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마다 목사님의 눈을 빤히, 아주 빤히 쳐다보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잘 견디지 못해. 다들 불안해하지. 네가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고 싶으면 느닷없이 그 사람의 눈을 빤히 쳐다보도록 해.
데미안 | 헤르만 헤세, 김인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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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성서의 보고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린 소년 시절에 이따금, 이를테면 성금요일에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낭독하시고 나면, 나는 마음 깊이 감동받아서 그 비통하고 아름답고 창백하고 으스스하면서도 무척 생생한 세계에서,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에서 살았다. 그리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으면, 온갖 신비로운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 비밀스러운 세계의 음울하고 강렬한 수난의 광채에 휩싸이곤 했다. 나는 그 음악과 「죽음의 칸타타」를 지금도 모든 시와 모든 예술적 표현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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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여기가 이 종교의 결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야.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이 비범한 형상이긴 하지만, 하느님이 본래 보여 줘야 할 모습은 아니라는 거지. 하느님은 선이고 고귀함이고 아버지 같은 분이고 아름답고 숭고한 존재이고 감상적인 존재이셔. 백번 맞는 말이야! 하지만 세상은 다른 것들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그것들은 모조리 악마의 것으로 떠넘겨지고 있어. 세상의 이 부분, 이 절반이 은폐되고 묵살되고 있어. 하느님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찬양하지만, 정작 생명의 토대를 이루는 성생활은 아예 묵살하고 악마의 일, 죄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니까! 나는 이 야훼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숭상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 이처럼 인위적으로 떼어 내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절반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드려야 해. 나는 그게 옳다고 봐. 아니면 악마까지 포함하는 하느님을 만들어 내든지. 그러면 그 하느님 앞에서는 이 세상의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 두 눈을 감지 않아도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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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 하느님과 악마, 공식적으로 인정된 신적 세계와 묵살된 악마적 세계에 대해 한 말은 바로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신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라는 두 세계 혹은 두 반쪽 세계에 대한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내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이고 모든 삶과 사유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성스러운 그림자처럼 불현듯 나를 스쳤다. 나는 나 자신의 극히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삶과 의견이 거대한 사상의 영원한 흐름에 얼마나 깊이 동참하는지 불현듯 느끼고 깨달으면서 두려움과 경외감에 휩싸였다. 그 깨달음이 어떤 식으로든 확증과 행복을 선사했는데도, 나는 기쁘지 않았다. 이제 어린아이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홀로 서야 한다는 책임감의 여운이 담겨 있었던 탓에, 그 깨달음은 가혹했고 알알한 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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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전에 없이 더욱 주의 깊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눈을 들여다보아서, 나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서 다시 짐승처럼 시간을 초월한 듯한 그 기이한 눈빛, 그 예측할 수 없는 나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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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으로 실천하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너의 〈허용된〉 세계가 단지 반쪽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목사님이나 선생님처럼 나머지 반쪽 세계를 숨기려 했지. 그걸 숨길 수는 없어! 누구든 일단 생각을 하게 되면 절대 숨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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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대략 1년 전부터 너는 네 안에서 다른 모든 충동들보다 더 강하게 치미는 충동을 느낄 거야. 그리고 그 충동은 〈금지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어.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과 다른 많은 민족들은 그 충동을 오히려 신적인 것으로 높이 사고 성대한 축제를 열어 숭상했어. 그러니까 영원히 〈금지된〉 것은 없어. 언제든 바뀔 수 있지. 오늘날에도 어떤 남자든 여자와 함께 목사님을 찾아가 결혼만 하면 그 여자와 잠을 자도 돼. 다른 민족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 오늘날에도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제각기 무엇이 허용된 것이고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 자신에게 금지된 것인지 스스로 알아내야 해. 결코 금지된 것을 하지 않는데도 무도한 악당일 수 있어.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그건 사실 안일함의 문제일 뿐이야! 너무 안일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은 기왕지사 있는 그대로의 금기에 순응하지. 그게 맘 편하거든. 그와는 달리 자기 안에서 스스로 계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정직한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일들이 금지되기도 하고, 흔히 금기시되는 다른 일들이 허용되기도 해. 제각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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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똑똑한 말들은 아무 가치가 없어. 아무 가치도 없다고. 다만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죄악이야. 거북이처럼 완전히 자기 자신 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해.
데미안 | 헤르만 헤세, 김인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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