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와 언어들』은 이러한 변환들의 나열이 아니다. 이런 변환들이 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어떻게 보면 책의 목적을 규정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책의 실체는 다른 곳에 있다. 이처럼 언어에 몰두하는 울프슨의 일상생활과 인간의 조건을 보여 주는 것이 책의 실체이다. 뉴욕에 살고 뉴욕의 거리를 헤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렇게나 직접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무척 드물다. 세부 사항을 관찰하는 울프슨의 눈은 지독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정밀하며, 그가 파악한 세밀한 뉘앙스는 아주 철저하면서도 권위 있게 제시된다. 가령 42번가 공공 도서관 열람실의 감옥 같은 분위기, 고등학교 무도회의 긴장감, 타임스 스퀘어의 매춘부, 도시 공원의 벤치에서 아버지와 나눈 대화 등이 엄청나게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객관화의 기이한 움직임이 계속 벌어지고, 울프슨 산문이 지닌 매력은 상당 부분 이러한 거리 두기의 결과이다. 거리 두기의 행위는 일종의 미끼가 되어 우리를 울프슨 산문으로 끌어당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40

루이스 울프슨은 조현병 환자이다. 그는 1931년생이고 뉴욕에 산다. 적당한 용어가 없어서 그의 책을 일종의 3인칭 자서전 혹은 현재의 회고록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그는 자신의 질병을 기록하면서 아주 기이한 기록 방식을 고안해 냈다. 울프슨은 자신을 〈조현병을 앓는 언어학도〉, 〈정신적으로 병든 학생〉, 〈치매에 걸린 관용구 학생〉 등으로 부르면서 건조한 임상 보고서와 창의성 풍부한 소설의 특징을 두루 갖춘 서술 문체를 사용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정신 착란이나 〈광기〉의 흔적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문장은 명석하고 직설적이고 객관적이다. 우리는 저자의 강박증이 이룬 미로를 방황하면서 저자의 심정을 느끼게 되고, 그와 동일시하게 되고, 키릴로프*와 몰로이**의 괴팍함과 고통을 알아보게 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7

루이스 울프슨이 쓴 『조현병 환자와 언어들Le Schizo et les langues』 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소설은 정말 황당무계하고 기존 소설과 전혀 다르다. 문학의 주변부에서 집필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하지 못하다. 이 소설의 위치는 문학이 아니라 언어의 주변부인 듯싶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프랑스어로 쓴 이 소설은 미국 책이라는 인식 없이 읽으면 별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밝혀질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번역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 버린다. 이 소설은 두 언어의 중간 지대를 배회하는데, 이 위태로운 현존으로부터 소설을 구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설은 〈외국어로 집필하기를 선택한 작가의 소설〉 정도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작가는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다. 그것은 아주 엄청난 필요의 결과였고 소설 쓰기는 곧 생존의 행위였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7

울프슨이 먹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탐식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무를 배반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입을 자신을 살려 주는 언어(말씀)를 발견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먹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는 것은 하나의 타협이다. 이미 부정 타서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이기는 하지만, 그 세계에 존재하면서 언어를 발견하려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45

누군가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치료법을 처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문제를 직접 대면하도록 자신을 몰아붙이며,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나갈 가능성을 내면에서 희미하게 감지하는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46

루이스 울프슨은 문학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그를 공정하게 대접해 주자면 우리는 그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취할 때에만 우리는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바꾸어 놓을 진귀한 작품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47

저는 지금 글쓰기, 특히 이야기하기 수단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서 일어난 적이 없는 상상 속 이야기들 말입니다. 확실히 그건 이상한 삶입니다. 몇 시간, 몇 날, 몇 해를 홀로 방에 틀어박혀 펜을 들고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종이 위에 글을 적으려고 분투하는 삶이니까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입니다. 그래야만 하니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5

하지만 저는 예술의 가치가 바로 무용함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는 우리를 이 행성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차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우리를 인간으로 정의해 줍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6

우리는 나이를 먹지만 변하지 않습니다. 성장하면서 지적 수준이 점차 높아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어릴 적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남아 다음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를 갈망합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8

인간에겐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겐 이야기가 음식만큼 절실히 필요하며,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제공되건 ─ 종이에 인쇄되건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달되건 ─ 이야기 없는 삶은 상상 불가능합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8

그렇지만 저는 소설의 현 상태, 그리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봅니다. 책에 관련해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늘, 언제나 독자는 오직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소설은 특별한 힘을 지니며, 제 견해로는,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2006년 10월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을 쓰자면 먼저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먹지 않으려 한다. 먹지 못하면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지 못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16

함순의 한 에세이에는 공간과 시간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보이지 않는 우회〉를 계획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함순은 19세기 소설의 기본 구성 원칙인 역사적 시간을 우회해 버린다. 그는 주인공이 굶주림을 상대로 극단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굶주림을 면하는 시기는 일주일에 이르지만, 소설에서는 한두 문장으로 처리된다. 내면의 지속적 흐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연대기적 시간은 생략된다. 임의적인 시작과 끝을 지닌 이 장편소설은 서술자의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변덕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아주 신비롭게 일어나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져 나가다 느닷없이 사라지고, 그러면 또 다른 생각이 생겨나서 뒤를 받치는 것이다. 떠오를 수 있는 모든 생각이 떠오르도록 허용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17

