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밀리언셀러 클럽 120
돈 윈슬로 지음, 전행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아메리카 대륙의 마약과 정치 지하세계를 건조하고 냉혹하게, 마치 저널리스트가 쓴 보고서처럼 긴 시간 치밀하게 그려낸 마력의 <개의 힘> 이후 거슬러 찾아 읽은 작가의 데뷔작. 같은 작가 안에 이런 따뜻함과 유머가 있을 줄이야. 물론 현 사건의 빠른 진행만을 기대하고 본다면 과거의 이야기나 거리에서 서성대는 문단이 영 ‘곁다리’ 서사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닐의 현재를 지탱해줄 뿐 아니라 문장이 좋아서 군더더기로 보일 부분, 나는 찾지 못했다.


여태 본 탐정 중 가장 젊고 매력적인 캐릭터, 닐. 아래 접힌 글은 이 책을 읽지 않을 분들만 펼쳐 보시라.


접힌 부분 펼치기 ▼

닐의 매력 포인트.

-운전을 못한다.

-운동, 싸움을 못한다.

-문학을 전공하는 청년으로 진심 책을 좋아한다.

-세제 박박 청소 잘한다. (전수 받은 기능)


세상에, 탐정 소설에서 이런 자동차 (추격?) 장면을 본 적 없다. 닐이 운전석에 있고 그 차에 쫓기는 콜린이다.


닐은 운전에 그다지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후진 솜씨는 저주받았다고 할 만했다. 콜린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차를 세우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브레이크에 올려놓으려던 발이 가속기로 가 버리면 차는 더 빨리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콜린은 영리하고 거친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만한 대응을 했다.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직선으로 달리지도 않았다. 갈지자로 달렸다.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사람이, 사타구니를 거칠게 두들겨 맞은 사람이, 그리고 차에 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사람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을 내며 달렸다. 하지만 그 쥐새끼만 한 차는 마치 그의 엉덩이에 자석이라도 붙어 있는 것처럼 죽자 사자 그의 뒤를 따라왔다. 닐은 콜린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반대로 생각하는 재주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탓에 자신의 의도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게끔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미친 듯이 도망치는 콜린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애쓸 때마다 어찌된 일인지 차는 정확히 콜린의 방향으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특히나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에 관한 부분. 약골을 면하게 해 주려고 권투를 하게 하는데 기대할 법한 ‘의외의 역전승’ 따위 절대 없다.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마 때리기 힘들걸.”

“그 친구 말이 맞을 거야.”

그레이엄도 거들었다. 닐이 주저하며 오른쪽 주먹을 날렸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전구를 때리려고 애쓰는 새끼 고양이의 앞발에서 느껴질 만한 ‘치명적 위험’을 담고 있는 주먹이었다.


스파링이 끝난 후 닐과 그레이엄은 버거조인트에 있었다. 닐의 턱은 약간 부어 있었고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재밌었어, 닐. 아주 즐겁게 봤는걸. 오후 시간 때우게 해 줘서 고맙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잖아요.”

“너도 꽤 잘 했어. 네 갈비뼈가 그 녀석 주먹을 멍들게 했을걸.”

“그것도 다 작전이었어요. 10분만 더 있었으면 다운시켰을 텐데.”


펼친 부분 접기 ▲


책을 좋아하는 닐이 고전 속의 캐릭터를 소환하여 누군가를 호명하는 방식도 무척 재미있어서, 거론되는 책들을 더불어 읽어보고 싶어진다. 여기서는 특히 찰스 디킨스와 토비아스 스몰렛 등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돈 윈슬로 정말 멋지다. 닐 캐리 시리즈가 또 번역되어 나오면 계속 읽어볼 게 틀림없지만, 만남이 길어지면 혹시 실망할 부분이 생길까 조금 두려워지기까지 할 정도로 좋다. 원 문장이 워낙 훌륭하리라 짐작되는 바이나 '옮긴이의 말'도 없고 약력도 없는 번역자의 능수능란한 해석도 큰 한 몫을 차지하지 싶다. 런던의 ‘산소가 없는 듯한’ 숨 막히는 더위가 요즘 같은 날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독서였다. 아, 행복해.



*접힌 부분이 펼쳐지지 않는 기현상이-_-. 그나마 서재에서는 작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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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새 2013-07-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기현상' 때문에 에르고숨님 서재에 와 봅니다~ 책소개 감사드려요~

에르고숨 2013-07-17 13:57   좋아요 0 | URL
흡- 낚이셨군요ㅎㅎ. 이 책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너무 기대하시게 될까봐 문득 걱정도 되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