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로마 제국 쇠망사 - 한 권으로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나모리 시게나리 엮음, 한유희 옮김 / 북프렌즈(시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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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나모리 시게나리의 간추린 로마사

 흔히 로마사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이 참조하고 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한글 완역본이 이제 막 나왔을 정도로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표지에서 "편역, 감수"라는 칭호가 말해주듯, 이 책은 그다지 기번의 원서에 충실하지는 않다. 사실 가나모리 교수는 독일문학과 사상을 전공했기 때문에, 영국인인 기번이 쓴 책을 그대로 번역하고, 해석을 다는 것에는 영문학자의 그것보다 떨어질것이다. 하지만 가나모리는 책을 옮기거나 해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그것을 기반으로 2차저작을 한 것이다.
 30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기번이 다루었던 절정기 이후의 역사 뿐 아니라 부흥의 역사까지 전체를 다 다루고 있다. 따라서 기번의 문체나 서술은 아주 조금밖에 느낄 수 없다. 기번의 서술은 각 장의 시작부분이나 중간중간 기번의 서술에 관해서 언급 할 때 따라나오는 인용구들 뿐이며, 사실상 기번의 책이 아니라 "가나모리 시게나리"의 책으로 봐도 무방 할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에대한 안내서

 이 책은  기번이 다루지 않은 로마제국 초기의 역사들을 충분히 다루고 있으며, 사건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시간상의 전후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서술은 각 사건의 장면을 잘 서술해 주면서도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떄문에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안내서로 보는것이 좀 더 적합해 보인다.
 이 책은 보통의 소설책 한권의 분량을 30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기 때문에 각 장이 상당히 짧고, 서술도 상당히 쉽게 되어있다. (이런 정도라면 웹상에 연재분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쉬운 서술은 결국 한계를 가지고 오는데, 사건의 흐름만을 이야기 해 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빠져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특히 여러 전투에 관한 이야기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로마의 영웅들이 불리한 전세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것은 물론이고, 바바리안들(고트, 켈트 등의..)이 어떻게 로마에 편입되고, 무엇이로마인보다 강인하게 만들었는지 등등, 여러 사건들에 대한 궁극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외면하고 있다. 사건이 서술하는것은 전후의 맥락과 직접적인 원인, 결과들 뿐이기에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 밖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야 할 것이다.

로마사 로서는 충실하지만..


 이 책은 로마사로서 충실하게 흐름을 따르고 있으며, 흔히 기억하는 로마의 영광된 역사 뿐 아니라 쇠망사에 더 무게추가 가 있다는데서 간략하게 읽기 매우 좋은 책이다. 반란과 참주들의 역사나, 녹파나 청파의 싸움은 특히 관심있게 로마사를 보지 않고서는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한 궁극인의 부재는 로마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장애물로 남을 것이다. 종교문제는 기족교 공인의 시점 전후로만 잠깐 등장할 뿐이고, 이전의 다신교나 배화교, 기독교가 국교화 되던 시점의 이단싸움은 거의 나타나있지 않다. 또한 수 많은 전쟁을 판가름 했던 군사나 무기 체계에 관한 이야기도 빠져있다. 로마의 흥망의 중심에는 내분과 정복이 있다는 것을 생각 해 보면, 사실 안타깝다. 이러한 부분으로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기 떄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로마 뿐 아니라 주변 종족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기후와 지형등 많은 것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한권 안에 담기에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로마 밖의 이야기를 최소화 하려는 가나모리의 시도는 기번에서 벗어나 로마의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가정할 때,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다시 기번으로 돌아가서...

 이 책에서 기번에 대해, 그리고 그의 책 로마제국 쇠망사를 가장 잘 알수 있는 부분은 가나모리의 서문과 한은미의 역자후기이다. 가나모리의 서문에서는 기번의 책이 얼마나 문학적 가치가 뛰어났는지, 그리고 왜 전체가 아닌 쇠망사를 썼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물론 이것은 기번의 책이지 이 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서문만을 읽고 이 책을 구매한다면 다소 실망할 것이다.
 역자 후기의 마지막에서는 기번이 왜 망했는지보다 어떻게 존속했는가를 보라고 했다고 이야기 한다. 가나모리가 본문에서 그 이유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뿐 아니라 다른 이유는 없는가를 생각해 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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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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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책은 어떤 사실을 말하거나 설득하기보다는 보여준다. 그렇기 떄문에 이 책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설명하기보다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느낀 것에 대한 내 나름의 느낌을 적었다.

