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그리고 어머니."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27

그녀는 물론 진짜 귀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짜 처녀인지 어떤지도 우리는 잘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옷차림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는 초상집 상제들이나 민간설화 속 처녀 귀신, 즉 혼인도 못 한 채 요절한 것이 사무치는 한이 되어 영원히 괴로워한다는 매혹적이고 영묘한 미인이 입을 법한 두껍고 거친 삼베로 지은 누리끼리한 한복을 입고 다녔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29

나는 어렸을 때 흙을 먹었다.
가난 때문도 호기심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흙을 먹은 이유는 목마를 때 물을 갈망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순수한 충동 때문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내 몸이 흙을 갈망했고, 나는 몸의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48

거무튀튀한 흙은 말하자면 다크호스로, 거친 말발굽 같은 질감과 블랙커피처럼 쌉싸름한 맛으로 혀를 자극한다. 보석처럼 반짝이지만 부싯돌처럼 단단한 흰색 입자들은 제일 희귀하다. 그것은 마치 입술에 나는 피처럼 매끈하고 짜릿한 금속성의 쾌감을 준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적절히 조합되면 한 꼬집의 흙이 입안에서 한 꼬집의 천국으로 바뀐다. 나는 마치 고양이 혀가 애무하듯 흙이 입천장 아래에서 미끄러지고 바지직하며 부서질 때의 느낌을 좋아했다. 그런 행위로 내 치아가 조금씩 깎여나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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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 밑에서 꿈틀대던 작은 괴물이 이제 명치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지만 빼앗겨버린 유년기라는 작은 새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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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햇볕이 내 두개골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더뎌지는 내 심장박동에 맞추어 물결치고 울렁이는 네온빛 페이즐리 문양들이 내 시야를 채우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온 세상이 시계 방향으로 왈츠를 추는 듯하더니 오른쪽 귀가 땅속으로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혀에서 녹슨 금속을 연상시키는 찌릿한 맛이 났다. 귀가 먹먹한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굶주린 말벌처럼 왼쪽 귀로 윙윙거리며 들어왔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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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르타는 히브리어에서 온 것으로 꼴과 뜻이 모두 온전하지 못하고 함축적인 의미가 풍부하다. 이것은 원래 하베르(동료)를 여성형으로 만든 것으로 하녀를 뜻한다. 하지만 한 지붕밑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 태생이 미천하고 풍습과 믿음이 다른 여자라는 뜻이 깔려 있다.
하베르타는 청결하지 못하고 버릇없기 쉬우며, 그 속성상 어쩔 수 없이 집주인들의 관습과 대화에 악의 어린 호기심을 보인다. 그래서 집주인들은 하베르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자기들만아는 은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은어에는 지금까지 말한 것 말고도 당연히 하베르타란 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은어는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몇 세대 전만 해도 수백 단어와 표현에 달했는데, 대부분 히브리어 어근에 피에몬테 방언의 접미사와 어미를 붙여 만들었다. 이렇게 대충 훑어만 보아도 그것이 감쪽같고 비밀스러운 기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원(이교도)이 있는 자리에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그들이 세운 억압 정권에 대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욕이나 저주로 답할 때 쓰는 아주 약삭빠른 언어인 셈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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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르타는 히브리어에서 온 것으로 꼴과 뜻이 모두 온전하지 못하고 함축적인 의미가 풍부하다. 이것은 원래 하베르(동료)를 여성형으로 만든 것으로 하녀를 뜻한다. 하지만 한 지붕밑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 태생이 미천하고 풍습과 믿음이 다른 여자라는 뜻이 깔려 있다.
하베르타는 청결하지 못하고 버릇없기 쉬우며, 그 속성상 어쩔 수 없이 집주인들의 관습과 대화에 악의 어린 호기심을 보인다. 그래서 집주인들은 하베르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자기들만아는 은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은어에는 지금까지 말한 것 말고도 당연히 하베르타란 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은어는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몇 세대 전만 해도 수백 단어와 표현에 달했는데, 대부분 히브리어 어근에 피에몬테 방언의 접미사와 어미를 붙여 만들었다. 이렇게 대충 훑어만 보아도 그것이 감쪽같고 비밀스러운 기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원(이교도)이 있는 자리에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그들이 세운 억압 정권에 대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욕이나 저주로 답할 때 쓰는 아주 약삭빠른 언어인 셈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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