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평점 :
김환기의 추상화를 과천현대미술관에서 처음 보았던 날, 유독 그것만 기억에 남았다. 2주 전 갤러리현대에 들러 구상화에서 추상화까지,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고 나서, 역시 추상화. 나는 역시 그의 추상화에 끌렸다.
둥글고 네모난 것들. 캔버스 아래 위 중간에 무의식적인 자리에 흩어져 나란히 나란히. 띄엄띄엄 돌다리 같기도 하고 베네치아 곤돌라를 묶어두는 기둥 같기도 하고 흔들흔들 거리며 앞사람을 따라가는 가족들이라거나 탁탁탁 소리를 내며 뛰어가는 아이 같기도 한, 그 귀퉁이가 동그란 네모난 것들. 안은 빨강 밖은 청색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들을 보며 기분 좋은 생동감, 약동하는 기운을 느꼈다.
황정은은 책. 책. 책. 시계소리, 잔. 잔. 잔. 잔. 하고 냉장고가, 유라. 응. 유라. 응, 부디. 부디. 대니 드비토, 팟. 착. 착. 착. 펼치고 접고 펼치고 접고, 똥꼬 똥꼬라니 똥꼬 같은 매너, 살살 쓰면 되지 살살 쓰세요, 로베르따 어쩌고 이태리 메이커에, 디디. 도도, 킥킥킥 같은 말의 리듬으로 생동감, 약동하는 기운을 만들어 낸다. 사각형 한 페이지에 색깔을 흔들림을 만들어 낸다.
아. 그런데, 황정은의 귀퉁이가 동글고 네모난 것들은. 외롭고 두렵고 슬프고,
아... 김환기의 그것들도 그랬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