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 지다웨이 | 문희정 옮김 | 글항아리


황폐화된 육지를 떠나 인류는 바다 속으로 이주했다. 21세기 끝자락이 배경이다. 열기와 자외선이 이글거리는 육지에는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활약하고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산다. 피부 관리사 모모가 주인공이다. 어쩐지 어두운 과거가 있는 듯, 30살인 2100년 현재 엄마와는 20년째 만나지도 않고 홀로 살며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앤디를 추억한다. 앤디의 행방부터 암묵적 스포방지일 텐데, 놀라운 건 이후에 더 큰 이야기가 기다린다는 점이다. 너무 나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편 들면서 예의바른 독자로서 입꾹, 다만 막막하고 슬펐다고 까지만 써둔다.


1994년에 쓰인 점 감안하면 퍽 파격적인 퀴어 SF인 듯하다. 작가 지향 혹은 취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점도 재미 요소 되겠다. 이토 준지의 무시무시한 캐릭터 도미에라는 이름, 파올로 파솔리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그대로 차용한 점 등. 또한 서문에서 밝힌 바, 지다웨이 선생은 집필 기간 니노 로타, 우테 렘퍼, 반젤리스 음악을 들었다는데, 며칠 전 반젤리스 선생의 타계 소식도 있어서 공교롭다. 나 또한 좋아했던 작곡가이고 무엇보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빈 선생이 건반을 맡았던 장면을 가장 잘 기억한다. 가까이 또 멀리 알던 사람들의 부고를 접하는 게 나이 드는 일의 주 업무인가 싶기도 하다. RIP.


“아저씨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정원사를 만나면, 그게 바로 나를 만난 것과 같아. 내 몸 전부가 그 사람 안에 있을 테니까.” (125)


마라코트 심해 | 아서 코난 도일 | 이수현 옮김 | 행복한책읽기


‘수심 540미터의 심해를 탐사하던 마라코트 박사 일행은 바다가재를 닮은 거대한 생물 마락스의 공격을 받고 케이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8113미터의 해저에 낙하한 일행은 8000년 전 화산작용으로 해저로 침몰한 후에도 살아남았던 아틀란티스의 후예들과 조우하는데...’(알라딘 책 소개) 도일 경의 SF는 곧잘 판타지로 흐른다. 심해 탐사에만 머물러도 재미 한 가득일 텐데, 마라코트 박사 일행은 해저의 거대 악을 해결하고 귀환하신다. 명확한 선악 구도, 숨겨왔던 권능, 예쁜 여인 구해 독신 면하기, 이 유치함 뭘까. 이제 도일 경 작품은 이별해도 될 나이? 옳다, 지천명.ㅜㅜ 적응이 안 돼.


“불운한 존재여. 너를 그 자리에서 날려 버릴 힘과 의지를 지닌 것은 내 쪽이야. 네놈은 너무 오랫동안 그 존재로 세상을 저주해 왔다. 네놈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것을 감염시키는 질병이었어. 네가 사라지면 인류의 심장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고, 태양은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148)


물고기 인간 |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강을 배경으로 갓난아기 때 상어 아가미 이식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이흐티안드르(그리스어로 물고기 인간)라고 하는 젊은이의 삶과 아름다운 처녀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러시아 SF소설의 대표작’(알라딘 책 소개) 웰스의 모로 박사(1896년) 후예라 할 살바토르 박사의 생체실험실이다. 1928년 작. 물속과 실험실 장면뿐 아니라 법정드라마까지 펼쳐져 흥미롭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는 연구를 계속하고 누군가는 새 삶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정신줄 놓고 거리를 떠돈다. 등장인물들 각각의 마지막 모습을 언급해주는 방식이 훈훈하다.


작가 알렉산드르 벨랴예프(1884~1942)와 과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1917~1985) 간 친족관계는 알지 못한다. 후자는 ‘은여우 길들이기’로 유명한 소련의 유전학자다. 둘 사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면 더 흥미진진했겠다. 왜? “동물의 몸,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신체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손댈 필요가 있다고 저는 단언합니다.”(270) 같은 주제를 과학자-과학소설가 사이, 그것도 가족 모임 식사 자리에서 토론한다면 재미있을 듯 하잖아. 아무튼 바다 카테고리이므로 발췌는 이렇게.


“인간이 물속에서 살 수 있다면, 해양개발과 심해 해저의 개척은 아주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 되면 바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바다의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 희생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을 우리가 애도하는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278)


잭과 천재들 2 | 빌 나이ㆍ그레고리 몬 | 남길영 옮김 | 와이즈만북스


1권 남극에 이어 2권은 하와이 니호아 섬 깊은 바다다. 해수 온도차를 이용한 에너지 발전 얘기가 나온다. 아탈리 선생 <바다의 시간>에서도 본 바 있는 바다의 숱한 잠재성 중 하나 되겠다. 발전소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마침 시설 일부가 훼손되는 사건도 일어난 참이라 우리의 잭 무리가 (당연히)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한다. (스포 아니지?)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는 모험에 이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일까지 겪게 된다. 손에 땀을 쥐진 않고, (맥주를 쥐고) 마음 푹 놓고 보는 우리 귀염이들 이야기. 섭섭하지 않게 또 만날 기회가 있어서, 3권은 정글이다.


그의 말은 옳았다. 별들은 아름다웠다. 행크 박사는 우리들이 수시로 아무 때나 “끝내준다, 대박” 같은 수식어를 쓰는 습관을 고쳐 주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 말을 사용할 때면, 움찔움찔하며 경고했다. 그렇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어쨌든, 너무, 기절할 만큼 멋졌다. 사방에서 빛을 내고 있는 별들은 마치 수십억 개의 우주선들이 지구를 향해 돌며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좌우로 움직이며 별을 쳐다봤다. 별빛이 가득한 까만 밤하늘은 그야말로 멋지고, 강렬했고, 무서웠고, 그리고 이상하게 추웠다. 행크 박사님은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의 수가 이 우주에는 너무 터무니없이 적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드넓은 밤하늘에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고등 생명체이기는커녕, 잘라 낸 발톱보다 작고 한없이 하찮은 존재로 느껴졌다. (300-301)




-이글루스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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