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로 다시 태어났다
박일섭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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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도 공부로 다시 태어나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고 싶다. 저자 박일섭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저자는 일산에서 “서울드림약국”을 운영 중이다. 약사로서 ‘기능약학’으로 신체건강에 관해 상담하는 한편, 한 사람으로서 〈새롭게 하소서〉같은 방송과 간증으로 마음 치유의 처방전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죽고 싶지만, 서울대는 가고 싶어》, 《죽고 싶지만, 서울대는 가고 싶어2》, 《건강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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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공부는 성적을 올리는 기술이기 전에, 무너진 사람이 다시 자기 삶을 붙잡는 방식이다. 저자는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갔다고 말하지만, 이 책의 진짜 힘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포기하고 싶었던 한 사람이 끝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책상 앞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말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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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미 틀렸다고 여기는 사람, 자기 인생을 다시 한 번 붙잡고 싶은 사람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공부는 때때로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다. 이 책은 그 희망을 뜨겁게 증명한다. 공부는 저자에게 지식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흩어진 자존감을 주워 모으는 수행이었다.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의자에 앉아 버틴 시간들이 쌓여 기적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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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자신이 레벨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 합격증과 의대 합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 깨달았다. 공부는 단순히 좋은 대학을 보내주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은 공부 천재의 자랑 섞인 비법서가 아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공부를 통해 간신히 돌아온 남자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자, 독자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응원가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 이미 오락실에서 ‘일만 시간’을 채웠다. 무엇이든 일만 시간동안 노력하면 권위자가 된다는 말,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는 동네 오락실의 일인자였다. 누구도 저자에게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동네 형들에게 저자는 여러 번 두들겨 맞아야만 했다. 저자는 게임이 좋았다. 형들에게 이겨서 두들겨 맞으면서도 게임이 좋았다. 오락실은 저자의 유일한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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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에 빠졌었다. 이 게임에 도 수천 시간을 썼다. 그 때는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게임에 세계에서 지존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저자는 최고가 되기 위해 PC방에서 새벽 3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새벽 6시에 출근했다. 3시간 자면 눈이 번쩍 떠지는 청춘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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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부는 30분도 집중하지 못했다. 공부만 하면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친구들이 토익학원,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너무 대단해 보였다. 공부가 막막할 땐 몇 줄이라도 써보라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생각들이 글 속에서 길을 찾을 거라고 쓰는 공부는 느리지만 단단한 길이라고 중학교 3학년 때 생물을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이 저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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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읽고 끝내지 말고, 꼭 노트에 정리해서 네 것으로 만들어봐.”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을 몇 줄이라도 써 보고, 공부한 개념을 노트에 자기 말로 풀어 쓰고, 시험 문제를 풀고 나면 오답을 자기만의 설명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출력’이었다. 그건 마치 소중한 사람과 여행을 다녀와서 일기를 쓰는 행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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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심했다. ‘쓰기’를 공부의 마지막 단계로 만들었다. 정말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면, 자신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한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식을 자신의 말로 바꾸는 연습이 공부의 핵심이 되었다. 실제로 미국 프린스턴대와 UCLA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정보를 손으로 쓰며 정리하는 학습은 단순히 읽거나 타이핑하는 것보다 이해력과 기억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저자는 생각이 막힐 때 쓰면서 정리했고, 불안할 땐 글로 자신을 다독였다. 반복적으로 쓰는 동안 생각은 점점 선명해졌고, 어제보다 한 뼘 자란 자신을 글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글을 읽은 뒤 ‘3줄 요약’을 써본다. 핵심 내용을 짧게 정리하는 훈련은 글의 줄기를 잡는 데 탁월하다. 