내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할 수도 없으며 마음의 미친 듯한 변덕을 계속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의식했다. (……)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으며 또 내 마음은 보이지 않는 힘들의 싸움터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 순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의식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0

나는 아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일정 기간 굶주림을 견뎌 내자 뇌수가 머리에서 조용히 빠져나가 나를 텅 빈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는 가볍게 부유했고 더는 그 무게를 내 어깨에 느끼지 못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0

그리하여 그의 단식은 모순이 된다. 단식을 계속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이 오면 단식은 저절로 끝나게 된다. 따라서 단식을 계속하자면 살아 있어야 하지만 죽음 일보 직전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생을 끝장내겠다는 생각은 그 끝장이 늘 주위에 어른거리는 가능성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 완강히 거부된다. 그의 단식은 목적을 제시하지도, 구원의 약속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단식의 모순은 미해결의 장으로 남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것은 절망의 이미지를 남긴다. 그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자기 파괴적인 열정에 의해 생성된다. 절망에 빠진 영혼은 자신을 파괴하려 하고, 절망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지 못하고 더욱더 깊숙이 절망으로 가라앉는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2

자기모멸이 궁극적으로 자기 정화의 역할을 하는 종교 예술(가령 17세기의 명상 시들)과는 다르게, 굶주림은 구원의 변증법을 흉내만 낼 뿐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2

잠시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밑바닥이 없는 이 조밀한 어둠의 실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어둠처럼 보였다. 그 존재가 나를 짓누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나지막이 노래 부르면서 나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어둠이 내 두뇌를 사로잡았고 나에게 한시의 평화도 주지 않았다. 내가 어둠 속으로 용해되어 아예 어둠이 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5

나는 굶주림이라는 즐거운 정신 이상 상태에 도달했다. 고통에서 해방되어 텅 빈 상태였고 내 생각은 더 이상 견제당하지 않았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5

아니다. 그 단어는 실제로 정신적인 어떤 것, 어떤 감정, 혹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나는 정신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6

그는 여자를 위해 아주 어감이 좋은 이름을 지어내는데, 오로지 그 이름으로만 여자를 부른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7

도덕의 영역에서 선과 악이 상대적 개념이라면, 언어의 영역에서는 거짓말과 진실이 상대적 개념이다. 언어는 사회적 규약이고 우리가 믿어 주는 한 위력을 발휘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7

단지 예술이란 예술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술이란 굶주림의 예술, 혹은 결핍・필연・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0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예술의 형태가 없어지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리라는 겁니다. 그 새로운 형태는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그 혼란이 대단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그런 타입이 될 겁니다. (……) 혼란을 수용하는 형태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에게 부여된 과업입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1

결국 굶주림의 예술은 실존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방법이고, 이때 죽음이란 바로 우리가 오늘 살고 있는 죽음이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 구원의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삶이다. 느닷없이 부조리하게 삶이 끝나는 것, 그게 죽음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3

문학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는 힘이며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마주친 현존으로서 인생의 진실과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은 연속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일련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게 될 책은 통상 집필 당시의 문학 사상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니는 몸을 똑바로 세워 보려고 하지만 아직도 약간 삐뚜름하다. "안 취했습니다." 그저 한 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현실을 목격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충동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환영 감각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57

7번 애비뉴에서, 신호등이 바뀌자 차량들이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한다. 건너편 메이시 백화점이나 코리아타운 가라오케나 바비큐 식당으로 가려는 행인들이 도로 위로 몰려들기 전에 재빨리 지나가려는 것이다. 이것들은 전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이것들은 올바르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47년5월11일이었다. 그는 열한 살이었다. 파리16구 아솜시옹 거리18번지 집에서 막 도망쳐 나왔다. 단추 세 개가 달린 회색 모직 외투를 입고, 파란 울 양말에 밤색 신발을 신었다. 검은색 인조가죽 가방을 들었다. 수중에는23프랑이 전부였고, 최대한 빨리 팔아치우려고 작정한 작은 우표첩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알라딘 eBook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중에서 - P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36년3월7일에 태어났다. 이 문장을 몇십 번, 아니 몇백 번을 썼던가? 정말 잘 모르겠다. 꽤 오래전, 자서전 계획이 구체화되기 훨씬 전부터 이 문장을 썼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알라딘 eBook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중에서 - P13

나는 태어났다.
처음엔 이런 식의 문장은 완전하다고, 전부 다 갖추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 문장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글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알라딘 eBook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중에서 - P14

반면에 정확한 날짜를 적게 되면 우리는 그만 써도 된다.
나는1936년3월7일에 태어났다. 끝. 몇 달째 이 문장을 쓰고 있다.34년6개월 전부터, 지금까지도!

-알라딘 eBook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중에서 - P14

오후4시, 어쩌면 글을 쓰려고 해볼 수도 있다. 내 이야기는 명료하고(그렇게 보려고만 한다면), 내가 느끼는 막막함은 속임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메커니즘이자, 수사학적 기교들이다.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계속 뭉그적거릴 수는 없다.(어쨌든 이것이 중요한 논지는 아닐 터이니.) 그래서? 어쩌면 막대한 임무 앞에 주저앉게 될지도. 그 임무는 한 번 더 실타래를 끝까지 푸는 것. 그리고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장소들』14을 쓰기 위해 둔 제약을 따른다면12년 동안) 싫증이 나거나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로 곱씹은 내 기억들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 속에 나를 가두는 것.

-알라딘 eBook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중에서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