장애인과 정상인,

 이 두 단어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정도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공산주의라고 민주주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고 왕정에서 자본주의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것처럼, 하지만 쉽게 (특히 감정적으로)혼동하는 단어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장애인의 반대되는 개념의 '정상인'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지만, 사실은 둘은 다른 단어일 뿐이다. 이 책은 '정상인인 장애인'이 쓴 글이다. 정상인의 사회와 장애인의 사회 양쪽에 속하고, 양쪽 모두에서 활동하는 그가 본 장애인의 사회,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장애의 이야기가 주가되기 때문에 많은 비장애인은 TV에서 장애인 후원 프로에서 보는것과 같은 장애로 인한 고생 이야기, 또는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야 또다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도에 갇힐 뿐, 그것이 어떠한 변화를 낳지도 못할 것이다. 같은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틀림'과 '다름'의 구도로 가져가는것도 그다지 옳은 일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화 하나가 아니라는 의식이 짙어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고 무엇보다 같은 '사람'이라는 '같음'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 저자는 '뜨거운 욕망'을 이야기 했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이다.


장애인의 인권
 저자는 장애인이 나와서 시위를 했을때, '사람들은 장애인들도 살기 좋아졌다. 나와서 데모도 하고'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연한 소리이긴 하다. 하지만, 생존하기 편해졌다고 해서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은것이 문제이다. 다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분명 전보다는 살지 좋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 참여하기에는 아직 모자란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사회의 참여인원을 늘리는 쪽으로 진행되어 왔고, 이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기 떄문에 끊임 없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통으로 가지게 되는 권리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투표하고, 취업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이지만, 이런 일을 외면하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하는것은 기본적으로 다른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속한 사회에는 없다고 믿고 싶은 거북한 마음이 그들을 다른 사회로 몰아 넣고, 그들의 인권을 외면하게 만든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장애인에 대한 동정
 대부분의 경우, 동정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동정은 기본적으로 대상에 비해 자신이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장애인들에게 동정을 베푼다는 것은 그들을 멸시하는것보다 조금 나은 행동일 뿐이다. 저자도 장애인으로서 어렸을때 '쿨한척' 자신을 꾸며왔던 이유가 그것 이었고, '꽃동네가서 봉사한번 하면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안든다'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가 그런것 아닌가.

  난 동정이 싫다. 동정 받는것도 싫지만, 그 못지않게 동정 하는것도 싫어한다. 하지만 그 동정이나마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줄 정도로 부지런하거나 유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난 그저 외면 할 뿐이었다. 나를 지목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그것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고 다른사람의 문제였다.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전혀 없이 바라보기만 하면서, 내가 이 책, 장애인의 사회, 그리고 저자를 평가 할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인권에 관련된 무엇인가를 실천할 자신은 없다. 다만 지금은 우리와 같지만 '다른존재'로 인식되는 그들에게 약간의 관심을 더 주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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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폭력사회 -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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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에 대한하기위한 악: 폭력 -

 영화 <엑소시스트>에 보면, 첫 부분에서 신부가 악마를 상징하는 조각을 보며 "Evil against Evil..."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는 폭력의 시각이 대체로 비슷하다. 이 책의 서문격인 1장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Liviathan을 인용하면서, 개인적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절부터 합의를 통해 질서를 만들고 다시 무너뜨리는 과정을 그대로 설명한다. 무차별적 폭력을 피하기위해 무질서에서 질서를 합의해 냈지만, 오히려 이제는 질서가 폭력을 행사하는 모순을 지적하며 폭력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 폭력에 대한 성찰: 그 시발점들 -

 이 책은 전체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도입부인 1장 질서와 폭력, 맺음말인 12장 문화와 폭력을 제외하고는 폭력의 속성 또는 발현에 대하여 하나씩 고찰을 한다. 이 10개의 장은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장은 서로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키는 것부터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 읽은 뒤에 다시 한번 차례를 보시라.

