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0-1953 환상문학전집 29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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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유선방송으로 타임머신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어두운 밤하늘에 별무리와 함께 깨어진 달이 흩어져 있던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도 달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두세 편정도 들어 있었다.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에 쓴 작품이라 달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던 시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파수병'은 달에서 발견한 피라미드에서 달이 아닌 외계로부터 온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피라미드는 지구라는 아직 문명의 초기에 있는 행성을 지켜보기 위한 파수병이라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단편으로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속에 지구에 문명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부터 우리를 지켜보는 파수병이 있다는 상상이 재미있다. '달에서 보낸 휴일'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한 이야기지 않을까 싶고. 특별한 사건이나 소설적 장치가 없는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우리의 현실에서 너무 멀어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지구의 빛'은 인류가 태양계를 완전히 개척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구와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개척하고 있는 우주연합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마치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 식민지를 개척한 후 그 식민지로부터 독립의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듯이... 지구와 태양계 다른 행성들을 잇는 관문과도 같은 달에는 천문관측기지가 있고 지구의 정부가 몰래 캐내고 있는 우라늄 광산이 있다. 우주 연합은 태양계 바깥쪽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라늄이 필요한 상황이고 지구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마음이 없다. 우주 연합의 힘이 그들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침내 달에는 비밀 광산과 함께 비밀 무기가 갖추어지기 시작하고...우주 연합의 순양함 세 대가 달의 상공에 나타난다.  

  지구에서 보낸 과학자를 비밀기지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마친 천문기지의 천문학자 제이미슨과 휠러는 달에서 벌어지는 지구와 우주 연합과의 전쟁을 목격한다. 그동안 달에서 비밀스럽게 만들어온 우라늄 광선을 이용한 무기로  순양함 두 대가 격추되고 다행히 전쟁은 지구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두 천문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지구의 승리를 도운 결과가 되었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달 저편의 지구는 구름 속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고, 태양계 저 바깥쪽에는 똑같이 어머니 지구에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룩한 우주 연합이 있다. 이번 전쟁은 지구의 승리로 끝났지만 곧 그들의 힘이 지구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의 작품이라고 해서 달에 관한 이야기가 허무맹f랑하고 시시한 이야기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며, 아폴로호가 달에 흔적을 남겼다고 해서 달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달의 이면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달에 관한 상상은 계속 되어도 좋다.

  '과학의 패배'는 짧지만 의미심장하고 역설인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 핵무기등을 개발한다는 정보를 들은 미국이 아인슈타인등 유명 과학자들을 동원해서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핵무기를 개발했던 시대 상황을 담고 있다.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이 독일이 아닌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려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어리석음 때문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한 과학자의 진술서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로, 기술이 미국보다 한 발 앞서 있었던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기하급수장(유한한 공간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무기, 축지법의 반대 개념인가)이라는 최첨단 무기를 가진 쪽이 아직 구식무기로 대항하는 적에게 패한다. 기하급수장이라는 무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 엄청난 위력이 일어날 생기는 에너지가 우주선을 미세하게 변화시켜 기하급수장을 일으키는 파장기를 껐을 때는 미세한 변화이긴 하지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파장기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오류가 축적되게 되고 우주선의 오작동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첨단의 기술이 오히려 자신들을 옭아매는 덫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기술을 맹신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중편이 몇 편 실려 있는데 '바다에 이르는 길'이 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한때 인간의 삶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거대 도시가 버려지고 천 년이란 긴 시간 동안, 누군가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향하고 누군가는 그 옛날의 습성을 좇아 숲으로 들판으로 흩어져 살아가는 시대의 이야기다. 브렌트, 존, 이라드네는 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고 두 남자는 이라드네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브렌트는 이라드네의 마음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중 브렌트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건설하고 버려진 도시, 샤스타를 알게 되고 그곳을 향해 혼자 길을 떠난다. 이라드네에게 선물로 줄 뭔가를 발견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해변에 폐허로 남은 도시에 도착한다. 뭔가 쓸쓸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던 그는 극장 같기도 한 원형지붕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브렌트는 거대한 크기의 초상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초상화는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이 된 헬레나의 초상이었다. 브렌트는 그 초상화를 따라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가 그린 그림은 이라드네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 전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아갔던 방문객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험을 끝내고 이라드네와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 브렌트에게 지구를 벗어나 또 다른 여행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고대에는 바다가 수많은 전설, 영감, 모험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지구 밖의 다른 세계가 그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브렌트는 샤스타를 등지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이라드네가 있는, 자신이 원래 떠나왔던 곳으로 혹은 막 우주선이 날아간 저 하늘로... 

