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그 여자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유리창 문을 내다보았다. (중략) 리유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는 아내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이 문장이 내내 따라다녔다. 의사 아내의 젖은 얼굴이 리유, 그랑, 타루, 랑베르, 코타르, 파늘루 등의 이름만큼이나 가슴 한복판에 새겨졌다. 이 젖은 얼굴은 ‘페스트’의 결말을 이미 예견하게 하는 얼굴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이름으로 계속 호명된다고 해야 할까. 그랑의 전처(前妻) 잔, 타루의 어머니, 랑베르의 사랑하는 여인으로. 소설 속에서 정확한 얼굴과 이름을 갖지 못한 이 여인들이 나는 모두 의사의 아내(등을 돌리고 있다 돌아본 젖은 얼굴)로 여겨졌다. 페스트는 높고 길게 둘러싸인 ‘벽’이고, 젖은 얼굴의 그녀는 높은 데 열린 ‘창문’이다. 누군가(랑베르)는 어떡해서든 그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탈출하려고 하며, 누군가(그랑)는 그 창문과 살짝 보이는 바깥 풍경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하며, 누군가(타루, 리유)는 열린 ‘창문’의 존재와 가치를 알지만 그럼에도 함께 갇힌 사람들을 먼저 바라본다.
만일 창문이 아니라 ‘문’이라면? 그녀가 열린 ‘문’이라면 어땠을까? 이런 가능성을 상상하자 곧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의사 아내는 ‘문’이다. 그렇지만 그 또한, 또 다른 ‘목구멍 깊은 곳에서 느끼는 눈물’임에 틀림없었다. 페스트는, 백색 질병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이 없는 ‘바깥’은 없다.
‘그리고 자기도 그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다를 바 없으며, 사람에게는 언제고 반드시 감옥이니 일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에 지친 나머지 한 인간의 얼굴과 애정 어린 황홀한 가슴을 요구하게 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