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13

마부가 떠나고 몇 분 동안 스토너는 꼼짝 않고 서서 건물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위풍당당한 광경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널찍한 초록색 들판에 빨간 벽돌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리고 들판 곳곳에는 돌로 포장된 통행로와 작은 꽃밭이 있었다. 놀라움과 감탄 속에서 문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오랫동안 캠퍼스 주위를 걸어 다녔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저 건물들을 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20

그에게 배정된 2층 방은 예전에 창고로 쓰던 곳이었다. 가구라고는 힘을 잃고 늘어진 틀 위에 얄팍한 깃털 매트리스가 놓인 검은색 철제 침대, 등유 램프를 놓아둔 망가진 탁자 하나, 수평이 잘 맞지 않는 딱딱한 의자 하나, 책상 역할을 하는 커다란 상자 하나가 고작이었다. 겨울에는 바닥을 통해 조금씩 올라오는 아래층의 온기가 전부라서 그는 해진 퀼트 이불과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자칫 책장이 찢어지지 않게 곱은 손을 후후 불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24

그는 대학 도서관의 서가들 속에서 수천 권의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죽, 천, 종이로 된 책들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마치 이국적인 향 냄새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책을 한 권 꺼내서 커다란 손에 잠시 들고 있었다. 아직 낯선 책등과 표지의 느낌, 그의 손길에 전혀 반항하지 않는 종이의 느낌에 손이 찌릿찌릿했다. 그러고는 책을 뒤적이며 여기저기에서 한 문단씩 읽어보았다. 책장을 넘기는 뻣뻣한 손가락은 이토록 수고스럽게 펼친 책을 서투르게 다루다가 찢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듯이 조심스레 움직였다.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37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자신을 압축해서 집어삼킨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도망칠 길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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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 <스토너 - 이동진 에디션>, 존 윌리엄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07b503536f4d16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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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억센 생명력은 이리저리 시달리며 사는 민초의 삶을 연상케 한다. 김수영 시인은 「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알라딘 eBook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지음) 중에서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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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부터 나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이면 조계사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말일파초회’에서 옛사람의 간찰을 읽는다. 이때 쉬는 시간이면 재완이, 채식이와 밖으로 나와 소나무 아래서 연차를 피웠다. 우리는 이 다정한 만남을 ‘송하연차회’라 하였다. 그래서 요즘 세상에선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친밀한 것이 흡연 사이라고 한다.

-알라딘 eBook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지음) 중에서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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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군중이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않으며, (사상을 이루는 일부 요소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상 일체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며, 토론과 반론을 용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귀스타브 르 봉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ad55cc97f75044ee - P131

모든 정신적 역량을 쏟고 모든 의지를 아낌없이 불태우는 행위, 생각과 행동의 목표와 길잡이가 되는 동기나 존재를 광신하는 행위도 종교적이기는 매한가지다. -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귀스타브 르 봉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ad55cc97f75044ee - P134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군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얼마든지 종교적 광신을 보인다. 그들에게 지도자는 신이나 다름없다. 과거에는 황제를 위해 제단을 세웠으나 오늘날에는 동상을 세운다. 군중은 종교적 이상을 행위의 원동력으로 삼고, 무신론이라는 신념으로 결집한 군중조차도 극단적인 종교적 감정에 사로잡힌다. -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귀스타브 르 봉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ad55cc97f75044ee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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