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전 또는 세계문학으로 불리는 책들이 모여 형성된 거대한 도시를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 산책자라고 생각한다. 책으로 가득한 이 도시의 모습은 매시간 변하고 있으며, 어느 불 켜진 창문 안에서 지금도 새로운 고전이 쓰이고 있다. 저 먼 곳으로부터 금빛 종소리가 들려온다.
-알라딘 eBook <금빛 종소리> (김하나 지음) 중에서 - P5
또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올 때마다, 이전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온 것이 바로 조금 전이라고 느껴져, 막 울려온 시각이 또 다른 시각 옆 하늘에 새겨지면서 그 두 금빛 기호 사이에 끼어든 작고 푸른 궁형 안에 육십 분이라는 시간이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가끔 때 이르게 찾아온 이 시각은 바로 앞 종소리보다 두 번 더 울리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듣지 못한 시각이 한 번 더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실제로 일어난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깊은 잠과 마찬가지로, 마술적인 독서의 이점은 환각에 사로잡힌 내 귀를 속이고, 고요라는 창공의 표면에서 금빛 종을 지워 버린다는 데 있다.1)
-알라딘 eBook <금빛 종소리> (김하나 지음) 중에서 - P9
다시 출발하기 전 우리는 오랫동안 풀밭에 앉아 과일과 빵과 초콜릿을 먹었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풀밭까지 약하기는 하지만 조밀한 금속성 생틸레르 종소리가 수평으로 들려왔다. 종소리는 공기 속을 그토록 오래 지나왔는데도 공기에 섞이지 않고, 그 모든 연속적인 울림으로 골이 진 채, 우리 발아래 꽃들을 스칠 듯 지나가며 파르르 떨었다.2)
-알라딘 eBook <금빛 종소리> (김하나 지음) 중에서 - P10
그는 여러 서가에서 고전이 된 작가들의 옛날 책이 가득 꽂힌 곳을 발견하고 대충 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도리고 에번스가 원하는 것은 고대의 위대한 시가 아니라, 그런 책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책이 발산하는 그 분위기는 그를 안으로 끌어들여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었으며, 그 세상은 그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이런 느낌, 이런 영적인 소통의 느낌에 그는 때로 압도당했다. 그럴 때면 우주에 오로지 그 책 하나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책들은 모두 영원히 살아 있는 그 위대한 작품으로 통하는 문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 책 속에는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아름답고 지칠 줄 모르는 세계가 있었다. 그런 책에는 시작도 끝도 없었다.3)
-알라딘 eBook <금빛 종소리> (김하나 지음) 중에서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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