 각각이 주장을 담아내기보다는 기존의 사실, 장면을 보여주는데 더 집중하고 있으며, 각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장면들은 가장 그 주제를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예제들로 이루어져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다만 조금 잔인하게 느껴질수 있다), 어떤 주장을 하기보다는 장면을 보여주며, 그로부터 사실을 전달하는 이 서술 방식은 그 자체로서 어떤 설득을 하기보다는 그 장면으로 부터 폭력의 속성을, 그리고 그 발현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서술은 폭력에 대한 생각을 할 기초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 말할수 없는것에 대한 침묵 -

 1장에서 서술한 폭력의 진행 순서에 따라 10개의 장을 배열하고, 각각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그 서술은 폭력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폭력의 희생자를 서술한 4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폭력의 행위자인 가해자를 중심으로 이야기 되고 있으며, 따라서 폭력에 따라붙는 두 가지 속성 중 가해자의 도취에 비하여 피해자의 고통에는 상대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 사디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면서도 그에 상대되는 개념인 마조히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피해자의 굴종과 무력함 보다는 가해자의 안도와 쾌락에 더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침묵은 정당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폭력은 앞에서 말한것처럼 '만인에 대한 민인의 투쟁'에서 '복종과 질서'를 지나 다시 무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떄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폭력에 대한 고찰은 문화와 체계를 넘어 너무나도 거대해져 하나의 흐름으로 담아둘 수 없을것이며, 각각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담아두던 이 책의 서술은 개별에 묻혀 소실될 것이다.

 
- 순환의 완성, 비대칭적 결론 -

 11장에서 사물에 대한 파괴까지 서술이 끝나는 순간, 혁명은 완성되었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1장에서 말했던 움직임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앞서는 인용을 통하여 거시적인 흐름에 따랐지만, 이번에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앞의 본론들에서 서술했던 흐름과 맞물려 개별적인 가해자에게 돌아갈 비난의 화살들을 문화로 돌리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비대칭적 이야기를 위해 홉스로 시작하여 프로이트로 결말을 내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개진하지 않고, 그 둘의 인용으로 양 끝을 장식한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 스스로에게 판단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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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개인적으로는 원제를 직역한 "폭력에 관한 논고" 가 더 어울린다 싶지만 좀 딱딱한 감이 있다. 약간 도발적이기도 한 역서의 제목도 나쁘진 않다.

덧2. 4장에 설명되는 그림 '십자가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을 보고 싶거든 아래 url의 <Francis Bacon, "Three Sudies for a Crucifixion" (1962)>을 참조하시라.
[from: http://www.askyfilledwithshootingstars.com/wordpress/?p=971 ]

덧3. 역자는 좌와 우를 넘어서는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는 사상가 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책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찾아보는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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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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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몇년만에 읽은 국내 소설이자 몇달만에 읽은 서문 없는 책이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서술자가 '나'가 아니라 '너'임에 약간 당황한다. 하지만 서술자가 '너'라고 해서 딱히 달라질건 없는것이, 시점이 넘어가고, 장남이 서술대상이 되고, 다시 시점이 넘어가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비로소 마지막 장에서야 등장하게 되고, 비로소 '나'는 잃어버린 어머니임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실종은 돌발적이고 의도치 않게 일어났다. 그리고 가족들이 자신의 질못을 조금씩 뉘우치지만, 되려 그것이 어머니를 돌아올 수 없게 만든다. 목격자들의 공통된 발언인 파란 슬리퍼는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신발은 어머니를 잃어벌리 당시에 신던 신발이 아닌, 30년 전에 당신의 아들을 위해 서둘러 상경한 길에서 신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파란 슬리퍼를 신은 어머니를 찾아 다니는 것은 사라진 어머니를 쫓아 다니는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 추억속의 어머니를 찾아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다니는 과정도 자신들이 서울에서 살면서 옮겨 다니던 그 순서를 답습하고 있다. 2장이 마무리 될때 쯤이면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으며, 돌아와서도 안되게 되었다. 애초에 그들이 쫓던것이 추억속의 환상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찾을수도 없지만, 설령 찾는다고 해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어머니를 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두 장에서는 장남과 장녀의 후회와 죄책감, 추억속에서 자신들에세 헌신적이었던 '어머니' 뿐이었다. 비로소 3장에 들어가서야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드러난다. 무관심 했던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했던 아버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나타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고통을 항상 감내하고, 순응적이며, 남을위해 베푸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더 고통스러워 하는지도 모른다.