처음에는 단어만 나열되더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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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다 보면 문장이 생기고, 결국 스스로 이해한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아홉 살의 어느 밤에 할머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집 밖으로 나왔다. 골목에서 친구 동생을 만났고 우리는 철문이 굳게 닫힌 공사장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자신은 뒤로 걸으며 동생을 지켜보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곧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 침대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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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손을 쥔 채 기도하는 중에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아버지는 흐느끼며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흐느끼며 “하나님이 너를 크게 쓰실 거야”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훗날 목회자의 길로 걸어가길 원했다. 아버지는 저자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중고등부 교사로 헌신하였고, 새어머니는 성경 필사를 통해 저자의 신앙을 다지는 데 더욱 열심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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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느낄 때마다 저자 자신은 부담스러우면서도,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니 사춘기가 되자 다른 꿈이 자라났다. 자신은 말을 또박또박 잘 하지 못했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은 오락실 사장 또는 만화방 사장이 되고 싶었었다. 어릴 적 저자의 안식처가 되어준 장소 계속 머물고 싶다는 소망이 싹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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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자신의 꿈이 생겼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목사가 되기 싫다고 고백했을 때 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운 실망의 그림자를 잊을 수 없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통해 저자만의 공부 방법을 체득했다. 아무리 훌륭한 강사의 설명이 있어도 결국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고 소화해야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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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공부방법이 생기니 주변 사람과 환경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방식대로해보겠다는 조용한 결심이 생기자 마음이 한결 단단해졌다. 진짜 실력은 ‘혼자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PC방에서 살던 스물세 살 6개월 뒤 서울대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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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더라도 딱 한 번만 도전해보자고 다짐하고 6개월만 미친 듯이 공부해보자고 했다. 제대 후 저자는 목숨을 걸고 공부에 매달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저자는 서울대 약대에 합격했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공부는 인생을 바꾸고 책을 읽고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30살에 신학 공부를 또 한다고 한다. 저자가 나중에 목사님이 돼서 청소년들에게 공부가 인생을 바꾼다고 설교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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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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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엄마가 매일 글을 쓰시는데 좋아 보여서 나도 될 수 있으면 매일 글을 쓰고 싶기는 한데 그게 쉽지는 않다. 책을 보고 많은 참고를 하고 싶다. 저자 라비니야는 일상을 기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사랑한다. 소설과 에세이 등 장르의 구없이 글을 쓰고 있으며, 평생의 꿈은 끝내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울다가도 배는 고프다⟩와 ⟨무탈한 하루에 안도하게 됐어⟩, ⟨내향적이지만 집순이는 아닙니다⟩⟨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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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랜만에 자신을 위한 기록을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읽고, 쓰는 생활을 이어오면서도 그것이 늘 결과를 위한 일이었을 때는 쓰는 즐거움보다 피로가 쌓여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더 잘하고 싶은데 생각 만큼 되지 않았고, 기대보다 부족한 결과 앞에서 자책하기도 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거나 돈을 벌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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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었고, 자신 안을 지나가는 감정의 결을 이해하고 싶었다.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글을 써왔던 것이다. 살기 위해서 흔들리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두서없는 문장을 적었다. 매일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듯, 마음의 결을 빗고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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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쳐 지나가는 상념에 이름을 붙이고, 엉켜 있던 사유를 풀어내며, 흩어진 감정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일, 글 속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풀어쓰고, 집요하게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오래 외면했던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 저자는 글쓰기가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듯, 보이지 않는 내면을 돌보는 데에도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다. 저자에게는 그 역할을 글쓰기가 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 않다.



