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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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일본인 이야기 1>은 가톨릭을 중심으로 전국시대 말기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지는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일본인 이야기 2>는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진 다음 시기, 즉 에도 시대를 다룬다. 시리즈 제2권의 부제는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이다. 이러한 부제가 붙은 이유는 1권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1권은 16~17세기 가톨릭과의 접촉이 일본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톨릭 세력을 탄압하며 가톨릭이 자랄 수 없게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물론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아주 극소수의 카쿠레키리시탄들이 있었다). 1권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인 오다 히데노부의 포교 사례에서 보듯이 당시 일본 지배층 구석구석까지 가톨릭 신앙이 침투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사 집단의 권력 독점을 위해 일본의 국가 성장을 멈추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일본인 이야기 1>, 393p)

이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센고쿠 시대에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교류했던 일본은 자기 집안과 지배층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발전을 정지시키기로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에 따라 갑자기 유럽과 단절했습니다. 여러 항구에서 유럽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했던 때와 비교하면, 나가사키의 데지마와 정치 수도인 에도에서만 네덜란드와 교섭하게 된 변화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은 “네덜란드를 제외한 그 밖의 유럽 세력을 추방하고 유럽으로부터의 고립을 택한 일본이 어떻게 2백 년간 퇴보했으며, 지배층이 초래한 이 퇴보 상태에서 일본의 피지배민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했는가”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에도 시대 일반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3권은 주로 난학의 군사학적 측면과 상인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 크게 주목을 끄는 요소 중 하나가 난학의 발달이다. 일본의 발전을 논할 때에 난학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저자 김시덕은 난학, 더 정확하게는 난의학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다며, 실제 에도 시대에서 난학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잠시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리학 서적과 해부학 서적은 지적 차원에서 에도 시대의 일부 지식인에게야 도움이 되었겠지만, 실제로 백성의 삶을 더 낫게 만들었는가 하는 차원에서는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지리학 서적을 읽거나 그 내용을 입에서 귀로 전해 들어서 해외의 정보가 백성들 사이에 퍼지기는 했어도, 막부가 원양 항해가 가능한 대형 선박을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여전히 표류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난의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부학 서적을 번역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해부와 외과 수술이 활발해질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식의 수용은 무용지물이다. 쇄국의 영향으로 가장 크게 질이 떨어진 분야가 의학이었다. 전국시대, 자선 정신과 유럽식 육아법을 바탕으로 세워진 고아원, 최신 수준을 자랑한 외과 수술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에도시대에 옛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난의학이 의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지만, “에도 시대에 난의학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병은 천연두” 정도였다. 난학이라는 새로운 지식은 실용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일본의 퇴보는 항해술에서도 발견된다.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국가와 왕성한 교류를 펼쳤던 시대의 일본은 먼 바다까지 항해할 수 있는 배를 건조할 기술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가 출항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대형 선박 제조술은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었다.

이처럼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 에도 시대는 전체적으로 진보라기보다는 퇴보의 시대였다. 일본이 퇴보하게 된 데에는, 오직 지배층의 안정만을 중시했던 논리가 깔려있다. 앞서 말했듯이, 도쿠가와 막부는 정권에 위협 세력이 될 수 있는 가톨릭의 싹을 잘라 버리고 시작했는데, 비단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조도신슈, 니치렌슈와 같은 “도쿠가와 막부라는 현실의 지배 체제보다 종교를 우위에 두는 모든 종교 체제를” 진압하면서 시작된 “군사 독재 정권”이었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바로 이러한 쇄국으로 인하여 “물질적 혜택, 특히 의료 혜택을 박탈당한” 에도 시대 피지배민의 이야기이다. 1장 ‘백성들의 이야기’는, 에도 시대 경제적 착취를 당하며 살았던, 지배층에 의해 저항의 논리를 빼앗겼음에도 저항하였던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장 ‘의사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에도 시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의술과 의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리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사들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2장에서 쇄국 이후 쇠퇴한 일본 의학과 제한적이었던 난의학의 성과를 지적하면서, “퇴보의 기간 중에 괴로워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퇴보를 회복하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에 안타까워한다. 그가 난의학의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덜란드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와의 관계 단절을 선택함으로써 일어난 쇠퇴와 그 결과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씁쓸할 뿐이다.

<일본인 이야기>는 일본사 통사 책이 아니다. 중요한 부분을 선택하여 일본인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책 뒷면 소개 문구를 인용하면, “그동안 에도 시대를 말할 때 부각되지 않았던” 역사를 부각하였다. 그래서 이 책만으로는 일본사나 에도 시대 전체상을 아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는, 이계황의 <일본근세사>(혜안)나 일본사학회의 <아틀라스 일본사>, 그리고 아사오 나오히로의 <새로 쓴 일본사> 등을 읽으며 채워나갈 수 있겠다.

여담. 1권 달리 2권에서는 참고문헌이 수록되어 있다. 1권에서는 후주만 달려 있었다. 아마 참고문헌도 넣어달라는 요청이 꽤 있었나 보다. 늘 흥미로운 책과 연구를 많이 소개해주니, 참고문헌이 생긴 것은 반길만한 소식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를 통해 얻은 소소한 수확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문명론의 개략> 9장에서 비판하는 도쿠가와 시대 학문과 종교에서의 ‘권력의 편중’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후쿠자와는 일본의 신도나 일본 학문, 특히 유학은 권력자와 지배층을 위한 학문과 종교였지, “독일개인(獨一個人)의 기상(individuality)”을 고취하지 못했다고 광범위한 비판을 날린다. 이는 복수의 중심 속에서 자유의 기상이 발달할 수 있었다는 그의 서양 문명 이해와 맞닿는 비판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저항의 가능성을 제거하면서 시작된 정부였다. 이렇게 싹 다 정리했으니, 남은 것은 위협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체제에 순응적인 종교들 뿐이었을 터이다. “종교는 사람 마음의 내부에서 기능하는 것으로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독립적이며, 털끝만큼도 남의 제어를 받지 않고, 털끝만큼도 다른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살아 있어야 마땅한데 우리 일본에서는 곧 그렇지 않다(<문명론 개략>, 소명출판).”라는 후쿠자와의 일본 종교 비판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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