  거대하고 신비로운 시간의 흐름 앞에서 먹먹해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기막힌 반전은 없었지만 브렌트의 여행을 따라가며 시간의 의미, 문명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한 천년 쯤 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우거진 수풀 속의 폐허로 남게 될 날이 올까. 몇 천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했던 도시가 지금 우리에게 역사 속의 유물이나 유적으로 남았듯이.        

  SF소설은 결국에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무한한 시간에 관한 상상이 이야기를 특히 SF적인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것을 아닐까. 현재의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질 때, 나의 시간이 하찮다고 느껴질 때 SF소설을 읽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한하고 압도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란 존재가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가끔 그걸 잊고 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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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환상문학전집 28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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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소설만큼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도 없다. 특히 SF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편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 SF를 읽다보면 상상의 폭이 무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을 여기저기서 몇 번 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처음이다. 3대 과학소설가라는 거장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름값(?)하는 작품들이 잔뜩 실려 있기를 바라면서... 이번 여름은 이 책들로 대충 떼울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실린 작품들은 과학용어들이나 기계적인 설명이 많고 과학기술을 소설로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어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적인 완성도가 있으면서도 SF적인 장치가 돋보이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초기 작품들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한편 읽어갈수록 역시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워낙에 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어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들 중에서는 '구조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그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다. 40억년 쯤 뒤 태양이 수명을 다해 태양계를 집어삼킬 때 지구에 인간이 존재할까. 만약 그 때까지도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생명체(인간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과는 다른 개념의 생명체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등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풀어놓은 책이었다.  