저자는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한 날도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서툰 시작을 거쳐야만 익숙해진다. 저자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사소한 기록이 무너져 있던 마음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기술에 관한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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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잘 살아보고 싶었던 한 사람이 글을 통해 자신을 붙들어온 시간의 기록이자, 끝내 살아남기 위해 써온 생존적 글쓰기에 보내는 예찬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떻게 매번 쓸 거리가 있나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세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쓸 만한 글감이 없어서 고민하는 일은 그간 거의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은 차를 우리는 일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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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별스럽고 까탈스러운 구석이 많아, 매일 맛이 다르다는 점이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같은 차라 하더라도 그날의 온도와 기분, 컨디션, 계절에 따라 건엽의 상태가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차를 마셔도 쉬이 물리지 않는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영양 섭취와 적절한 활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의 사고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읽기는 섭취에 가깝고, 쓰기는 그 에너지를 밖으로 순환시키는 행위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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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생활은 섭취와 배설이 균형을 이루는 신체의 순환처럼 의식적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내면이 텅 빈 상태에서는 어떤 사유도 깊어지기 어렵다. 반대로 이미 가득 찬 곳에 계속 무언가를 밀어 넣기만 하면 오래된 곡식이 곳간 안에서 서서히 썩어가듯 생각 역시 정체되거나 편협해지기 쉽다. 읽기와 쓰기 사이에는 각자에게 맞는 균형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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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분동이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지 않도록, 지금의 자신은 읽기에 가까운 상태인지, 쓰기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는지를 종종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정직함이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을 때의 저자는 메모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붙잡아 두기보다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 오래 잠겨 있던 날, 문득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가만히 그 이유를 되짚어보면, 며칠 동안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울프 일기』가 남긴 여운이 컸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기에 대한 집요한 애정이 있었다. 그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하나 있다. 위대한 작가라 해서 언제나 확신이 찬 상태로 문장을 써내려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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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토마스 만은 “작가란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더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는 “글쓰기의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먼저 뻔뻔함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안 디디온 역시 “흠잡을 데가 많은 문장이어도 한 문장 한 문장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계속 써나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성실한 기록 습관에 깊이 자극받아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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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고 당장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마감을 재촉하는 타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기의 글쓰기는 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그 이후 저자는 기록에 진심으로 임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속에 있는 경험과 생각이 아무 흔적 없이 망각의 통로로 흘러가는 모습을 두 손 놓고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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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남기고 이해하기 위해 기록해왔다. 기록은 자기표현 욕구를 가장 인간다운 방식으로 드러내는 행위이자, 기억을 유실하지 않고 붙들어두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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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글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록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서 오는 실망,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형편 앞에서 오는 실망, 자신의 힘만으로부터 아주 잠시라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기 언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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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여백을 글씨로 채우다 보면 오늘의 내가 미래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이 책의 문체는 따뜻하고 재미가 있다. 글쓰기가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인생도 나만의 언어로 끓임없이 써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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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 사람이 서툰 당신을 위한 심리학
성유미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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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 관계는 항상 힘들고 인간관계중에서도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신경 쓰이고 잘해야 하는 것 같다. 저자 성유미는 대한민국에 단 37명뿐인 국제정신분석가이자 20년 경력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정신과 전문의로 일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돕고자 로아정신분석클리닉 원장으로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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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진료실과 상담실 외에도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에 집필한《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가 임문 분야 1위 및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이후 클리닉에서 관계가 어려움을 겪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관계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지켜야 할 ‘나’가 생겼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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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가 더 어려워진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어른이 되면 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 《선생님, 향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 주세요》등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지켜 내는 힘을 갖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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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자신과 투쟁하고, 가족과 부대끼고, 인생의 가장 가까운 이들과 부딪치며 삶의 강을 건넌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 표현했다. 그러나 고통받는 것도, 권태로워하는 것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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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틈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느라 늘어져 버린 마음의 심줄, 분주함 한가운데로 끝없이 밀려드는 권태는 멎어 버린 심장처럼 어른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연인을 살피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식을 품에 안고, 벗들의 생일을 챙기는 사이, 정작 삶은 우리를 두고 저만치 흘러가 버린다.



바쁘게 사느라 자기 생일에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못 얻어먹은 사람들, 남의 촛불을 밟혀 주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흘러내린 촛농만 남은 사람들, 평생의 주제가 오직 돌봄과 헌신이었던 이들, 아파도 병상에 일주일조차 누워 있지 못하는 가련한 어른 생명체들이 이 책을 봐야 한다. 이제는 본인을 살필 때라고, 헨리 나우웬은 “내 집 주인은 나이니, 내가 먼저 자신을 환대해야 비로소 다른 이들도 진심으로 환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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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스스로를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깨진 유리창이 되어, 세상이 함부로 대하는 사람으로 전략하고 만다. 깨진 유리를 갈아 끼우고, 안팎을 정갈히 닦고, 자신의 삶에 작은 꽃밭 하나를 일굴 때, 비로소 타인도 우리 곁에 마음 놓고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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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엇보다 자신을 귀히 여겨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람이 싫어진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오래 고민하다 털어놓았는데 상대가 별것 아니라는 듯 반응하거나 원치 않는 조언이 계속 쏟아질 때의 답답한 마음이 몇 번 쌓이다 보면 말을 꺼내기 전에 계산부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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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까, 괜히 이야기했다가 내 약점이 되는 건 아닌가하는 식이다. 그렇게 피로한 계산이 반복되면 자연히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힌다. 그 빈자리를 AI가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AI는 고민의 경중을 판단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 내도 절대 지치지 않는 데다 말투와 스타일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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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AI가 특별히 좋아서라기보다는,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답답함이 쉽게 해소되지 않으니 AI와 문제를 나누는 것이다. AI와 처음부터 깊고 내밀한 고민을 나누는 경우는 많지 않다. 궁금한 것을 묻거나 간단한 작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AI에 손을 뻗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다.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도 하게 된다.



