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날이 가까워 오자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달콤한 즙이 무르익은 무화과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면, 목마르고 굶주린 우리들이 탐을 내며 손을 뻗어 껍질을 벗기고, 껍질을 벗기는 동안 입 안에 침이 고이듯.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83

우리들은 하찮은 쾌감을 위해 벅찬 욕망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우리들은 중대한 순간을 위해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으며, 두 친구가 아니라 원한이 맺힌 적들처럼 화가 난 듯 식식거리며 가슴을 맞대고 움켜잡고는 싸움을 벌일 경기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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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산, 프실로리티, 드히티, 높은 세 산봉우리들이 솟아오른 크레타는 거품으로 항해해 들어가는 세 돛 범선 같았다. 수많은 젖통이 달린 바다의 괴물 크레타는 파도 위에 반듯하게 누워 햇볕을 쬐었다. 아침 햇살에 나는 그녀의 손과, 발과, 꼬리와, 발기한 젖가슴을 선명하게 보았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1

나는 그녀에게 선물로 줄 원숭이는 없었지만 그녀가 가르치는 어느 학생을 통해, 내가 좋아했으며 걸핏하면 물어뜯던 작은 개를 보냈다. 그 개의 이름은 카르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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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3

젊음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 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 ― 그것이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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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4

내 마음은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 해가 떠올랐고, 신이 손으로 빚어낸 첫날처럼 반짝였다. 사로니크 만(灣)이 광채를 내뿜었고, 아이기나는 멀리 아침 빛 속에서 장미꽃처럼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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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9

한쪽에서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갈기가 하얀 파도들이 호메로스의 신선한 시처럼 시원하게 물결쳤고, 다른 쪽에서는 기름과 빛이 가득 찬 아테나의 올리브나무와, 아폴론의 월계수와, 모든 술과 노래의 기적을 일으키는 디오니소스의 포도가 펼쳐졌다. 검소하고 건조한 대지에서는 돌멩이들이 햇빛에 장미처럼 붉게 물들었고, 산들은 운동선수처럼 완전히 알몸을 드러내고 쉬면서 평화롭게 햇볕을 쬐며 공중에서 푸르른 나래를 쳤고, 광채가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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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0

그 기쁨! 처녀의 몸을 지닌 그리스는 파도 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떠올랐고, 태양은 신랑처럼 그녀 위에 엎드렸다. 바다는 돌멩이들과 물을 길들였고, 물질의 지둔함과 거침을 떨쳐 버리고 본질만을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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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1

아티카의 풍경은 이상적인 인간의 특성을 규정 지어서, 건강하고도 보기 좋은 몸매에 과묵하고 피상적인 부유함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억누를 능력도 갖추고, 상상력을 제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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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3

아티카의 풍경은 뽐내지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 않으며, 신파조로 기절하는 발작으로 타락하지 않고, 차분하고 힘찬 설득력을 지니며, 해야 할 얘기만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것은 본질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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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4

아티카를 돌아다니다 보면, 겸손함과 고상함과 힘의 가장 훌륭한 교훈을 대지로부터 얻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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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5

내 마음의 맥동(脈動)에 맞는 것은 홀수였다. 홀수의 삶은 전혀 편안하지 않다. 홀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을 바꿔 보고, 보태고, 더 밀어 보려고 한다. 그것은 한쪽 발로 땅을 딛고 다른 발은 떼어 떠나려고 한다. 어디로 갈까? 잠깐 멈춰 숨을 돌리고 새로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음 짝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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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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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별이 총총한 하늘은 지구의 둘레를 얌전하게 매암을 돌지 않았다. 지구는 우주 공간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작고 하찮은 별에 지나지 않아서 노예처럼 태양의 주위를 돌았으니,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 떨어졌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53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의 무한한 쇠사슬에 연결된 유인원의 자손이었다. 살갗을 조금 긁어내고, 영혼을 조금 벗겨 낸다면 그 밑에서는 우리들의 할머니인 원숭이가 나타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54

심연의 한쪽에는 유인원이, 다른 쪽에는 수도원장이 버티고 섰다. 그들 사이에서 혼돈의 위로 줄이 연결되었고, 나는 그 줄을 타고 공포에 떨며 나아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63

비록 내가 옳다고 생각했어도 나는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밝힐 능력이 없었다. 위기를 맞으면 항상 도피하는 문 노릇을 해온 웃음에 나는 또다시 의존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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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입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시인 존 해링턴 경이 쓴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Treason doth never proper: what’s the reason?

