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페이지 가득 무언가를 썼다. 하지만 다 지워버렸다. '일방적 지시'와 '가르치며 배우는, 배우며 가르치는' 관계의 대립에 대해, 미국과 벨기에로 대표되는 서구 열강과 아프리카의 대립,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수많은 신을 품은 토착신앙의 대립, 다수결의 선거제도와 만장일치의 합의제도의 대립, 북위 33도의 기후와 적도 기후의 차이, 모국어와 외국어의 대립, 미개라는 불리는 것과 진보라고 불리는 것의 대립, 자라는 식물과 움직이는 곤충, 동물들 다수가 독을 품었고 강에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 먹는 땅에 대해, 수탈과 가난. 무엇보다 성장에 대해, 더더욱 무엇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에 대해. 여성성의 희망에 대해.

 

하지만 이런 일반화된 말들은 모두 금세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아프리카가, 다섯 명의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하다. 소설의 매력은 이 두 개의 샘물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기에 나의 말, 나의 언어는 이 두 가지를 그려내는 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요즘의 내 혀는 내가 느끼기에도 남성성에 가깝다. 까끌하고 단편적이고 단순 지시적이기까지 하다. 작은 뉘앙스를 놓치지 않는 섬세함은 전혀 없다. 요즘 나의 말은 피폐해졌고 사랑이 없고, 바람이 살랑거리지 않는다. 어정쩡한 개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일지도 모르겠고, 추상노동의 힘이 너무 많이 나를 갉아먹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새를 잡는 올무 같은 글이 될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두 가지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아프리카. 그리고 어머니 같은, 누이 같은, 친구 같은, 막내 동생 같은... 그녀들의 목소리. 우선 이것만은 잊지 않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3-03-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지. 궁금해지네요. 지워버리기 전의 글들도 물론.

전 지금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을 읽는 중이에요. 색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충격적인 이야기도 아닌데 엄청 푹 빠져서 읽고 있어요.

dreamout 2013-03-06 21:00   좋아요 0 | URL
기진맥진한 글이었죠.. ㅜㅜ

최근에 나온 웬만한 외국소설들 제목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소설도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