가족처럼 늘 함께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쯤은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우리 집은 원래 그래요.”“가족이라 편해서 그런 거죠.”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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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넘기는 동안에도 상처는 조금씩 쌓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 더 아프고, 가까운 사람의 말이라 마음이 더 오래 맴돌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부부관의 가장 특이한 지점이다. 이렇게 별것 아닌 말에 크게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는 비슷하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 저변의 심리는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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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는 상대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크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말 한 마디에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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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무슨 일을 함께 하지 못하면서, 왜 이렇게 정리 못 하느냐고 타박하면서도 정작 한 번도 같이 해 준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을 같이 하자는 남편의 말에서 엄마의 빈자라가 더 뚜렷하게 떠오르게 된다. 타인의 통제를 꺼리는 성향 때문이다.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사소한 지적도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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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은 말에도 큰 상처를 받곤 한다. 부부 싸움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배우자가 아니라 과거부터 함께해 왔던 자신안의 감정들과 씨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돼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로망이 있지만 그건 쉬운 것 같지는 않다. 진정한 사랑이 편안한 사랑이니라니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고 관계가 쉬워지는 게 아니라 계속 책으로 공부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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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2027 연세대(미래)·아주대·서울여대 인문·사회 논술 기출문제와 예시답안
김태희 지음 / 지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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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김태희이다. 논술을 위한 ‘요약’ 이란 글의 중심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글 핵심 내용을 짧고 굵게 정리하는 작업이 곧 요약이다. 글을 읽고 그 핵심 내용을 얼마만큼 잘 찾아낼 수 있는가다. 그 핵심내용은 곧 글의 논리적인 뼈대 (주장과 근거, 결론과 전제, 논점과 논거)를 이루며, 글의 논증(글 전체의 요지를 담은, 글의 중심 생각)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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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논술을 위한 요약이란 글의 ‘핵심 어휘와 중심 단어’를 사용하여 그것들을 논리적∙체계적으로 연결하면서 글 전체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사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재구성의 의미는 글 내용의 핵심을 추려서 압축한 후 이를 자신의 언어로 ‘재진술’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글 내용의 핵심어 (주제개념)에 맞게 적절한 언어로 수정∙변경하면서 글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곧 글 내용의 핵심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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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구성의 의미는, 글감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용어와 서술을 중심문장으로 끌어와 보태고 더한 다음, 주제개념을 따라 통일되고 일관되고 일관된 용어와 서술로 정리하는 일련의 언어적 재해석 작업 (특히 문학이나 과학 관련 글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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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에서 요약은 글의 핵심 내용을 담은 중심문장을 찾고, 이를 중심으로 글의 논지를 판별하여 해설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을 찾아 타당한 논거를 더하는 등, 일련의 가치판단과 복합적인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그 방법적 요령은 글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 관계를 유기적으로 전개하면서 글 내용의 핵심을 기술한다. 그리고 글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추상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핵심은 군더더기 말을 없애고 중심문장을 중심으로 가능한 짧게 요약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이 있다. 각 단락의 핵심 문장 또는 중심생각, 핵심 내용을 찾아낸 후 이것들을 그저 연결하기만 하면 요약이 된다. 제시문의 각 단락이 같은 비중으로 중요할 때는 그런 식의 요약이 타당할지 모르나, 설명과 논증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에서는 각 단락이 같은 비중으로 중요성이 있다고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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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단락별 요약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글 자체에서 논리적 뼈대(핵심내용)가 들어있는 부분만 추려서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제시문 요약을 잘하려면 글의 중심 생각을 간략히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길고 복잡한 글일수록 핵심을 찾아 간략히 요약해야 한다. 제시문이 길고 복잡할 경우 요약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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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에서 단락이 명확히 구분된 경우라면 그것에 맞춰서 단락별로 글 내용을 순차적으로 요약한 후, 그 요약된 글을 다시 압축∙정리한다. 단락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은 지문으로 글 전체의 길이가 너무 길어 내용을 효과적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각 문장의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하여 두세 단락(3~5개의 문장 정도로 구성된 형식 단락)으로 임의로 구분하여 글 내용을 짧게 요약한 후, 단락별로 요약된 글을 다시 하나의 단락(내용 면에서 부합하는 여러 개의 형식 단락을 한데 묶은 내용 단락)으로 재구성하면서 거듭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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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임의의 ‘형식 단락’으로 짧게 끓어가며 정리하거나, 또는 내용 면에서 서로 관련되는 형식 단락을 한 데 묶어 이를 ‘내용 단락’으로 분류해가면서 정리한다. 참고로 시, 소설, 수필과 같은 문학 작품을 논술 제시문으로 출전한 경우에 많은 학생은 글 내용을 요약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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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설처럼 서사 구조를 따르는 글 내용의 요약에서 특히 그렇다. 인물과 사건에 초점을 두고서 이를 중심으로 핵심 줄거리를 끌어내면 된다.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요약할 때 자칫 글이 장황해질 수 있으므로 이를 주의해야 한다.