  '구조대'는 바로 그 질문을 소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은하계의 다른 생명체가 곧 신성이 될 태양에 노출되어 있는 지구에 아직도 남아 있지모를 지구생명체를  구출하기 위해 온다. 폭발은 7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가 아무리 지구 곳곳을 뒤져도 살아있는 지구생명체는 발견하지 못하고 불타는 태양계를 뒤로 하고 지구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 공간에서 지구로부터 탈출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함선의 대열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생명체는 스스로 지구를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인간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표류'는 유려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과거의 인간도 먼 미래의 인류도 파충류도 다른 기이한 생물체도 아닌 공기보다 엷은 이온 구름이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독자는 이 이온 구름의 의식을 따라 흑점이 폭발한 태양으로부터 지구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우아한 비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둠의 장벽'도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어슐러 르 귄의 환상문학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는데 과학용어나 기술보다는 보다 은유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다. 호기심이 강한 셔베인이 사는 우주에는 하나의 행성만이 있고 그 행성에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의 태양, 트릴론이 있다. 이 행성에는 밤이 없었다. 트릴론은 언제나 저 멀리 북쪽 지평선 가까이 떠 있었고, 이 행성은 우리의 달처럼 같은 면만을 보이며 공전한다. 셔베인이 사는 곳은 북쪽의 타는 열기와 남쪽의 차갑고 어두운 지대 사이. 동서로 이어진 기다란 띠 같은 곳에서만 사람들은 거주할 수 있고 이 곳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딱  한번 1년간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 여행을 한다. 셔베인은 그 여행에서 아버지로부터 어둠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그것을 목격한다. 트릴론의 빛이 거의 다가가지 않는 남쪽 지평선 저 끝에 검은띠, 바로 어둠의 장벽이 땅과 하늘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후 셔베인에게는 금단의 영역, 어둠의 장벽 저쪽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게 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셔베인은 어둠의 장벽을 오를 수 있는 계단을 쌓는 엄청난 공사를 착수하게 되고... 드디어 어둠의 장벽을 오르게 된다. 암흑과도 같은 곳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뒤로는 그가 사는 세상이 점점 멀어져가고... 하나밖에 없는 태양 트릴론은 점점 작아지다 사라진다. 그리고 어둠의 장벽 너머 그가 걸어가는 있는 또다른 세상의 하늘 위로 트릴론과 똑같은 태양이 떠오른다. 한걸음 한걸음 모험은 계속되고... 결국 그는 자신이 출발했던 그 장벽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를 소설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놓은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긴장 탈출'도 매우 재미있게 읽은 단편에 속한다. 꼭 SF의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긴장감있게 읽힐 수 있는 소재였다. 금성에서 쏘아 올린 위성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우주선 스타퀸호, 우주선에는 두 사람만 타고 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산소가 거의 새어버렸다. 금성까지 도달하는 데는 아직 30일이 남았고, 산소는 2명이 20일 동안 쓸 수 있는 산소만 남아 있다. 주위로부터는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일 후에는 두 사람 모두 죽게 된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금성에 도달하려면 10일 안에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그 말을 꺼내진 못하고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에는 나 아닌 상대가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고... 30일 후 금성의 위성에 우주선이 도달하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살아 남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쩌면 끔찍할지도 모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있는 단편이었다. 다만 '긴장 탈출'이라는 제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좀더 다른 번역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막 첫째권을 끝냈다. 아직 세권이나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아서 클라크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말해보자면, 그의 SF는 정말로 가까운 미래나 먼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과학적 용어나 좀 딱딱해보이는 설명들 때문에 소설적 재미는 조금 덜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주적 상상력에 못지 않는 과학적 지식들을 엿보고 있노라면 픽션을 넘어선 신뢰감을 갖게 한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체험하지 못할 미래를 책으로나마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인간의 생명이 유한한 것이 때론 안타깝기도 하고. 단지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비록 인간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혹은 신이라는 존재가 이 장구한 우주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신이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아니면 이 무한한 우주를 지배하는 건 결국에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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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장욱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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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단편을 읽는다. 왠지 장편보다는 단편의 흡입력에 끌리게 되는 건 뭐든지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아주 가끔 단편을 읽는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혹은 요즘 작가들은 어떤 소설을 쓰나, 뭔가 시선을 확 끄는 작품들이 있나하고. 누군가 한 사람을 정해두고 그 작가만을 추종하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독자가 되지 못하다 보니 여기저기 기웃기웃 이런 소설 저런 소설들을 읽게 된다. 다행히 집 가까이 도서관이 있어서 주로 책을 빌려 읽다가 간혹 이건 꼭 읽어봐야지 아니, 꼭 가지고 있어야지 하는 책을 주로 사게 된다.   

  얼마 전에 새로 일하면서 알게 된 딱 서른 살 먹은 젊은 여성이, 나한테는 너무나 젊어보이기만 하는 그 여성이 자기는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가려고 책을 산다고 한다. 우리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이 가전제품처럼  혼수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아니 신선했다. 책을 정말 좋아해서 책을 가져가겠다는 것인지, 막 장만한 새 가전제품과 가구들 사이로 그래도 사람의 손때가 묻는 정감어린 것들을 두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어쩌면 이쪽이 더 가까울 것 같긴 하지만 미래의 남편에게 예쁘게 화장을 하듯 자신의 내면을 그 책들로 좀 치장해서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닌지. 어느 쪽이든 책을 혼수품(?)으로 가득가득 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괜찮아 보였다.  

