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 위대한 작가들의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적인 글쓰기 패러독스 1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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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친 책이라니 과연 엉뚱하고도 매력적인 상상력의 바야르다. ‘읽지 않은 책’에 주눅 들지 않던 모습 그대로 작가들의 실패한 작품에 들이대는 칼날이 아주 거침없다. 더군다나 목차를 보면 프랑스 문학사에서 늘 키워드로 등장하는 큰 이름들, 그 권위로 말하자면 읽지 않은 책일지라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긍정부터 하게 될 성 싶은 거물들이라는 사실.


먼저 프랑스문학의 르네상스기에 프랑스어를 더욱 아름답게 빚었다는 뒤 벨레와 롱사르, 고전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르네유와 몰리에르, 계몽주의의 두 거물 볼테르와 루소,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의 샤토브리앙과 위고, 단편의 귀재 모파상, 20세기를 알리는 프루스트,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샤르, 『지붕위의 기병』으로 유명한 장 지오노,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누보로망 작가 뒤라스까지. 자, 이 정도면 가뿐하겠어~.


그런데!! 작품의 제목들을 보자;;


뒤 벨레 『올리브』(1549),

롱사르 『라 프랑시아드』(1572),

코르네유 『동방의 황제 헤라클리우스』(1646),

몰리에르 『동 가르시 드 나바르 혹은 질투심 많은 군주』(1661),

볼테르 『라 앙리아드』(1728),

루소 『루소가 장 자크를 심판하다』(1776),

샤토브리앙 『순교자들 혹은 기독교의 승리』(1809),

위고 『』(1857),

모파상 『죽음처럼 강한』(1889),

프루스트 『장 상퇴이』(1904),

샤르 『원조 방앗간』(1936),

지오노 『열광적 행복』(1957),

뒤라스 『사랑』(1971).


아흑. 비교적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대화』(책세상, 2012. 상품사진 넣지 않으련다. ‘망친 책’ 리뷰에 검색되어봐야...)와 1994년에 나왔으나 지금은 품절인 뒤라스의 『사랑』외에는 우리말로 나오지도 않은 듯(알라딘에서 대강 검색해본 결과가 그렇다는 얘기, 장담할 수는 없다). 이 둘을 빼고는 제목들이 어찌나 생소한지, 바야르가 혹시 조르주 페렉 식의 거창한 농담을 뒤에 숨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해 보았을 지경인데-_-; 이 책 분명히 소설은 아니다.


(이럴 줄 알았는지) 친절한 바야르 씨, ‘연구 작품’ 목록에 초간단 줄거리를 넣어놓으셨다. 덕분에 이 실패작들을 깎아내리고(<경악>), 프로이트를 소환해 생각해보고(<성찰>), 떼어내어 다른 곳에 붙이거나 등장인물을 바꾸고 작가의 현전 농도를 서로 교환해 보는 등의 온갖 하이브리드 텍스트(<개선>)의 짧은 사례들을 따라 읽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쭉쭉 읽혔다는 뜻은 아닌데, 중간 부분 프로이트할배(아, 나 이 사람 정말 싫어하나봐)가 등장할 때는 문장이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어쩜, 이 책 스스로가 ‘망친 책’이 되려나보다, 라고까지 생각했을 정도. 다행히 <개선> 장이 정말 재미가 있어서 망친 느낌 다 벌충하고도 남는다.


그 중에서 모파상의 실패작을 뒤라스로 개선하는 부분은 정말 최고로 웃기고 아름다워서 발췌해 놓으려 한다. 『죽음처럼 강한』과 『사랑』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작가의 현전 정도(거칠게 말하자면, 작가가 너무 드러나거나 개입하는 ‘환각의 글쓰기’ / 작가가 심하게 부재하는 ‘고립의 글쓰기’)를 꼽는데, 그 양 극단에 이 두 작품이 위치하기 때문에 둘을 절충한다는 얘기다. 모파상에 뒤라스 조금, 뒤라스에 모파상 조금. 이 발칙한 상상/개선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순서대로 원래 모파상과, 뒤라스를 가미한 모파상이다. (작품 속 여자의 이름이 ‘아니(아마도 Annie)다. 부정의 답 (도리도리)아니’로 읽힐까봐 Annie는 내가 삽입)


그녀는 그를 붙잡아 다른 거실, 사람들이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쪽 거실로 이끌었다. 그의 재킷 자락을 움켜쥐고는, 그에게 꼭 달라붙은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를 끌고 갔다. 그녀는 그를 원형의 작은 의자까지 끌고 가서, 억지로 그를 의자에 주저앉히고는 자신도 그의 곁에 앉았다.

“올리비에, 나의 친구, 나의 유일한 친구여, 제발 부탁이니, 그 앨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나는 알고 있어요.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 느끼고 있어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목숨을 걸 수도 있어요. 단지 당신의 입을 통해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도 여전히 그가 발버둥을 치자, 그녀는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 친구여, 친구여, 나의 유일한 친구여, 정말 그녀를 사랑하세요?”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면서 외쳤다.

“천만에, 천만에! 맹세컨대 절대 아니오!”

그녀는 손을 그의 입 쪽으로 내밀어 그의 입을 봉하듯 막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오! 거짓말 말아요, 너무 괴로워요!”

이어 그녀는 그의 두 무릎 위에 머리를 떨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에게 보이는 거라곤 그녀의 목덜미와 흰 머리카락들이 많이 섞여 있는 금발 머리 타래뿐이었다. 어떤 거대한 연민이, 어떤 거대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그는 그녀의 무거운 머리 타래를 한 움큼 가득 쥐고 머리를 난폭하게 다시 세워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격정적인 두 눈을 자기 쪽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눈물이 가득한 두 눈 위에,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입술을 던졌다.

“아니Annie! 아니! 나의 소중한, 나의 소중한 아니!”


그녀는 그를 붙잡아 다른 거실로, 사람들이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쪽 거실로 이끈다. 그의 재킷 자락을 잡아끌고 간다. 그를 원형의 작은 의자까지 끌고 간 뒤, 억지로 그를 의자에 주저앉히고는, 자신도 그의 곁에 앉는다.

그의 곁에 앉아 그녀가 말한다.

“이봐요, 올리비에.”

그녀의 목소리.

“오!”

“천만에.”

그녀가 손을 그의 입 쪽으로 뻗는다. 머리를 떨군다. 그 남자의 무릎 위에서, 그녀가 흐느낀다.

그녀가 흐느낀다.

그의 곁에 앉아 있다.

그녀의 목덜미와, 어떤 거대한 고통.

그 머리타래를, 그가 다시 들어올린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아니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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