Why, if it prosper, none dare call it Treason.

반역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지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성공하면 아무도 감히 반역이라 부르지 못함이라.

-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0561 - P128

뭔가 questionable수상쩍은하고
querulous불만에 찬한 느낌,
quaking요동하는
quagmire진흙수렁나
quivering흔들리는
quicksand모래수렁처럼
quavering부들거리는한 느낌 또는
quibble투덜댐과
quarrel말다툼,
queasiness메스꺼움와
quackery사기꾼 같은 짓,
qualms께름칙함와
quilp(‘퀼프’)3를 연상시키는 글자이니 말이다. -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0561 - P130

이렇게 사람 이름이 붙은 발명품의 경우 사람이 먼저인지, 발명품이 먼저인지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crapper변기를 발명한 Thomas Crapper토머스 크래퍼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0561 - P136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crap, crapper변기, crap around허튼짓하다, crap about헛소리하다 같은 말들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영국 영어에서는 crap이 Crapper에서 유래하지 않았지만, 미국 영어에서는 그렇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Crapper는 crap이란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널리 퍼뜨리는 데 공을 세운 셈입니다. -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0561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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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레타 전체를 어깨에 걸머진 기분이었다. 혹시 배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거나, 시험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면 크레타가 수치스러워진다. 나에게는 어린아이다운 태평함과, 신선함과, 경박한 기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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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15

아버지가 머리에 떠오르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버지는 화약으로 얼룩지고 팔에 심한 부상을 입은 몸으로 얼마 전에 돌아왔다. 이제 총성은 멎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 난 다음 자유는 크레타 땅에 피투성이의 발을 디뎠다. 곧 헬레네의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도착해서, 크레타와 그리스가 영원히 통일되어야 할 중대한 시기에 도움의 손을 내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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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20

월계수와 조상들의 뼈로 장식된 문을 통해서 나는 사춘기로 들어섰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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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38

커다란 두 마리의 야수가 내 몸속에서 머리를 들었으니, 하나는 육체라는 표범이요, 또 하나는 인간의 내장을 파먹으며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파하는 이성이라는 독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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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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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같은 휴일이면 모든 사람이 옷을 차려입고, 보석으로 몸치장을 하고, 집을 나서 골목마다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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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57

크레타의 피를 확실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는 참된 인간이란 아무리 곤경에 처했어도 신의 앞에서까지도 저항하고, 투쟁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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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64

내가 어렸을 때 크레타의 대기는 들짐승 같은 터키인들의 입 냄새를 풍겼다.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는 터키 칼이 공중에서 기다렸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 〈폭풍 같은 톨레도 칼〉을 보았을 때, 나는 어릴 적에 내가 어떤 공기를 숨 쉬었고, 크레타 하늘에는 어떤 천사들이 유성들처럼 떠다녔는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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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74

내가 벅찬 재앙이 닥치자마자 형언하기 힘든 비인간적인 기쁨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을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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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79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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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81

불운한 일이란 거의 언제나 다른 불운과 함께 닥치기 때문에 크레타에서는 한 가지 불운만 닥친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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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82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90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항상 나를 지켜 준 인내와 집념을 나는 아버지의 냉혹한 가르침에서 얻었다. 삶이 끝나 가는 지금 나를 다스리고, 신이나 악마에게서 위안을 받아들이는 몰락을 범하지 않도록 해주는 모든 불굴의 사상도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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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96

이 섬은 벅찬 감미로움과 고요함이 넘친다. 잔잔한 바다의 한가운데, 어디에나 참외와 복숭아와 무화과의 더미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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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199

이것은 내 지적인 삶의 첫 번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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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09

무엇보다도 나는 시(詩)라는 방법을 통해 고통과 노력이 꿈으로 변형되기도 하며, 아무리 덧없는 고뇌라고 해도 시가 영원한 노래로 바꿔 놓기도 한다는 커다란 비밀을 이제야 의식하게 되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09

나는 읽고 쓰기를, 머나먼 곳을 보기를,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경험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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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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