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벌하고 싶었고 내 어리석음에 대해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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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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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술에 걸린 듯 그때까지 나와 정신적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꿰뚫고서는, 열정, 새로운 열정을 찾아냈습니다.(P. 53)

‘새로운 기쁨‘ 이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에 맛보았던 그 기쁨과 같았을 이 책의 주인공 롤란트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빠져들며 느꼈을 그 새로운 기쁨.

롤란트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봤다. 아니 자연스럽게 떠올려져서 책을 읽다가도 혼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듯 시선을 위로 올리고선 내 머릿속에 떠올려진 과거들을 천천히, 그리고 때론 부끄러워 뜨거워진 얼굴을 만져보며 후다닥 다른 생각으로 이동시키는 경험도 하고 꽤 나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좋을 수만은 없는 온갖 것들)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를 읽고 바로 그의 책을 2권 더 구매하였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그 공감능력과 다정하고도 섬세한 그가 좋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면은 나라는 사람의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큰 배움도 있고 자유스러움을 갈망했던 마음에서 얻는 공감은 꽤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부정적 마음의 표현조차도 고급스러우면서 지나치지 않도록 절제하되 그 뜻은 부족함 없이 충만하도록 글로 잘 담아낼 수 있는 건지 참 놀랍다.

<감정의 혼란> 속 롤란트는 교수님의 구술을 받아적으며 느낀 감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선생님이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서술을 열광적으로 묘사할 때는 창작자의 단어가 웅대한 울림으로 날아올랐습니다. (P. 101)
롤란트를 한순간에 압도시키고 그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켜 준 교수님의 존재가 심지어 한 인간으로서 부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으로 교수님에게 식어버린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롤란트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다.)
‘나’라는 존재를 ‘지금의 나’로 결정지어 버릴 만큼이라니...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완전히 교수님에게 압도당해 사로잡힌 롤란트의 감정이 내겐 조금씩 벅차고 두려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인물’ 혹은 한 ‘사건’에 치우친 삶을 살기로 선택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오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그 순간에는 완벽히 가늠할 수가 없고, 시간이 흘러 그로 인해 내가 오롯이 겪는 실패와 후회를 끌어안은 채 산다는 것이 꽤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자로서 앞으로 롤란트가 겪게 될 고난이 조금은 예상되어 불안함 섞인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혹시 나의 예상대로 그도 나처럼 생채기를 겪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해졌다. (물론, 나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뭔가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을 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허나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이더라.)

자신의 감정을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던 롤란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향한 교수님의 ‘공감’뿐이었는데, 그는 조금은 무모하게 ‘멈춤’없이 교수님을 향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롤란트의 고백처럼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한순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누구나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을 수도 있는, 혹은 단 한 번도 겪어볼 수 없는 심미적 정신세계로의 여행을 통한 그 ‘감정’을 느껴본 자만이 가늠할 수 있는 그 무언가(혼란스러움)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것은 슈테판 츠바이크만의 빠져들게 하는 서술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 솔직함과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혼란스러울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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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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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하고 화려하며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사람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방탕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비 지출로 인한 막대한 부채도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처리해줬던 착한 남편이자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약했던 루이 16세.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들의 특질들을 뜨끔 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많이 표현했지만 그것이 고통스러울만큼 혐오스럽거나 아프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자가 이들에게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가졌던게 아닐까싶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성에서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하는 일은 의상실에 있는 모든 의상을 조그만 견본으로 만든 책을 보고 무엇을 입을지 고르는 것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어렵고 책임이 막중한 선택이었을까? 라며 꼬집는다. 그러니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상황을 떠올리자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감싸줄 수 만은 없다.
그녀의 세상은 늘 언제나 2,000만 프랑스 신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화려하고 텅텅 빈 머리를 높은 탑으로 쌓아올리며 그 탑의 손상을 막기 위해 마차도 무릎을 꿇고 타야하는 (고귀한 분들께서) 궁중 귀부인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그러니 이 당연한 것들을 별나게 여기며 언제나 근심 가득 찬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목소리는 딸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수록 그녀가 빠져죽을 것을 알고도 물가로 밀어 넣으며 자신들의 금고 채우기에만 민활한 주변사람들에게 환멸감을 느꼈다. 더 없이 부족함이란 것을 모르고 지냈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불안’과 ‘결핍’이 만들어낸 사치를 부추기는 그들.

능력이 부족한 그 자리와 무게에 맞지 않는 자가 나라를 맡게 되었을 때의 그 처절한 과정과 눈에 훤한 결말은 나와 우리 모두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고 불행하게 현재에도 겪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가슴 답답하게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 아닌가......) 본인들이 부족해도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잘 닦아나갈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을 분별하지도, 다루지도 못 했다. 그렇기에 결국 세상 어려울게 없고 그저 원하면 다 얻을 수 있었던 동화 속 예쁜 공주님이 오색빛깔 찬란한 꿈속에서 눈을 떠 현실을 바라보니 눈 앞에는 시퍼런 단두대 앞이었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정말 놀기 좋아하는 15살 아이였다. 체력은 어쩜 그리도 좋은지 늦은 새벽까지 놀아도 몇 시간 잠도 안 자고도 활기를 띠는 그녀의 일상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참 가혹하고 안타까운 인생처럼 느껴졌다. 내심 그녀를 너무 측은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의 시선에 그녀는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악의라고는 하나 없는 보통의 여자아이.

“인생이 까닭없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람들이 운명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에는 은밀한 값이 매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P. 134)

고통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첫 스승이었고 삶을 배우게 하였고 철들게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괴로움이 그녀에게는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하게 죽는 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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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드러운 초원과 사랑의 신전과 가을의 연못이 있는 부드러운 언덕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 자신의 안식처인 트리아농을 일생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 P303

"불행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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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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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이 보일까 말까 하는 죽 한 그릇.
입속에 넣으면 사라질까 아쉬워 혀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최대한 맛을 음미 해야 하는 빵 한 조각.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작업과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한 모금 빨고 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연기가 스며들어 취하게 하지만, 그마저도 있을 때나 가능한 타들어 가는 게 아쉬운 담배. 이곳에서 빨리 줄어들지 않는 건 그들의 ‘형기’뿐이다.

자유가 없는 억압된 수용소 안에서 슈호프는 되려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수용소 생활과 관련된 작업의 순서와 실행에 옮겼을 때의 미리 맛보는 성취감과 식당으로 달려가 빨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모든 것을 구상하느라 고향을 그리워할 시간조차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오늘 날아갈 듯이 가볍게 뛰었다. 작업장에서 몰래 주워 장갑에 숨겨 온 부러진 쇠 줄칼토막이 신체검사 시 발각되지 않아서다. (신발을 수선하는 칼로 만들어 신발수선을 하면 수입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긴 수용소 생활을 버텨내기에는 현재의 삶을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에게 ‘기대’라는 것은 멀게만 느껴지는 ‘자유’보다는 당장에 뜨거운 양배춧국(맹물 같은) 을 반원들과 같이 먹는 것, 그리고 작업이 없는 귀중한 일요일 (그마저도 마음편히 쉬는 것이 아니며, 늘 쉬는 건 아니다)뿐이다.

고통의 순간에도 악행을 일삼는 무리를 향한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사람으로 보일 만큼 비극의 나날들을 살아냈다. 조금 더 따뜻한 양배춧국, 조금 더 많은 양의 빵 한 조각, 자신에게는 오지 않는 소포를 받은 반원에게 얻은 소시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성에 낀 창문이 있는 냉한 방에서의 잠자리 들기 전 슈호프는 ‘오늘은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라고 생각했다. 불행한 운명 속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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