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 휴가가 있어 중국에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가 유행중 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행은 포기하고 국내 여행지를 찾던 중,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강원도가 가고 싶어졌다.
인터넷으로 강원도 여행지를 찾는데 영월 동강이 눈에 띤다. 남편도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3박4일 강원도 여행 중 하루를 영월 여행으로 정했다.
영월을 가기 전날 태백시에 들려 태백산을 올랐다.
태백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작은 산들이 굽이굽이 장관이다.
태백에서 영월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지도상으로는 태백의 경계에 영월이 있어 태백에서 조금만 가면 영월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월에서 일단 숙소를 잡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태백에서 영월 경계선을 넘었는데도
잠잘 곳은 나오지 않고 길은 굽이 굽이 돌아 좌우로 계속 산만 연속이었다.
태백산을 등산하여서 그런지 몸은 피곤하고 잠잘 곳은 나오지 않고 .....
기진맥진한 채로 거의 60여 키로를 운전하여 영월읍에 도착하였다.
고속도로 60키로와 국도, 더구나 강원도의 산간 도로와는 다른데다가
몸이 피곤한 탓인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숙소는 영월 읍내 시장 앞, 어묵을 시켜 저녁으로 먹었다.
그렇게 영월과 첫 인연을 맺었다.
강원도로 출발하기 전 영월에 신청하여 받은 영월 관광 책자에 동강 어라연이
소개되어 있었다.
자연 경치를 보는 것이 우선인지라 첫 방문지를 동강 어라연으로 잡았다.
어라연을 갈 수 있는 입구에 가니 큰아들 정도 나이가 되어 보이는 청년이 있다.
코스를 물으니 잣봉으로 올라가서 어라연으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를 권하였다.
3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반대로 어라연에서 잣봉으로 가는 코스는 가팔라서 오르기가 힘들 것이라 했다.
우리는 그 청년의 말에 따라 잣봉을 거쳐 어라연으로 가는 순환코스를 택했다.
어제 태백산 산행을 했지만 나의 몸은 비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날아 갈 것
같았다.
주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산에서 내려오는 부부 외에 한 시간을 가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절경이라고 관광 책자에 소개 되었는데 이렇게 한산하나(?)
의문을 품었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면 사람들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나의
걸음은 힘찼다.
한 시간 가량 가니 드디어 어라연 및 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하였다.
발아래 펼쳐지는 동강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그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발아래로는 급경사로 산이 내려가 강을 만나고 있다.
문득 드는 의문 하나는 순환코스로 출발지에 가려면 돌아가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강위로는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유일한 길인 것 같고 또 다른 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는 길로 코스를 잘못
잡아 거꾸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치고 그 길로
조금 더 올라가니 잣봉이 나왔다.
가까이에서 어라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팻말에는 어라연 1키로 라고 되어 있었다.
아! 여기서 1키로를 더 가면 어라연이구나!!
조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어라연 까지 가는 것이구나!
어라연 까지 가는 길은 급경사 길이었다.
입구에서 만난 청년의 잣봉에서 어라연으로 가는 코스를 택하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산을 올라본 사람은 안다. 내려가는 길이 오르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더군다나 어제의 산행으로 몸이 지친 상태였으니 더욱 힘들 수 밖에.
아 ~ 그런데 잣봉까지 가는 길도 안내 표지판이 인색하게 드문드문 있더니만.
한없이 길고 경사지게 내려가는 그 길마저 표지판이 없어 제대로 입구를 찾아
가는 중인지 끝없이 불안하였다. 뿐만이 아니다.
경사가 급해서 말뚝을 세우려고 한 모양인지 군데군데 윗부분이 날카로운
말뚝만 있고 연결 로프도 없다.
산악회 회원들이 붙여 놓은 노란 표지에 의지하여 간신히 1 키로를 내려가
어라연에 섰다.
주위를 도는 물줄기와 강 건너편에 보이는, 걸어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산과 절벽들을 구경하면서 힘들게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아 ~ 이제는 강 옆으로 길이 나 있을 것이고 이제 유유히 강을 보면서
유람하듯 걸으면 입구에 도착하겠거니 했다.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다시 1 키로를 올라 잣봉을 거쳐 입구로 가라 한다면 산을 오르기
좋아하는 나도 싫겠다.
우리 부부는 힘든 것도 잠시 잊은채 동강 물을 손에 적시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다.
기쁨도 잠시 뿐,
우리가 출발하였던 입구로 가는 길은 평지는 평지인데 거의 큰 돌밭 투성이였다.
발밑의 돌 때문에 강을 구경하면서 걷다가는 크게 다칠 것 같았다.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산에는 아주 가끔이라도 있던 안내 표지판이
그나마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향하고 있는 길이 입구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 잣봉으로 올라가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는 것은 너무 싫었다.
