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조한 마음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불의의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소녀 에디트에게 연민의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과 노력을 다하는 현역 장교인 호프밀러. 이성보다 앞서 나가는 이놈에 ‘연민’ 때문에 매 순간 온 힘을 다하여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안심시켜 주었지만, 점점 두려워지고 초조하게 만드는 상황들로 혼란스럽다. 그래 맞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런 상황은 아니었는데 벅차다. 아니, 예상은 했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너무 얕잡아본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점점 나 자신마저 잃어간다.
악의는 없지만, 그 순간에 온 힘을 다하여(연민이 만들어낸) 나에게 호프밀러처럼 모든 것을 아니, 꽤 많은 부분을 맞춰주고 도와줬던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반드시 해내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대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알았다. 나의 어려운 부탁이자 무리가 되는 그 일들을 들어주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반드시 그의 입으로 ‘해결이 잘될 거야. 반드시.’라는 확답을 들었어야만 했다.
결과는 나중 일이다.
무조건 일단 나를 안심시켜 주어야만 하는 의무를 그의 목에 내 멋대로 걸어 놓고는 쥐어짜고, 또 쥐어짜며 내가 듣고자 하는 모범 정답을 얻어냈었다. 에디트라고 몰랐을까?
불편한 다리 때문에 대신 얻게 된 감각신경들로 그녀는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함을 가진 소녀이다. 호프밀러에게 쥐어짜네 얻어내려 했던 것은 그녀를 안심시켜 줄 만한 믿음의 말이었을 것이다. (물론 연민과 현실을 아주아주 잘 숨기되 진심과 애정은 가득 담긴 말이어야 한다)책을 읽다 보면 호프밀러가 너무 성급하고 신중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에디트와 그의 가족들이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단 한 번의 만남에서 얻게 된 인상으로 호프밀러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그에게 호소하는 책임감이 부담스럽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다. 나는 에디트와 그녀의 가족을 너무 이해한다.
나에게도 아픈 가족이 있었으니까.
아픈 가족을 돌보는(돌봤었던)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에디트의 예민한 감각 때문에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모습(어린아이 같기도 한)들을 그저 바라보면서 마음에서는 미안하기만 하고 애처롭기만 하고 익숙해질 만한데도 여전히 ‘이 시련이 차라리 나에게 온 것이었다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과거의 건강한 상태로 절대 되돌려줄 수 없는 것을 인정하며 다가가야 할 때의 죄스러움과 가슴을 훑는듯한 고통을.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 그 고통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읽으면서 누가 내 가슴을 긁어내는 것 같은 불쑥하고 찾아오는 찌를듯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디트를 향한 모든 사람의 간절함에서 오는 아픔과 함께 조금은 숨이 막힐듯함도 어쩔 수 없이 느꼈다. 어쩔 수 없다고 표현한 것은 아픈 가족이 있는 집에서는 늘 함께 공존해야 하는 어둠이 깔린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희망이라는 빛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 무거운 커튼을 새로운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살포시 들춰서 달큰하고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 주면, 가족들이 365일 공을 들인 노력보다도 더 큰 긍정의 효과로 그간 없던 생기와 간절했던 희망이 다시금 만들어질 때가 있다. 그때의 경외감을 어찌 호프밀러와 그녀의 가족들이 밀어낼 수 있겠는가.
단 하루라도 더 웃음을 지을 수 있고, 행복감을 줄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괜찮을 때가 있다. 무엇이든 다 간절하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들의 감정들 하나하나가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다. 모든 것들을 다 섬세하게 담아냈기에 제목처럼 읽는 내내 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 좌절과 잠시 스쳐 지나간 희열 등 이들의 감정들을 가슴에 다 담아내기가 너무 벅찰 정도다.
아픔이 꼭 아픔으로 보상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통증과 고통이 꼭 통증과 고통으로 보상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불행이 꼭 불행으로 보상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를 향한 혐오를 하고 벼랑 끝으로 올라가 내 몸뚱어리와 함께 내던지는 것으로 나의 짐을 덜어버리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불규칙하게 내 귀를 괴롭혔던 현악기의 심란한 연주가 끝난 느낌을 받았다.