사건이나 현상은 주된 갈등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지는 게 일반적이므로, 등장인물 간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하되, 논제가 제시하는 주제개념에 맞춰서 서사 구조의 핵심만을 간추린다.

요약의 핵심을 주어진 제시문 내용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간추려 정리하는 데 있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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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면 안 된다. (표절로 간주 한다). 글의 핵심 논지를 찾아 밝힌 후 이를 적절한 언어로 압축 표현한다. 제시문 주장을 자신의 언어로 바꾸어서 표현하되, 제시문에 들어있는 핵심용어는 반드시 그대로 살려서 글 내용의 핵심을 기술한다. 제시문을 요약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원 글 (제시문)에 없는 내용을 덧보태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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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글을 비판하거나 자기주장을 덧보태도 안 된다. 주어진 글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명확한 근거가 없이 일방적인 주장만을 나열해서도 안 된다. 철저히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글 내용을 기술해야 한다. 요약은 글의 재구성이지 재창조가 아니며, 자기주장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객관적인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시문 자체는 논리적인 설명만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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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을 단박에 통찰하기 어려울뿐더러,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수준 낮은 제시문은 출제되지 않는다. 요약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독해력에 있음에 유념하여, 제시문을 폭넓게 살펴 읽으면서 글 전체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을 요약할 때는 반드시 발문의 물음부터 꼼꼼히 읽은 후, 논제의 요구와 지시에 맞게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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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논거-주장’ 내지는 ‘주장- 근거’ 순서로 요약 글을 작성한다는 식으로 사고를 구조화하려 들 경우, 이는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 전체 요지 파악이 중요하다며, 이를 토대로 글 전체 내용을 어떻게 담아 적절히 요약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논술은 제시문을 잘 요약하고 발문에 따라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글자수나 맞춤법, 띄어쓰기도 잘 지켜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을 잘 알려줘서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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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
사랑좋아해적단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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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실에서 사랑을 직접해 본적이 없어서 더 불안하고 하게 되면 잘하고 싶어서 사랑에 대한 책은 무조건 본다. 저자는 사랑 좋아 해적단이다. 저자는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미녀 사랑좋아해적단 (aka말량츄)이다. 저자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활발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폭력을 허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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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위로 대신, 이별 후 소리 죽여 울다가도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으며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의 찌질하고도 솔직한 모습을 여과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사랑하러 가는 바보 같은 우리, 치열하게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준비한, 세상에서 가장 맵고도 다정한 향해 일지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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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믿으세요” 의미가 있는 말인가? 사실 요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랑은 망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어쩌면 훨씬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한다. 우리는 왜 항상 평화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음에도 누구보다 치열한 사랑을 하는가? 왜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는가? 왜 스스로 정신병에게 저벅저벅 걸어가는가? 사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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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원래 힘든 거라는 말, 저자는 그 말 절반만 믿는다. 힘든건 맞는데, 요즘 사람들은 연애는 힘든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갈아 넣는 수준이다.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통제하고, 지킨다면서 숨통을 조이고, 노력한다면서 상대의 자존심을 부수고, 이해한다면서 결국엔 ‘너가 문제’라는 말로 결론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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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또다시 돌아가면서 그게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만능인지, 얼마나 저렴하게 쓰이는지, 저자는 그걸 매일 확인한다. 사랑이라는 말 하나면 불안도, 집착도, 폭력도, 비겁함도 다 포장한다.



