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상의 질서란 죽음에 의해서 해결되니 만큼 어쩌면 신으로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죽음에 맞서 투쟁하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255-256/662p)
그러나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 신을 믿는다고 확신하는 파늘루 신부조차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신에게 완전히 내맡기진 않기 때문이며 바로 그 점에 있어서 적어도 리유 자신은 신이 만든 세상과 투쟁하며 진리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253/662p)
오후 2시면 도시는 한산해진다. 침묵, 먼지, 태양 그리고 페스트가 길에서 서로를 만나는 시간이다. 잿빛의 커다란 집들을 따라서 더위가 마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른다. 포로처럼 붙잡힌 채 보내는 길고 긴 이 시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시 위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끝난다.(240-241/662p)
죽음의 밤과 고통의 낮 사이에 있는 이 시각에 페스트는 잠시 자신의 일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듯하다.(236/662p)
페스트가 만든 태양은 모든 빛을 퇴색시키고, 그것이 무엇이건 기쁨이라는 것 자체를 쫓아 버렸다.(224/6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