 네 번째 장에서, 조금씩 자유를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막내와 '그사람'과의 작별에서 어머니의 인생은 비로소 긍정된다. 앞의 이야기에서 끎임없이 고통받고 외면당했던 어머니는 막내의 '엄마는 그럴 자격있어'라는 말에 사라지고,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평안하게 쉴곳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려진다. 격한 두통속에 조금씩 비어가는 자신을 느끼고 물품들을 정리하는 모습은 차분히 세상과의 연을 정리해 왔음을 보여주고, 찾아간 사람들, 그리고 집에 인사를 하는 모습은 지금껏 떠돌아다닌것이 한이 남아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있었던 남은 연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음을 보여준다.

 에필로그, 그 마지막에서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은, 엄마를 찾고싶다는것도, 엄마가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체념도 아닌, 자신이 속박하고 있던 엄마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막내딸의 태도는 가장 좋은 답안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받으나 거기에 속박되지 않게 하고, 아끼지만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들 중 마지막으로 보고 가지 않았을까. 

 

- 2009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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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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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했던, 사소한 오해들..

 이 책의 고도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孤島가 아니라 Godot인건 작품의 원제(En attendant Godot)를 보고 알았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두 가지 오해를 한 게 있었다.

 첫째로는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당연히 영어로 썼을거라고 생각하고, 영국책 분류에 꽃아두었다는 것인데, 원래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후, 그것을 다시 자신이 영어본으로 냈다고 한다. 조금 검색해봤더니 미묘하게 다른것 같기도 하다.(영 문판 - 불어판 - 한역: 참조)
 다른 하나로는 등장인물 에스트라공(ESTRAGON) 이름의 공이 公일 것이로 생각하고 귀족일 것으로 지레 짐작한 것이다. 물론, 작품 설정상 부랑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_-;

고고와 디디 - 그저 무기력할뿐...

 서두는 이쯤에서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1막에 하루씩 2일동안의 짧은 일상이 나온다. 주인공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두 명이 어느 길 위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작품에서 제시된 공간적 애매성과 불분명성, 하루를 간격으로 두지만 하루로 두기에는 차이가 나는 그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대화의 비논리성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성은 기존의 연출에서도 충분히 많이 얘기가 된 것이고, 읽고나서 하루가 넘게 지난 지금에와서 이 글을 쓰기 직전에야 찾아본 내용들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참조논문[각주:1]] 내가 이 책을 읽는동안  배경보다 더윽 관심이 갔던 부분은 고고와 디디의 성향 차이이다. 디디는 이성적이고, 목적이 있고, 정적이다. 반면에 고고는 단순하고, 순간순간의 감정에따라 떠다닐뿐이다. 이러한 디디와 고고의 성향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또는 나무-밝음-고난 과 돌-음지-안식 으로서 해석한 위의 참조 논문은 지극히 니체적인 해석이지만, 두 인물의 차이를 가장 적절하고 대조적으로 나타내준다.

 하지만 두 인물의 대조적 성향을 떠나서 공통적인 것은 그저 무기력하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라면서, 심지어 죽음마저 내일의 일로 미루는 그들의 모습은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내일을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인다. 괴테는 "언제나 노력하며 스스로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천사들을 통하여 말하며, 악마와 계약까지 해 가며 세상에 뛰어들어 진리를 찾으려는 파우스트 박사를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정 반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고도가 누군지 알았으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고 했던것 처럼, 고도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 일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의 무력한 기다림을 끝나게 해 줄 심판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무기력한 기다림이고, 어제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처음 봤다고 말하는 어린 시종의, 기다림의 무한 반복을 암시하는 메시지이다. 어쩌면, 설령 고도가 온다고 해도 그들에게 무언가 변화가 있을것인가에 대한 생각마저 든다.

또다른 작은 이야기 - 포조와 럭키

 다만, 어딘지 부족함이 남는것은 포조와 럭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고고와 디디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법도 한데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애매한 느낌이다. 그저 떠오른 생각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비아냥, 또는 무기력함에 반대해 보아야 얻는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이것 은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알수 있기를... 근데 모자를 쓰고 생각하는 럭키의 모습은 미 궁(황병기)를 연상하게 하는것이 조금 재밌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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