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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순간들』은 뜻밖에도 눈 먼 사람들에게 끌린 사진가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 실린 폴 스트랜드의 「Blind Woman」을 보면서 레미제라블이나 케테 콜비츠를 떠올렸지만, 아니다. 내 생각은 진실에 거의 닿지 못했다. 제프 다이어가 옳다. 눈먼 여인.을 찍었다는 점. 너무도 분명해서 더 덧붙일 것도 없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눈 먼 사람들에게 이끌린 사진가들의 숨겨진 욕망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통찰은 돌직구가 되어 내 편견을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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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우드 바이블』 읽기는 인류학 서적 읽기와 비슷하다. 학문적이어서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1950년대 아프리카 콩고가 배경인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해 내가 까막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프리카만큼 1950년대 미국 조지아에서 살다 선교 목적으로 콩고에 온 목사 네이선 가족의 ‘아메리카’ 관습조차 내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책에서 다뤄진 수많은 사례들만큼이나 어느 정도는 신기(?)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1950년대 미국인. 이 두 가지 프레임보다 더 흥미진진한 건 따로 있다. 엄마와 네 딸들. 이 다섯 여성 화자의 목소리.
열정적이기에 더 미칠 것 같은 고지식한 목사 네이선의 아내 올리애너, 백색에 가까운 금발의 여왕(자칭) 레이첼, 아빠의 말을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는 리아. 리아와 쌍둥이지만 선천적 반신불수인 에이다. 말괄량이 꼬마 아가씨 루스 메이. 이 목소리들.
그리고 순서. 언제나 맨 앞자리를 맡는 리아, 맨 앞자리로 나서고 싶지만 아직은 어린 루스 메이, 뒤에서 시큰둥하게 움직이는 레이첼,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며 앞서가는 자매들을 따라 잡아야 하는 에이다. 이 순서는 그녀들이 낯설고 위험한 콩고에서 이동할 때의 순서이기도 하고, 이 소설에서 ‘화자’로 나서는 순서이기도 하다. 목소리들이 사랑스러울수록 이 순서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200여 페이지를 읽은 지금, 이후로 이 순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긴장을 느끼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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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구체적 행위와 추상노동 사이의 긴장은 일상 경험의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교사라면 우리는 잘 가르치는 것과 등급 매기기 혹은 필요한 대학원생의 수를 확보하기 사이의 긴장을 느낀다. 우리가 목수라면, 우리는 좋은 테이블 만들기와 팔릴 상품을 생산하기 사이의 모순을 느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콜센타에서 노동한다면 우리는, 전화로 누군가와 다정한 담소를 나눌 가능성과 직업기율 사이에서 긴장을 느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조립라인에서 일한다면 우리는 다른-행위의 압박을 견딜 수 없는 좌절로 느낄 것이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이 긴장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추상노동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하도록, 그것을 돈의 요구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도록 이끈다는 것을 보았다’
『크랙 캐피털리즘』은 어려운 이론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읽다가 자꾸만 멈추게 된다. 즉각적으로 공감되는 내용으로 우리의 일상적 고민의 핵심에 자리한 노동의 이중적 성격을 파헤치고 있다. 이제 7부 「노동에 대항하는 행위」를 읽을 차례다.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또 계속 멈춰가며 읽어 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