저자가 결론을 내린 건 단순하다. 사랑은 재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근데 확실한 건 하나다. 사람을 재앙으로 만드는 사랑이 너무 흔하다. 사랑은 예쁘게 포장한 채로 미화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더러운 짓들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더럽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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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연애를 심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심판은 이미 당사자들이 받고 있다. 지금 겪는 게 사랑인지 재앙인지 한 번쯤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해 보자면 자신도 알고 싶다. 사랑이 진짜로 재앙인지, 아니면 우리가 재앙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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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도파민과 착한 도파민, 당연히 나쁜 도파민이 더 재밌다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 착한 도파민에 한 번 절여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뭐해”“어디야”“오늘 만날까? 보고 싶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슴슴한 대화, 아무것도 안 해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 이렇게 불안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아무것도 없는데 뇌가 녹을 수 있나? 이게 사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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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참 이상하다. 움직이기 정말 싫어하던 자신이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고, 귀찮은 건 절대 안 하던 자신이 어느 순간 함께할 데이트코스를 짜고 있고, 오늘만 살고 죽자는 자신이였지만 그 사람과 미래를 그린다. 자신이 살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가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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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기엔 혐오가 섞였고 혐오라기엔 사랑이 섞인 아주 아주 이상한 감정, 우리는 보통 그 감정을 애증이라고 부르곤 한다. 인생 살다보면 한 번 쯤 본적 있는 멘트,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해” 놀랍게도 저자 자신 또한 그 말을 해 봤다. 악연인 경우에 그런 말을 하는데 사실 너무 사랑하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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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랑하는데 끓어낼 수가 없으니까 그냥 시한폭탄을 몸에 칭칭 감고 가다가 끓어낼 때 그 말이 나오는 거다. 그냥 계속 터지기 전까지 그냥 안고 가는 거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렇게 서로를 죽음으로 안고 가는 거다. 그냥 개구리 요리를 할 때 서서히 물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눈치 못 채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개구리랑 다른 게 뭐지? 정말 자신이 개구리보다 나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나? 언젠가 그 사람과 나, 둘 중 하나가 어쩌면 둘 다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같이 가기를 택한다. “너 같은 거 죽어 버려,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라고 한지 15분 만에 서로 사랑을 나눈다. 서로 죽으라고 목을 조른 10분 뒤에 같이 밥을 먹는다. 진짜 정신병자도 이런 정신병자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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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싸우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부 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기대할 일도 없으니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사랑하니까 싸운다’란 ‘싸우는 것이 사랑이다’는 같은 말 같겠지만 다른 말이다. 보통 ‘사랑하니까 싸운다⨠⨠⨠싸우는 게 사랑이다’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연애 초반에는 사랑하니까 싸울 수 있지 라고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싸우는 빈도가 잦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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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잔뜩 싸우며 맞춰나가다 보면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때가 오는데 그때가 되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서 안 싸우는 건가?’ 어림없는 소리, 절대 아니다. 자신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제발 헷갈리지 마라, 너희들 싸우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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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과 서브가 헷갈리면 본질을 잃게 된다. 사랑을 지켜야 한다. 애증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애매해서 사랑과 혐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줄타기가 더러운 이유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사랑만 하면 편하다. “좋아”라고 말하면 되니까? 혐오만 하면 더 편하다. “꺼져”라고 말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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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애증은 둘 다 한다. “꺼져”“근데 가지마”“싫어” “근데 사랑해” 애증은 사랑의 탈을 쓴 증오가 아니다. 증오의 탈을 쓴 사랑도 아니다. 그냥 둘이 침대에서 뒹구는 상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는다. 이 책을 대강 읽었는데 더 깊이 자세히 읽어야 할 것 같다. 사랑은 망한 것 같지만 망하지 않았고 패러독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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