  한때는 나도 책을 사면서 그런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물론 결혼할 때 가지고 간다는 생각은 떠오른 적도 없지만 책장에 책을 진열 아니 과시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경제적 여건상 절대 그럴 수는 없었지만... 자꾸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 여성과의 대화 이후 내가 이렇게 모든 것에 시들한 건 책과 많이 멀어진 탓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요즘은 책장에 과시하기 예쁜 책들로 넘쳐나는 것 같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꼭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독자들의 눈을 유혹하는 예쁜 디자인들로 책표지들은 화려하다 못해 정신없다. 어쩐지 강렬한 색깔로 도배된 거리의 간판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꾸만 어딘가로 빠지려하는 이야기를 돌려세울 때가 된 것 같다. 결론은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 거다. 남의 시선 받으려 죽으라 노력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끄는 독특함이 있다. 소박한 꽃무늬로 프린트 된 1이라는 톤다운된 초록빛 숫자가 편안하다. 꽉 채우지 않아서 숨통이 트이는, 어찌보면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듯도 하고... 

  드디어, 책장을 넘겨 보니 대체로 내게는 생소한 작가였다. 그동안 너무 책과 특히 소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나 싶다. 한편으론 신인들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고.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읽다가 두 번 쯤 졸았던 작품도 있었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읽은 작품들도 있었다. 우선 수상작인 '곡란'은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반면 문체나 느낌은 신인이라기보다는 중견에 더 가깝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소도시의 모텔 202호에는 지금도 누군가 유령처럼 흘러들고 있을 것 같다.  

  무딘 독자의 시선을 가장 끌었던 작품은 '괴물을 위한 변명'이었다. 작품 스타일이 보르헤스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 새삼 보르헤스의 단편들에 끌려서 반복해서 읽어보게 되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괴물을 위한 변명'이 가장 흥미롭게 읽혔다. 보르헤스의 단편을 읽다보면 사고의 폭이랄까 상상력이 엄청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아가서 그의 작품에 인용된 작품들이나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작품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고, 프랑켄슈타인의 작가가 누구라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 알았고, 그것도 여성작가라는 것을, 원작을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보니 당연히 읽었을 거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읽은 탓에 읽었다는 기억마저 사라진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하게 한 작품이었고 소설이란 창작이란 수많은 과거의 패러디일 따름이라는 말에 또한번 긍정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가나'도 흡인력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체, 누군가에게는 그저 구역질나는 사체일 따름이지만 그에게도 이야기가 있었다. 이 세상 누구든, 그게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체일지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만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흔히 쓰는 말이라서 그 뜻이 희석되어 버린 말이긴 하지만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희미한 빛'은 제목처럼 뚜렷하게 인상적인 부분이 남지 않는 작품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랄까 그런 것들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들이 책을 덮는 순간 희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다. 내가 답답해마지 않는 요즘 작가들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문제의식이나 내용보다는 스타일만 살아있는 소설이랄까. '커트'는 잔혹동화 같은 소설이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다. 우리의 삶이 특히 약자의 삶이 이토록 살벌하고 서늘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는 성공한 작품이었다.  

  '게발 선인장'은 어쩌면 작가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당돌한 발언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목적인 인간이 결국에는 신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무언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맹목을 실감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단이라 주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종교에 한 때 빠졌던 내 주변의 사람 몇몇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고. 

  '옹기전'을 처음 읽자마자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아팠는지 마을의 누군가 아팠는지 어렸을 때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는데 굿 비슷한 것을 하고 단지를 땅에 묻었단다. 그리고 그 단지가 장마철에 땅밖으로 드러나 깨져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조금은 으스스했던 기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의 우리들은 작품 속의 어른들처럼 과거의 항아리가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정한 것들은, 특히 살기 좋은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묻힌 그대로 두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수많은 항아리 위에, 수많은 무덤 위에 세워진 것들이라 하더라도. 

