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자면 먼저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먹지 않으려 한다. 먹지 못하면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지 못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16

함순의 한 에세이에는 공간과 시간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보이지 않는 우회〉를 계획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함순은 19세기 소설의 기본 구성 원칙인 역사적 시간을 우회해 버린다. 그는 주인공이 굶주림을 상대로 극단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굶주림을 면하는 시기는 일주일에 이르지만, 소설에서는 한두 문장으로 처리된다. 내면의 지속적 흐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연대기적 시간은 생략된다. 임의적인 시작과 끝을 지닌 이 장편소설은 서술자의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변덕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아주 신비롭게 일어나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져 나가다 느닷없이 사라지고, 그러면 또 다른 생각이 생겨나서 뒤를 받치는 것이다. 떠오를 수 있는 모든 생각이 떠오르도록 허용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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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할 수도 없으며 마음의 미친 듯한 변덕을 계속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의식했다. (……)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으며 또 내 마음은 보이지 않는 힘들의 싸움터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 순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의식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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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일정 기간 굶주림을 견뎌 내자 뇌수가 머리에서 조용히 빠져나가 나를 텅 빈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는 가볍게 부유했고 더는 그 무게를 내 어깨에 느끼지 못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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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의 단식은 모순이 된다. 단식을 계속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이 오면 단식은 저절로 끝나게 된다. 따라서 단식을 계속하자면 살아 있어야 하지만 죽음 일보 직전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생을 끝장내겠다는 생각은 그 끝장이 늘 주위에 어른거리는 가능성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 완강히 거부된다. 그의 단식은 목적을 제시하지도, 구원의 약속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단식의 모순은 미해결의 장으로 남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것은 절망의 이미지를 남긴다. 그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자기 파괴적인 열정에 의해 생성된다. 절망에 빠진 영혼은 자신을 파괴하려 하고, 절망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지 못하고 더욱더 깊숙이 절망으로 가라앉는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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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모멸이 궁극적으로 자기 정화의 역할을 하는 종교 예술(가령 17세기의 명상 시들)과는 다르게, 굶주림은 구원의 변증법을 흉내만 낼 뿐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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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밑바닥이 없는 이 조밀한 어둠의 실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어둠처럼 보였다. 그 존재가 나를 짓누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나지막이 노래 부르면서 나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어둠이 내 두뇌를 사로잡았고 나에게 한시의 평화도 주지 않았다. 내가 어둠 속으로 용해되어 아예 어둠이 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5

나는 굶주림이라는 즐거운 정신 이상 상태에 도달했다. 고통에서 해방되어 텅 빈 상태였고 내 생각은 더 이상 견제당하지 않았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25

아니다. 그 단어는 실제로 정신적인 어떤 것, 어떤 감정, 혹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나는 정신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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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자를 위해 아주 어감이 좋은 이름을 지어내는데, 오로지 그 이름으로만 여자를 부른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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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영역에서 선과 악이 상대적 개념이라면, 언어의 영역에서는 거짓말과 진실이 상대적 개념이다. 언어는 사회적 규약이고 우리가 믿어 주는 한 위력을 발휘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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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예술이란 예술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술이란 굶주림의 예술, 혹은 결핍・필연・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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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예술의 형태가 없어지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리라는 겁니다. 그 새로운 형태는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그 혼란이 대단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그런 타입이 될 겁니다. (……) 혼란을 수용하는 형태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에게 부여된 과업입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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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굶주림의 예술은 실존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방법이고, 이때 죽음이란 바로 우리가 오늘 살고 있는 죽음이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 구원의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삶이다. 느닷없이 부조리하게 삶이 끝나는 것, 그게 죽음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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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는 힘이며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마주친 현존으로서 인생의 진실과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은 연속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일련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게 될 책은 통상 집필 당시의 문학 사상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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