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신는 법 몰라서 사 보는 사람 없겠지. 귀엽기로 작정한 책에는 헤죽, 무장해제하는 수밖에 없다. 색색깔 양말 그림들이 어찌나 예쁜지, 기분도 예뻐진 것 같다(응?). <연필 깎기의 정석> 류 있잖은가, 혼자 심각하게 진지할 덕후의 쿵짝에 기꺼이 동참해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필요하겠다. 전문적인 엉뚱함, 다른 말로 덕력이 <연필 정석>에까지는 못 미친다만. 흑백 내지였던 <연필 정석>에서는 현저히 부족했던 색깔 보는 재미가 <양말 법>에는 있다. 양말의 초짧은 역사, 양말 해부학, 양말 신는 법(하하), 양말의 종류 및 소재, 관리, 수선, 개는 법, 신는 대신 양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등이 짤막짤막하게 적혔다. 꽤 괜찮은 양말 한 켤레 가격으로 값을 내린 <양말 신는 법>이다. 읽는다기보다는 보는 책 되겠다.


이대로 끝맺으면 아쉬우니 제목 취지에 맞게 양말 신는 법을 제대로 알려드리겠다. 제1단계. ‘손에 양말 한 짝을 꼭 쥔다. 면밀하게 살펴본다. 당신은 이 양말을 신을 것이다. 그리고 양말을 신은 당신은 아주 멋져 보일 것이다.’(20) 제2단계가 정말 중요하다. 밑줄 쳤다. 결정적인 내용 유출 주의경보를 울리는 바,


삐삐삐3

2.

1.

두둥.



발을 준비한다. (20)




미안, 오발령. 뽀송뽀송하고 포근포근하고 만만하고 흔하고. 불가피하지 않은 한 매일 갈아 신으며 비교적 민주적인 의류 아이템. 새 양말 혹은 빤 양말처럼 기분 좋은 게 있을까. 있지. 많지. 양말 그림도 그렇지. 눈요기 잘 했다. 하지만 뭐랄까, 덕력이 부족해, 덕력이... 할 때는 뭐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가 있다. 덕력과 글력(?) 보장하는 시리즈로 알고 있다. 양말을 빌미로 구달 선생을 만났다. 저자도 밝히는 바, ‘아무래도 이 책은 양말 이야기를 빙자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털어놓는 대나무 숲이 될 것 같다’(12)고 한다. 아무튼 시리즈 독자가 기대하는 바도 그러하다. 프리랜서 글쟁이로서의 힘든 일상과 양말 사랑하는 얘기를 들었다. 부디 글 많이 팔아 예쁜 양말 쇼핑하는 데 지장이 없길 바란다. 저자의 양말 컬렉션이 초반에 88켤레이다가 후반부에 110켤레(수드라 양말 82+브라만 양말 28)까지 늘어난 걸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후훗.


살까 말까 망설이고, 사고 나서 후회하거나 사지 않아서 후회, 사고 나서 만족하거나 사지 않아서 만족하는 등의 장면이 익숙하면서, 그게 나는 왜 좋지. 책 또 샀다고 징징대는 글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양말 구매 고민 글도 재미있어. 곰곰 생각해보니 수집하는 물건이 양말이면 퍽 괜찮을 것 같다. 부피 크지 않고, 매우 다양하고, 비교적 값싸고, 신을 수 있고, 나눠 줄 수 있고, 더구나 글쟁이 구달 선생은 이런 발랄한 양말 책도 써냈고. 뭐니 뭐니 해도 양말은 책보다 훨씬… 아니지. 나는 책 수집하고 있지 않아!(다짐체) 집에 읽을 책이 많을 뿐. 양말로 돌아오자면,


(더럽지 않습니다. 갓 빨아 냄새 좋은 겁니다)


양말 서랍에 회색 양말만 줄줄이 꽂혀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려다가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매일 회색 양말만 신었다가는 글마저 칙칙한 회색 톤으로 써버릴 게 분명하다. (31)


미안하다, 나다. 구달 선생이 보면 진저리를 칠 내 양말 서랍이로구나. 회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가끔 알록달록한 것은, 어디 보자… 알라딘 양말이다. 옛날에는 내 서랍도 이렇지 않았다. 음(할많하않체). 꾸준히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기호품이 (책을 제외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 고민을 덜어주기도 한다. (책 선물은 무례하기가 쉽다) 일본 여행에서 저자 친구가 눈치 빠르게 사서 건네주고, 저자 모친이 딸을 위해서는 당연히 양말 코너를 둘러보게 되고.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참 편한 사람이라고, 문준이 말한 적 있다. 한 손엔 커피콩, 다른 손엔 포도주를 든 문준이라고, 있다. 양손에 각각 각성제와 진정제를 가진 방문자 tmi. 아무튼, 양말의 구달 선생이 성토하는 회색 양말 소유자가 당신들의 양말을, 취향과 지향과 기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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