  '나의 메인스타디움' 속에는 나의 과거도 함께 녹아 있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나에게 아시안 게임의 개막식은 늘 태풍과 함께 한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개막식을 보다 비가 새는 지붕을 덮으려 빗속을 뚫고 옥상으로 올라갔던 일. 작품 속 여자아이는 개막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어린아이답지 않는 과장돼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을 하고 있었던 반면 우리는 여름방학에도 하루종일 계속되는 보충 수업 중에 하루 쉴 수 있는 날이었다. 그날 태풍 때문에 비가 샌 지붕이 아니었더라면 기억 속에 사라진 수많은 날들 중의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건 그들만의 잔치였으므로. 그들만의 잔치에 끼이고자 그토록 안간힘을 쓰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서 공감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여자아이의 모습과 대비시켜려는 의도로 보이긴 하지만. 어딘지 불편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을까. 

  '실수하는 인간'은 다분히 사이코패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섬뜩한 소재임에도 너무나 평범하게 그려놓아서 작가의 의도대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실패한 소재인지 좀 헷갈린다. 주인공 역시 범죄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연쇄살인범이 된다. 모든 악의 원조는 아버지, 가정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이야기에서 어딘가에서 어떤 아이는 사이코패스로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눈을 감고 기다리렴'은 특별한 병증을 안고 사는 여자의 이야기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죽은 쌍둥이의 영혼을 보고 자궁 속의 삶을 기억하는 여자가 있다. 자궁 속에서 스스로 만든 이마의 상처가 현재의 모든 삶을 지배한다. 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랄까 욕심이랄까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독서의 취향'을 나의 취향대로 읽어보면 나는 3월의 눈내리는 어느날(3월의 눈은 마치 환각이었던 것처럼 금방 녹아버린다.) 우연히 들어간 빈집에서 일기인지 소설인지 모를 책을 하나 발견했고 안나라는 인물을 상상속에서 만들어 간다. 마지막에 안나가 없는 빈집에서 내가  발견한 책이 안나가 실존인물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 책은 안나라는 여자가 그 책으로부터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걸 증명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나의 취향대로 읽은 감상이었다. '독서의 취향'의 작가가 던진 메시지처럼 독서든 세상 읽기든 사람은 자신의 취향대로 읽고 버리고 할 뿐이니까. 나의 독서 취향은 단편에 어울리고 어떤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느껴지거나 새롭다는 인상을 주는 쪽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비록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걸 진작에 알면서도... 작가들이 이 새로움을 찾아내느라 얼마나 생각을 쥐어짤까 알면서...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독자는 언제나 새로운 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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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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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일 넘게 걸려서 읽고 있는데 지금 백페이지쯤 남았다. 문장이 길고 온갖 인물 군상들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읽어나가는게 더디기는 하지만 자꾸 빨리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꺼번에 빨리 읽어내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문장 하나하나,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 혼란스런 가치관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을 가슴에 조금은 담아가면서 읽으려고 했다. 뭐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이처럼 잘 그려내고 있는 작가도 없을 테니까. 책을 읽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참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인간에 무관심한 작가라면 인간의 내면을 그렇게 잘 그려낼 수는 없을 테니까. 

  언젠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총합소설이라 일컫던 말이 떠올랐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든 모든 인물 하나하나에 그 성격을 부여하고 보조적인 인물일지라도 그 사람만의 특징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게 아닐까 싶다. 소설의 가장 기본은 역시 인물의 성격창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물 하나하나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요즘 잊고 있었던 고전의 맛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요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냥 상품 하나를, 그저 유행하는 상품 하나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 뿐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책을 덮는 그 순간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문학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소모품 같다는 느낌이랄까. 요즘의 소설에서 받는 느낌은 그렇다. 소모품. 좀 슬프고 씁쓸한 느낌의 말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문학 또한 소비의 대상이고 보면 그렇게 말한대도 그다지 억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것들은 전대의 무수한 소모품 중에서 살아남은 것들일 테니까. 

