 위로를 선사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야채 칼을 꺼내 손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통증이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난 먼저 소리를 질렀고, 그러고 나서 멈추고 칼을 닫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는데, 내심 다른 결말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거다. 본래로 돌아간다는 것은 나를 항상 슬프게 했지만, 삶이란 본래로 돌아감의 연속인 것 같고, 죽음 또한 일종의 본래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한 듯하다, 그렇다고 한들 내겐 놀랍지 않다. 바람이 그쳤다고 내가 말했던가? 가랑비가 내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바람에 관한 모든 생각을 제외시킨다. (90-91쪽)


몰로이가 길을 나선 게 맞나? 어디로 가던 중이었지? 모친의 침대에서 글을 쓰고 있노라고 시작한 이 불구의 노인네, 사기꾼, 거짓말쟁이, 간절하게 원하나 허망하게 도달하지 않는 오르가슴의 좌절 같은 여정을 써 놓고 툭,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리는 배신자. 그렇다면 모랑은? 아, 투덜이 모랑, 몰로이를 찾는 임무를 맡은 모랑은 몰로이를 찾아내어서(찾아낸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또 다른 배신자이며 시간이, 그런 게 있다면, 흐를수록 몰로이와 똑같아지는, ‘맹렬히 붕괴해가는’ 섬뜩한 거울 이미지다. 언어를 믿지 않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야기, ‘부재로의 귀환.’ 말을 하면 할수록 저만치 달아나는 핵심, 혹은 에두를 수밖에 없는, 결코 1:1 대응으로 나서주지 않는 글, 속절없는 무능력 또는 불가능성이 몰로이 혹은 모랑의 절뚝거리며 에두르는 헛걸음이 상징하는 것인가. 상징이라니, 베게트가 들으면 펄쩍 뛰실 일. 무의미, 부재를 추구하는 작품에서 숨겨진 의미 따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부조리’ 정도에서 머물러야지. 부조리극의 대명사, 땅 밑에서 곧 올라와 사방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작가에 의해 몇 년 뒤 ‘심심풀이’ 삼아 쓰일, 고도Godot의 움. 몰로이와 모랑, 행인 A와 B, 혹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라고 불러도 될 베케트 적 연속성.


왜냐하면 내 안엔 항상 여러 어릿광대 중 두 놈이 있는데, 한 놈은 자신이 있는 곳에 그대로 남기만을 주장하고, 다른 한 놈은 좀 더 멀리 가면 덜 나쁠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나는 무엇을 하든 간에, 이 분야에서는 항상 만족했다. 그리고 난 불쌍한 그 친구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이해시키려고 번갈아 양보했다. (71-72쪽)


자, 네모반듯하게, ‘까맣게 종이를 채웠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늘 배신하는 글과 말을 보란 듯이 꺼내, 오늘은 날이 좋구나, 볕에 척 널어 말리듯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발을 질질 끌며 하염없이 흔적만 남기는 에두름, 어디로 가기를 원했더라? 나에게? 그 사람에게? 맞다, 그랬었지, 내 마음 어루만지러. 저 잘생긴 아일랜드 작가가 언어의 장식성을 배제하기 위해 프랑스어로 쓴 글, 한국어 번역으로 읽는 내게까지 전해지는 아득한 감동, ‘반(反)전통’, ‘반(反)내러티브’라는 전위성과 시대성을 뛰어넘어, 아니 그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어슴푸레한 저녁에 위로하는 빛처럼, 마음을 열고 무장해제한 채 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그래, 문학의 힘, 2013년 12월 25일에 내가 포도주를 따기까지, 『몰로이』에 다가가기 위해 혹은 멀어지기 위해, 아니 차라리 『몰로이』를 구실로, 흔적을 남기기까지 조용히 기다려온 듬직한 예술. 아껴두었던, 은 거짓말이 아니다. 오늘을 위해 기꺼이 남겨 두었던 포도주를 땄었다. 내 다정한 친구, 내 갑옷.


Merci, 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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