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는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자각이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멈춰야 하는 때를 알 수 있다. (45/318p)
그러니 부모를 궁금해하자. 부모에 대한 편견은 한쪽에 내려놓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 보자. 이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았다는 걸 깨달은 어리석은 아들이 당신에게 주고 싶은 진심 어린 충고다. (63-64/318p)
부모가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자식은 부모의 인생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양분을 섭취한다. 즉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그저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일만 피해도,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자기 인생을 사는 데 열중해도, 부모로서 역할을 괜찮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69/318p)
아이를 잘 기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된다.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은 여타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좋은 부모라는 상에 억눌리기보다 그저 온전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할 것.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자기 삶을 알아서 꽃 피운다. 그래서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가 따로 없다. 그저 부모만 있을 뿐이다. (72/318p)
즉 ‘나’라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 온 노력의 결과이며, 인생은 기질과 환경 사이에서 매 순간 이루어진 선택의 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75/318p)
네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수명을 100세로 설정하고, 이를 정확히 네 개로 구분했다. 1~25세까지는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 26~50세까지는 익힌 것을 바탕으로 실행해 보는 시기, 51~75세까지는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참회하는 시기, 76~100세까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가 그것이다. (87/318p)
남은 인생,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기면 인생이 정말로 쓸모없어진다. 반대로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고자 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를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 떠오른다. (93/318p)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믿고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마법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108/318p)
그중에 내 눈을 단박에 사로잡은 신조어는 ‘소확행(小確幸)’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불확실하고 먼 행복을 추구하느라 소중한 오늘을 희생하느니 차라리 눈앞에 보이는 이 순간의 즐거움을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11/318p)
목표에서 과정으로, 타성에서 자발성으로의 전환. 그것이야말로 나이가 들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생의 과업이다. (114/318p)
그러고 보면 ‘버티다’라는 용어는 약자의 몫이다. 뜻대로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면서 끝내 견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19/318p)
그런데 인생을 통틀어서 보면 모든 인간은 버텨야 하는 운명이다. 강자가 아닌 약자이고, 승자가 아닌 패자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20/318p)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운명 앞에 약자인 자신의 처지를 깊이 고뇌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 내는 삶이 아닐까. 아흔을 앞두고도 끝내 살아 보리라 다짐한 내 선배님의 삶처럼. (122/318p)
가족이라서 더 어렵고 더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가족이 가진 지식과 에너지도 당신의 중요한 자산이다. 불안한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안전망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가. 가족을 나름대로 이용하고자 하면 다양한 방법이 보인다. 그 결과 가족끼리 돈독해지면, 그것은 감사한 덤이다. (130/3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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