  지금 우리가 소모하고 있는 문학들 중에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즉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것들이 얼마나 될까.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설, 시, 온갖 종류의 책들을 보면 시장마다 마트 마다 상품이 흘러 넘치듯이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책들이 흘러넘치는 것 같다. 글자란 게 발명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는데 아직도 할말이 저렇게 많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글쎄 어쩌면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일까. 혹은 사람들의 상상력엔 한계가 없기 때문일까. 

  모처럼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두깨의 책을 독파하고 나니 괜히 으슥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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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보르헤스가 쓴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동료 카사레스와 함께) 추리소설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도대체 있을 법하지 않은 이름 때문에 작가가 누군지 몰랐다지만 어쩐지 보르헤스적인 냄새가 풍기는 단편들이었다. 주를 다는 방식도 그렇고 다른 작가들이나 작품, 심지어 영화 속 인물 등 다양한 지식들을 인용하는 것에서, 보르헤스가 즐겨 쓰는 소재인 미궁을 연상시키는 황소의 신이란 제목이나 비밀종교단체 등등에서 보르헤스적 냄새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보르헤스가 쓴 소설이라는 걸 알고 읽어서 이긴 하지만. 

  어쨌든 단편소설을 선호하는 작가답게 추리소설도 단편이다. 그래서 사건이 그다지 복잡하진 않고 이시드로 파로디의 한 마디에 너무나 쉽게 사건이 해결되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원래 추리소설이 그렇나. 알고 보면 실타래가 풀어지듯이 줄줄 풀려나오는 식으로. 

  모든 사건의 해결사 이시드로 파로디는 감옥에 갇힌 인물이다.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던 경찰이 씌운 누명으로 21년형을 선고 받고 273호 감방에 십수년째 수감 중이다. 하지만 그의 감방은 기자 몰리나리를 비롯해서 풀지 못한 사건들을 의뢰하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의 누명은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이발사였다는 그는 좁은 감방에서 사람들이 들려주는 사건의 내력만 듣고도 모든 걸 꿰뚫어보는 천재적인 혜안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딘지 조금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도 든다.   

  또 한 가지 단점, 실수인가? 작가가 묘사한 이시드로 파로디란 인물은 40대의 뚱뚱하고 빛나는 민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을 지녔다는데 표지 그림의 죄수복을 입은 인물은 날카로운 눈빛만 얼추비슷하고 영 다른 인물 같다. 

  여섯 개의 단편 중 '황도십이궁'은 아랍의 비교를 믿는 단체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골리아드킨의 밤'은 대륙횡단철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란 점에서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고 그래서인지 제일 추리소설다운 박진감이 있었던 것 같다. 미궁을 연상케 했던 제목 '황소의 신'은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아르헨티나의 황소 목장에서 벌어진 평범한 살인사건에 불과했다. '산자코모의 숨은 뜻'은 간통을 저지른 아내와 그의 정부에 대한 복수를 색다르게 그린 작품이었고, '타테오 리마르도의 희생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호텔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린 것이었는데 제일 맥빠지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타이안의 기나긴 탐색'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중국에서 훔쳐온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란 장르만 놓고 본다면 뛰어난 장치와 기교를 곳곳에 숨겨둔 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이시드로 파로디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과장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그에 의해 밝혀지는 결말은 너무 명백해서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추리가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여러 군상의 인물을 볼 수 있는 단편으로 즐기는게 더 좋을 것 같다.  

  보르헤스가 단편에서 널리 썼던 방식(인물이나 배경이 전 세계적이라는 것,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까지)이 여기서는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중국, 러시아, 아랍인, 유대인 등등... 온갖 인간 군상들의 삶의 모습과 그 욕망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그런대로 괜찮다. 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무슨 사건만 터지면 273호 감방을 찾는 탓에 여섯 개의 사건이 개별적인 단편이면서도 인물들이 여러 중복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인물들이 많고 이름이 낯설다보니 누가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단편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어쨌든 추리소설과 보르헤스, 카사레스라는  두 대가를 함께 만날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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