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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참 재미읽게 보고 나서,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관심이 가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표지부터 책 제목까지 귀여운 느낌 물씬 풍기는 <도토리 자매> 출간소식을 알게 되었고, 또 한 번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가 일렁였다. 메일을 보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을 해준다는 도토리 자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가 궁금하기도 했었고, 얼마 전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누군가의 편지글이 주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편지글 보다는 '도토리 자매' 두 사람,
그들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매가 태어난 병원 뒷 마당에 도토리가 엄청 떨어져 있어서 이름이 돈코와 구리코가 되었고, 이 둘의 이름을 합치면 '돈구리'로 즉
도토리다.그래서 이들의 별칭이 바로 도토리 자매. 조금은 유별나기도 했던 부모를 트럭사고로 잃고 삼촌집이며 이모집이며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언니가 집을 나가 구리코 혼자 남겨져 있던 시기도 있었지만, 마침내 혼자 사는 할어버지 집에 들어가게 되고 아픈 할아버지를 보살피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떠난 이후, 또 자신들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 자매들만의 이야기가 동생인 구리코의 시점에서 이어진다.
10년이상 함께 여행을 못가서 온천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가끔은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마음들을 드러내기도 하고,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언니를 배웅하기도 하고, 자신의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들을 안고 있긴 하지만 돈코와 구리코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마음을 다스리려 하면서 그저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강했다. 꾸며지지 않은, 무언가 집착하지도 않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그런
느낌의 삶이랄까. 그리고 가끔은 그런 삶이 왠지 현실이 아닌 것 처럼, 환상같은 붕 떠 있는 듯한 그런 느낌도.
그리고 그런 삶속에 뭐든 다른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를 메일로 들어주고 싶었던 건, 자신들도 누군가의 상실로 통해 오는 아픔을 제대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이렇게 힘든
시기들 있었지만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려고 하고 있어요.' 하는 마음을 담아, 두서없는 이야기라도 귀 귀울이고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다른 이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가끔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메일에 녹아내기도 하면서 도토리 자매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자신들의 아픔도 털어 내면서 마음을 달랬고 그것이 자매만의 힐링법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키친>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죽음'이라는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삶을 살아가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에는 유독 죽음이라는 소재가 많이 쓰여지는 것 같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이나
삶들에 대한 이야기들...갑자기 작가 스스로가 그런 아픈 체험을 한게 아닌가 싶은 궁금증 마저 들게 했던 <도토리 자매>.
- 다들 두서없이 부담 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혼자 살기에 그럴
수 없거나,
가족의 생활시간대가 저마다 다르거나, 의미 있는 얘기만 하려다
지쳤거나 그런거다.
사람들은 두서없는 대화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지지해 주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p49~
- 살아 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방은 난방으로 따스하고,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 익어 가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래서
기쁘다. 얼마나 단순한지.
특별한 것은 하나도 바라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깨우친 것만
해도 좋았다. -p51~
- 너무 깊이 생각하면, 불행해질 것 같으니까, 생각지 않기로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 일은 가만히 묵히는 것이 최고다. 어느 날 떠오르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다짜고짜 두드리든지
쓰다듬어주든지, 그날 생각할 일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p64
- 어느 집, 어느 아파트의 방에나 사람의 기척이 있다. 어느
동네, 어느 창문에서 아마
그때 그 사람도, 그리고 옛날에 나와 사이가 좋았던 그 사람도,
밤을 향해 조금은 나른한 시간을 서두르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만 해도 , 마음속에
무언가가 톡 고이는 느낌이 든다. 투명하고 섬세한 것. 그것은
사실을 알고 나면 금세라도
멀어지고 마는 조그만 빛이지만, 잔잔히 고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눈을
맑게 하고 등을
꼿꼿이 펴지 않으면 안
된다.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