강가에 울퉁불퉁한 돌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니 다행히도 멀리서 등산복
차림의 사람이 보였다.
부부 이후에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입구에서 잣봉으로 오르지 않고 직접 어라연 쪽으로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으니 아! 그냥 이렇게 돌을 밟아 가면 입구로는 갈 수 있구나.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군데군데 팻말만 좀 있었다면 이렇게 마음 졸이며 여행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라연을 관할하는 영월군에서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한다.
표지판은 항상 초행인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한다.
어라연을 이미 찾아본 사람에게는 표지판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초행길이고 길을 물을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표지판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꼭,꼭 한번 답사해서 초행자가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장소마다 표지판을
설치해 주길 건의한다.
그래야 어라연을 방문한 초행길의 관광객이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자갈, 돌밭 길을 한참 가니 위쪽에 집이 하나 있는데 할머니가 나와 앉아 있다.
길을 물으려 할머니에게 가니 할머니와 같이 있던 스피츠 잡종개가 꼬리를 치며
반긴다.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할머니는 자기가 농사지은 것이라 하면서 상추를 가져가라 하셨다.
그냥 받을 수 없어 천원을 내미니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 상추를 더 많이
담아 주신다. 시골 인심이 너무 정겹다.
상추를 받아들고 길을 나서니 잡종개도 우리를 따라온다.
가라고 손짓을 하여도 한사코 따라온다.
그러더니 한참을 따라오다 알아서 돌아서 간다.
저 나름대로 배웅하는 방법인 모양이다.
할머니를 만나고도 한참을 걸었다.
아까와는 달리 길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인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과 강의 연속이다.
햇볕은 그날따라 따갑고 몸은 피곤하고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산과 강이다.
참!! 속으로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영월의 진면목이구나!
강이 계속되고 강 양쪽으로 산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곳! 이곳이 영월이다.
박목월 씨가 ‘가도 가도 끝없는 남도 삼백 리’ 라고 했다.
아 ~ 가도 가도 끝없는 동강, 동강...
3시간 30분이면 된다는 거리를 쉬지 않고 불안해하며 4시간이 조금 넘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 여행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동강 어라연을 어찌 잊겠는가.
점심식사 때가 되어 영월 읍내에 있는 단종 묘 앞에 차를 주차하고 건너편
음식점에서 곤드레 나물밥을 시켜 먹었다.
처음 먹는 나물인데 담백하고 맛있다.
식사 후 단종 묘에 들러 단종의 짧은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약관에 이르지도 못하고 삼촌의 사약을 받아 숨질 때 단종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지천명이 되어 가는데도 죽음이 두려운데...
권력 때문에 삼촌이 조카를 죽이는 칼부림을 하다니.
아마 세조도 평생 마음이 편치 않았으리라.
단종묘의 넓은 공원이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게 관리도 잘 하였고 막힌 곳 없이 사방이 뚫려 있었다.
바람이 시원하여 잠시 벤치에 앉아 지친 몸을 의탁하였다.
단종묘 가까운 곳에 천령포가 있다.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곳인데 조그마한 섬이다.
배가 없으면 외부로 나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일부러 그런 장소를 골라 유배시킨 것이리라.
배를 타고 건너가서 단종이 서울 쪽을 보았다는 망루에 올라갔다.
섬 뒤쪽은 거의 절벽이어서 탈출이 어려워 보였다.
그 주위의 경치도 참 멋졌다.
그러나 단종의 유배생활은 얼마나 답답했을 것인가.
역사의 비극적인 장소가 관광지로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몹시 아이러니했다.
김삿갓 유적지 쪽은 꼭 구경하고 싶은데...
그러면 다음 행선지의 여정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돌리고 가까운 선돌 까지만 구경하고
영월을 떠나기로 했다.
선돌은 한문으로 입석이다.
선돌은 순수 우리말인데도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입석하니까 금방 의미가 떠오른다.
선돌을 구경하는 망루에 올라보니 아래로 강이 흐르고 큰 돌 두 개가 마주보고
길게 서 있다.
돌과 강이 어우러져서 멋진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더욱 더 인상적인 것은 그 강 건너의 숲속에서 나온 길이다.
길의 아름다움... 누군가 무엇을 이루러 떠났던 길. 혹은 돌아오는 길.
헤어지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길... 길은 온갖 사연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길, 특히 시골길이 참 좋다.
사람들에게 선돌 망루에 올라 강 건너편 길을 꼭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 영월 읍내를 거쳐 정선 쪽으로 가는데 주위에 온통 산과 강뿐이다.
이곳이 영월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영월을 떠났다.
다음번에 영월에 가면 관광지 위주로 좋은 경치를 구경할 것이다.
선돌을 보고 느낀 건데 아직 못본 영월의 좋은 경치가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 같다.
영월아 ~ 다음에 또 만나자.
그때는 너를 속속들이 알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